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 명상 7: 보일 시(示)

<2020. 07. 02>

한자 示로 시작하는 낱말은 시범(示範; 모범을 보이다), 시사(示唆; 미리 꼬드겨 내보이다), 시위(示威; 위세를 드러내 보이다) 등이다. 示로 끝나는 말은 과시(誇示; 뽐내어 보이다), 명시(明示; 밝게 드러내 보이다), 암시(暗示; 넌지시 내보이다), 제시(提示; 끌어올려 보이다), 지시(指示; 가리켜 보이다) 등이다. 示가 단어의 가운데 들어가는 말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을 지닌 염화시중(拈華示衆; 꽃을 집어 들어 무리에게 보이다)이 눈에 띈다.

어떻게 해서 示는 ‘보이다’, ‘내보이다’는 뜻을 품었을까? 달리 질문하면, 示는 무엇을 형상화했을까? 찬찬히 보면, 示={一, 不}는 음식(一)을 올려놓은 삼발이 식탁(不)의 모습에 가깝다. 예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식탁의 대표는 둥근 밥상이다. 둥글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은 누구나 대등하다. 가족끼리 밥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정립형(鼎立型) 일자리창출 유연안정성 모형>

출처: 조우현, <일의 세계 경제학>, 제2판, 2010, 679쪽

인간은 두 발로 서도 보통 사물은 그렇지 못한다. 어떤 곳에서도 최소비용으로 사물을 안정되게 세우고자 할 때 발이 셋을 넘으면 곤란하다. 발이 네 개인 탁자는 자갈밭에서 뒤뚱뒤뚱한다. 제아무리 울퉁불퉁한 땅이라도 삼발이 탁자는 곧바로 안정되게 자리를 잡는다. 세 발이 균형을 잡은 상태를 정립(鼎立)이라 한다. 가마솥으로 대표되는 솥(鼎; 솥 정)의 발은 세 개다. 주변의 세 나라가 세력균형을 이룬 상태가 삼국정립(三國鼎立)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삼국시대는 백제·고구려·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鼎立)하였던 시기이다.

내보이려는 사람은 누구에게 무엇을 내보이려고 하는가? 보일 시(示) 변을 부수로 하는 글자는 빌 기(祈), 빌 도(禱), 빌 축(祝), 땅 귀신 기(祇), 땅 귀신 사(社), 하늘의 신(神; 하느님), 신을 공경할 예(禮), 祖(할아버지 조), 제사 지낼 사(祀), 제사 지내는 사당 사(祠) 등이다. 따라서 示는 정성껏 준비한 제물(祭物)을 올려놓은 제사상(祭祀床)을 공경하는 신에게 바쳐 보이고 빈다는 뜻을 암시한다. 잘 빌면, 복 복(福), 복 지(祉), 복 록(祿), 복 상(祥; 상서로운 상)처럼 길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건성건성 빌다가는 재앙 화(禍), 꺼릴 금(禁)과 같은 흉한 상황으로 몰린다.

파자하면, 示 = {小, 一, 丶}. 示의 아래 세 획은 小로 보이나 제사상을 받치는 발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 가운데의 가로 뻗은 획 一(한 일)은 제사상이다. 제단(祭壇)이다. 제단의 상형은 不이다. <네이버 한자사전>에서 不의 8번째 뜻은 ‘크다’이다. 不(클 불)은 ‘큰 제단’으로 유추할 만하다. 示의 맨 위의 획 丶(점 주)는 큰 제단에 정성껏 올려놓은 제물이다. 示는 큰 제단(不)에 정갈한 제물을 올려 신에게 공경하는 정성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겠다. 示가 명사로 쓰일 때는 신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示를 ‘(신에게) 보일 시’로 읽음이 자연스럽다.

<문중원 기수 아내와 해고노동자가 함께 차린 거리의 차례상>

출처: 한겨레, 2020.01.25.
출처: 한겨레, 2020.01.25.

제(祭)와 사(祀)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파자하면, 祭={示, 月, 又}. 祭는 신이 강림(降臨)하는 제단(示) 위에 고기(月; 육(肉)달월)를 오른손(又)으로 올리는 모습을 표현한 글자이다. 祭는 사람과 신이 서로 접하는 상황의 상형(象形)이다. 한편, 祀={示, 巳}. 사(巳)는 태아, 자식을 뜻한다. 祀를 형성문자로 보면, 示는 뜻을, 巳는 소리를 각각 나타낸다. 이때 祀는 몸을 구부려 신(示)을 모신다는 뜻이 된다. 祀를 회의문자로 보면, 祀는 자식(巳)이 신(示)에게 제(祭)를 올린다는 의미를 띈다.

예전에 결혼한 지 한참 됐는데도 아이가 들어서지 않으면, 삼신할머니께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당시에는 삼신할머니가 아이를 점지한다고 믿었다. 나의 선친께서 6·25사변 중 군대에 가 계시는 동안 할머니는 새벽 일찍 장독대에다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치성(致誠)을 드렸다. 당신의 아들과 뭇사람의 안전을 빌었다.

<정화수(井華水)>

출처: 2013-12-31.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17770.html

오래전에 들은 전설 같지 않은 전설이다. 외아들은 전쟁 중에 입대했다. 그 어머니는 이른 새벽마다 동네 우물에 나가 정화수를 떠와 빌고 빌었다. 어느 날 새벽, 머리에 인 물동이가 그만 손의 힘이 풀리면서 땅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어머니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새벽마다 빌었다. 농사일에 쫓기면서 그날을 막 잊어버릴 만큼 시간이 떠난 후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날을 헤아려봤다. 바로 물동이가 손에서 빠진 그날이었다. 어머니는 자식과 더불어 적어도 열 달은 한 몸이었기에 감응을 잘한다. 어머니와 아들은 바로 그날에 혼으로나마 접한 셈이다. 어머니는 사는 동안 해마다 그날에 제(祭)를 올리면서 아들을 접해야 한다니, 참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상황이다. 순국선열(殉國先烈)과 그 유가족에게 정성을 드러내 보이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국군 전사자 유해봉환 행사>

출처: 2020-06-24.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950820.html

글자 示를 보면, 성당의 제대(祭臺)가, 선친의 제사 때 차린 제사상(祭祀床)이, 선산에서 시제를 모실 때 제물을 올려놓은 상석(床石)이 떠오른다. 示는 ‘(신에게) 보일 시’로 읽는다. 또한 신이라는 뜻도 내포한다.

 

편집 : 객원편집위원 김혜성(cherljuk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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