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30일, (주)동북아식물연구소의 백두산 식물탐사팀은 두만강의 발원지 '원지'를 찾았다. 백두산 고원지대에 위치한 습지 주변의 식물을 탐사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탐사팀을 태우고 이도백하를 출발한 소형버스는 약 1시간 30분가량 달려 '원지'에 닿을 수 있었다.
<신동호 블로그 '걷고 보고 생각하기'에서 복사해 왔습니다>
'원지(圓池)'는 청나라 건국 시조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우리 탐사단이 '원지'에 갔을 때 그 못 앞에는 '天女浴躬池'라고 새겨진 큰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청나라 관찬사서(官撰史書)인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시조 설화가 있다고 한다.
"옛날 세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 연못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붉은 열매를 막내 선녀의 옷에다 놓고 갔다. 막내 선녀는 이 열매를 먹고 임신을 하여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 사내아이가 금의 시조로 성을 '애신각라(愛新覺羅)'라 하였다."
'애신각라(愛新覺羅)'는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한다는 뜻으로, 금을 세운 누루하치는 신라 경주김씨의 후손인 것이다. 고려사람 경주 김씨 김함보가 말갈 지역에 자리를 잡고 그의 9대손인 누루하치가 금(金)을 세운다. 백두산 지역은 금의 건국 시조의 설화가 서려있는 곳이어서 청나라 시대에는 이곳에 사람의 출입을 금하기도 하는 신성한 지역으로 받들던 곳이다. 그러고 보면 후금을 세운 누루하치는 금나라의 후손이라 하고 금을 계승한다고 하여 나라 이름도 '후금'이라 하였다. 나중에는 나라 이름을 '청(淸)'이라 바꾸었다. 그렇다면 중국을 점령하여 300여 년간 지배를 했던 청나라 황실은 경주 김씨의 후손들인 것이다.
'원지'는 백두산 천지의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원지 지역에서 다시 솟아올라 이루어진 못으로 그 둘레의 길이는 1.2km에 이르고, 해발 1258m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두만강은 바로 이 '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이다.
'원지'에서 흐르기 시작한 두만강의 최상류를 가보면 동네 개울물 정도의 폭을 이루고 있다. 이곳이 두만강의 최상류라니 약간 실망하게 된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도 그렇고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도 가 보면 이곳 '원지'에서 시작하는 강의 폭보다 넓고 수량도 풍부한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 탐사단은 오전에 '원지' 인근 식물 탐사를 두어 시간 끝내고 두만강을 따라 토문까지 내려가면서 두만강 북녘의 중국 땅의 식물들을 살필 수 있었다. 당시에 보았던 식물들을 중심으로 백두산 고원 습지인 '원지' 주변에서 보았던 식물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일부 몇 종은 검증이 되질 않는 아쉬움이 있다. 혹시 아시는 독자들은 댓글로 설명을 해 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