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초들이 사는 마을(필명 김 자현)

<김자현의 詩 사랑방 - 세 번째 시>
 

▲ 골초들이 사는 마을

 

 

 

 

 

 

암소가 뽀얀 첫새끼를 낳듯

산마을로 이주한 후 처음 내린 신생의 숲

서재 앞 작은 소나무가 흰 외투를 두둑히 껴입었네

자동차 드물고 산 속 마을이 눈 속에 깊어

토끼 발자국 찾아 나서는 길

새들의 언어도 알아들을 것 같은 이 아침

뒷산 위로 솟은 해가

느티나무에 맺힌 얼음 수정을

시시각각 수천의 화살로 쏘아 맞추네

 

 

 

 

 

검정개와 백구가 강중강중 비탈에 눈을 쓸고 나면

김장김치를 꺼내러 가자

윗터에 묻은 두 개의 김장독엔 겨울 김장이

입술 달싹이며 도란도란 익어가고

지난 가을 완성한

통나무 링컨 하우스엔 장작을 가득 쌓았으니

한숨을 돌리자 한 숨 돌리자

 

 

 

 

 

불 이글이글 벽난로에는

다람쥐 몰래 청설모 몰래 가을에 주워놓았던

산밤이 익는 냄새, 산밤이 튀는 소리

호호 불며 껍질을 홀랑 벗겨 딸 입에도 넣어주고 아들 입에 넣어주고

창고에는 나무가 잔뜩 쌓였으니 우리는 부자야

벽난로 아가리를 열고

통나무를 통째로 넣어도 되는 우리는 부자야

눈이 한 자나 빠지게 푹푹 내려도

겨울나기 끄떡 없어 겨울 나기 끄떡 없어

 

 

 

 

 

고요한 산마을, 드문드문 박힌 집마다

담배를 뻐끔뻐끔 쉬지 않고 피워대는 골초들 사는 마을

뒷숲이 윙윙 퉁소를 부는 날은 들창을 내다 보며

박자를 맞춰야지 벽난로를 돌며

박자를 맞춰야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며 쿵쿵쿵.........!

-해설------------------------------------------

꿈꾸던 산골마을로 이사를 갔던 십여 년 전! 바람이 불어도 좋고 겨울이 와도 좋았다. 첫 겨울을 맞고 첫눈이 오던 날, 눈 속에 파묻힌 산촌마을, 이글루 같은 움집에서 사람들은 모두 눈사람 같았다. 프랑이라는 새카만 검정개와 돌도리라는 풍산개 백구가 있었다. 김장독을 묻은 윗터에는 여름에 벼락을 맞고 넘어진 통나무를 끌어다 기둥을 세우고 두꺼운 비닐로 덮어 창고를 지었다. 땔감도 주워다 쌓고 연장도 나란히 정리하고 이웃의 도움으로 아주 감칠맛 나는 전원생활을 꾸릴 수 있었다.

위의 시에서 우리는 부자야 부자야를 강조하는 것은 실은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름보일러 집이었는데 나무를 해다가 난로를 때지 않으면 연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우리는 정말 가난했다. 그러나 가을에 주워놓았던 산밤이나 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도시인들은 꿈도 꾸지 못할 겨울의 낭만을 조금은 만끽했던 날들이었다.  

시골의 전원생활 중에서도 산촌 마을을 동시童詩에 가까운 어조로 표현해 보았다. 색이 죽고 소리가 죽은 모노톤의 세계, 겨울 서정에 음감을 집어넣어 마을 자체가 외투를 입은 듯 따뜻하게 그리려 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입술을 달싹이며 겨울 김장이 도란도란 익어가고....."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대는 골초들이 사는 마을..." 등

위의 표현들은 직유가 아닌 은유라는 수사를 동원했지만 외연을 표현한 것이라 누구든 쉽게 읽힌다. 연통에서 나오는 연기를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묘사했다. 이렇듯 詩는 묘사를 하되 비유를 가능한 동원해서 작자가 표현해 내려는 의도를 구사해야 한다. 서술을 더구나 직설로 하는 것은 시의 맛을 내기 어렵다. 

어렵게 살다 간 프랑과 돌도리에게 미안하고 정말 보고 싶다. 명복을 빌며......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승원 주주통신원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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