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이紀異’편 我와 非我와의 투쟁

叙曰             나[余]는 공자왈맹자왈[曰]을 매질[又≒攴]하리라.
大抵古之聖人     대저 옛날 성인聖人은
方其禮樂興邦     예禮를 처방[方]하고 낙樂을 기약[其]함으로써 나라를 일으키고,
仁義設敎         인의仁義로 설교하여
則怪力亂神       괴력난신을 투사[則]하였으니,
在所不語         나에게 묻지 않는 도리[所不語]를 꾀[在]하였다.
(통론: 서문에 말한다. 대저 옛날 성인聖人은 예와 음악으로 나라를 세우고 인仁과 의義로 백성들을 가르쳤으니, 괴상한 일, 힘, 어지러운 일,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 서두이다. 삼국유사의 서막인 ‘왕력王歷’편이 왕들의 계보를 표시한 연표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위 문장은 사실상 삼국유사 서문이라 할 것이다.
“나는 공자왈맹자왈을 매질하리라.”
일연은 제1성으로 돌직구를 날린다. 통론은 “서문에 말한다.”라고 하지만 일연이 서문에다가 ‘서문에 말한다’라고 쓰는 바보는 아닐 것이다. 이제 제목을 생각하라. ‘기이紀異’는 ‘다양성·차이[異]를 기원[紀]하다’라는 뜻이니, 다음 19화에서 이야기할 서문의 후반부에서 일연은 중국신화와 한국신화의 ‘차이’를 간략히 기술한다. 다름 아닌 그 ‘차이’가 일연이 역사책을 쓰는 이유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무슨 뜻일까? 우선 삼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고조선-고구려-(통일)신라’일 것이며, 나아가 부여 백제 삼한 가야를 아우르는 다양성[三]의 나라들일 것이다. ‘유사遺事’는 잃어버린[遺] 역사[事] 내지 남겨진[遺] 과업[事]이라는 뜻이다. 과거의 역사[事]이자 미래의 미션[事]이며, 공작새역사[史]가 아니라 까마귀역사[事]다.
‘공자왈맹자왈의 동굴을 파괴하라.’
일연은 광개토왕비라는 돌덩어리를 보지 못하였으리라. 그럼에도 서기 400년경의 광개토왕비는 ‘공자왈맹자왈을 폭로하라’하고 800여년 후 고려말의 승려 일연(1206~1289)은 ‘공자왈맹자왈을 매질하라’하였으니,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너무나 자명하지 않은가.
두 번째 문장에서 일연은 공자왈맹자왈을 매질해야 하는 이유를 간단히 피력한다. “중화의 성인들은 예禮를 처방하고 낙樂을 기약함으로써 나라를 일으키고, 인의仁義로 설교하여 백성들에게 괴력난신을 투사[則]하여 ‘나에게 묻지 않는 도리[所不語]’를 꾀[在]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묻지 않는 도리[所不語]’는 ‘자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상실의 인간을 말한다. ‘괴력난신’은 논어 ‘술이述而’편 제20장 “공자는 ‘나[吾]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이다’라고 말[言]하지 않는다.[子不語怪力亂神]”를 인용한 용어다. 공자가 스스로 ‘괴력난신’이라 한 것은, 내 안의 공자가 나를 잡아먹는다는 말이다. 다시 일연의 제1성을 음미해보면, ‘서叙’의 파자법은 나[余]에게 들러붙은 공자라는 이름의 회초리[又=攴]를 걷어차라는 묵시이므로, ‘나는 공자의 회초리를 팽개치고 공자왈맹자왈을 매질하리라[叙曰].’라고 새겨야 하리라. 첫 문장에서 회초리에 비유된 공자왈맹자왈을, 두 번째 문장은 논어를 인용하여 ‘괴력난신’이라 부연하였으니, 당신을 움직이는 괴력난신을 그리스신화에서 되새겨보자.

‘트로이목마’전략으로 난공불락의 트로이성을 함락한 오딧세우스는 그리스로 돌아가는 험난한 대항해를 시작한다. 칼립소라는 요정의 섬에 감금되고, 하스라는 망각의 열매를 먹는 위기를 넘긴 오딧세우스 일행을 기다리는 것은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일명 키클롭스)의 동굴. 양을 키우며 사람을 잡아먹고 산다는 폴리메모스는 오디세우스와 12명의 부하들을 동굴에 가두고 한 사람씩 잡아먹기 시작하였다. 오딧세우스는 폴리페모스에게 포도주를 먹이고는 술에 취하여 잠든 폴리페모스의 눈을 불에 달군 막대기로 찌른다. 고통을 참지 못한 폴리페모스가 비명을 지르자 동료들(다른 키클롭스)이 몰려들어 물었다. “폴리페모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비명을 지르는가?” 폴리페모스가 외쳤다. “우티스가 나를 죽이려 한다네.” ‘우티스’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뜻이므로 그 말을 들은 키클롭스들은 폴리페모스가 미쳤다고 생각하며 뿔뿔이 흩어졌고, 오딧세우스와 부하들은 동굴을 탈출한다.
폴리페모스는 누구일까?
다름 아닌 인간을 잡아먹는 공자라는 이름의 괴력난신이다.
눈을 찔린 폴레페모스는 무어라 외쳤을까?
“아무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구나!”
이것은 어쩌면 작가 호메로스의 탄식이리라. 오디세우스와 같은 지배자들은 인간을 잡아먹는 폴레페모스를, 인간을 가두는 동굴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그 동굴을 지켜야만 양울 키우며 인간을 손쉽게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논어 ‘술이述而’ 제20장에서 공자는 “나는 폴리페모스(괴력난신)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공자의 반어법을 알아들은 지식인들은 어떻게 처신하였을까?

논어 ‘술이述而’ 제1장
子曰            공자 가로되,
述而不作        술회[述]하면 창작[作]하지 않고
信而好古        보답[信]하면 옛것을 사랑[好]하니
竊比            살짝 비유하자면
於我老彭        아! 우리 공작새[我]는 늙은 팽조彭祖로다.

‘팽조彭祖’는 오제五帝 중 한명인 전욱颛顼의 손자라는 설이 있으며, 『사기史記』에 하夏나라 상商나라에 걸쳐 약 800년을 살면서 벼슬하였다고 하는, 중화라는 이름의 불사신이다. ‘논어집주’에서 ‘주자朱子’는 옛 것을 새로운 문장으로 진술할 뿐 중화주의 이외의 이념을 담은 글을 ‘창작’하지 않았던 공자의 업적을 열거한 다음 중화세계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고백한다.
“이 몸 또한 (중화주의를)교육[知]하지 않기는 불가하도다[此又不可不知也]”
어쩔 수 없이 공자라는 폴리페모스에게, 중화라는 이름의 동굴에 부역할 수밖에 없다는 지식인의 씁쓸한 고백을 읽은 수많은 선비들이 주자朱子(1130~1200)의 뒤를 따랐으리라. 일연은 논어 ‘술이述而’ 제20장의 ‘괴력난신’을 인용하여 공자를 조롱하였지만, 넓게 보면 조롱의 대상은 ‘술이부작述而不作’하는 공자와 주자, 그리고 그들의 길을 따라가는 모든 선비들이다. 주자는 왜 무기력하게 굴복하는가? 중원의 역사가 공작새불패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일연은 무엇을 믿고 주자학으로 찬란하게 부활하는 중화와의 전쟁을 선포하는가? 위대한 유화문명의 저력을 믿기 때문이다.

편집 : 김태평 객원편집위원

오순정 시민통신원  osoo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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