"저는 이혼남 입니다."

갑자기 예식장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분명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도 있었고 복도까지 꽉 찬 하객들이 뒤섞여 웅성거렸는데, 마치 모든 사람들이 주례를 보고 있었다는 듯이 정적에 빠져 든 것입니다.

"여기 서 있는 신랑이 주례를 부탁했을 때 '행복해야 할 결혼식에,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 주례를 맡는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고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나 신랑은 좋아하는 사람의 축복도 받고 싶고 인생 선배로서의 충고도 꼭 듣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을 하더군요. 그 날 신랑과 잘 못마시는 술을 많이도 마시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는 신부측 지인들과 눈도장도 찍었으니 그만 내려가서 밥이나 먹으려다가 주저 앉았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주례사 때문이었지요. 그는 자신의 행복했던 연애시절과 꿈만 같았던 결혼, 그러나 쉽지 않았던 결혼생활과 두 아이를 두고 파탄에 이르게 된 경위를 군더더기 없이,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덤덤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혼을 한 후에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몇번이나 아내를 다시 찾아가 재결합 하자고 하고 싶었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번번히 발길을 돌렸는지... 이야기를 할 때는 한탄과 후회의 감정이 여과없이 드러났습니다.

급기야 아내가 암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어 마지막 이별을 할 때의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목이 메이기까지 하더군요. 병상으로 아내를 찾아가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며 펑펑 울었답니다. 평생 당신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아내도 임종 직전에 정말 미안했다고, 나도 왜 당신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지 모르겠다고, 당신 잘못이 아니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모든 걸 다 용서하겠다고 하면서 세상을 떠났답니다.

"결혼 할 때는 아홉개가 장점으로 보이고 한 개만 단점으로 보이지만, 결혼해서 살다보면 한 개의 장점만 보이고 아홉개가 단점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부부란 그 한 개의 장점 때문에 아홉개의 단점을 기꺼이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또한 결혼이란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맹세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사랑을 넘어서는 엄중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서서 감히 조언이랍시고 하고 있는 저는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이 아름다운 한 쌍이 평생 제 대신 그것만은 꼭 지키며 살겠다고 맹세를 한다기에 이 결혼식의 주례를 맡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양가 부모님들과 하객 여러분께, 자격이 없는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죄송했다는 말씀 올리는 것으로 끝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정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지고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감사와 감동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박수는 그칠 줄 모르고 어떤 이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는데 저 역시 그리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느끼던 시절이었기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한의 감정이 일기도 했습니다.

피로연 자리에서도 모두들 주례사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결혼에 대해 갑론을박 들을 하고 있더군요. 저 역시 오랫만에 만난 고향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가 말한 결혼관과 우리의 살아감에 대해 진솔한 대화들을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이의 진정한 마음이,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울린 것이겠지요. 실패와 아픔조차 기꺼이 나누어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란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찬란한 결혼의 계절이 돌아 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결혼하고 또 많은 이들이 이혼을 하겠지요. 사랑이란 변하는 것이고, 그 변함조차 다시 사랑하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던 그 주례사 부분은 아직까지도 이해를 못 하지만, 사랑보다 더 크다는 삶을 아내와 같이 하고 있으니 그것이 스스로에게 주는 위안입니다. 그나저나 봄입니다.

 

편집 : 심창식 편집위원

유원진 주주통신원  4thmeal@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