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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앞에서

작성 김미경 편집위원 | 승인 2020.07.14  10: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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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로 이동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침대는 병실을 나왔다. 병실 복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침대 이동을 위해 가장자리로 붙어 섰다. 수술을 받으러 가는 환자에게 경의를 표하듯 차렷 자세 굳은 표정이다. 나를 힐끗 보는 사람도 있다. 좁은 복도에서 살짝 어색한 자세로 침대를 따라갔다. 침대 한편을 가볍게 잡았지만 오히려 침대를 다루는 이송원과 엇박자가 나는 것 같아 슬그머니 손을 뗐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8층에서 3층까지.. 그는 어지러운지 눈을 감고 있다. 이송원이 오른손과 몸으로 기막히게 회전하며 침대를 움직였다. 단 한 번의 덜컹거림도 없이 침대는 엘리베이터를 나와 3층 수술실로 향했다.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눈을 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미소가 사라진 눈이다. 그렇다고 걱정 가득한 눈도 아니다. 끔벅끔벅 수차례 떴다 감는 눈에서 많은 생각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갔다 올게” 하고 들어가는 그의 건조한 목소리에 이상하게 마음이 짠하다.

며칠 전 그는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세 사람에게 연락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놀리듯 웃어가며 “연락할 사람이 세 사람 밖에 없어?”라고 했지만, 그는 진지하게 “그러네... 세 사람에게 연락하면 다 통해. 내가 너무 단출하게 살았나?” 했다. 알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도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금전 거래 상황 등도 문자로 보내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이 내 아내라 행복해요.”라고 했다. 별로 심각하지 않는 이 상황을 그가 괜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나중에 두고두고 놀려먹을 거야.”라고 했지만 마지막 말에선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가끔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난 이제 여한이 없어. 내가 하고 싶은 건 다하지 못했어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다한 것 같아. 물론 다 잘했다는 건 아니야.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만큼은 했어.” 그 말이 싫었다. 그가 교만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세상에 여한이 있는데 언제든 훌쩍 떠나버릴 것만 같은... 그렇게 떠나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하는 그가 얄미웠다. 그의 인생에 나는 이제 없어도 되는 존재일까?

그런데 수술실로 들어가는 그의 눈엔 내가 있다. 두고 갈 수 없는 내가 그의 눈 속에 가득 담겨 있다. 말 하지 않아도 눈빛 하나로 알 수 있다. 내 생각에 쉽게 떠나진 못하겠구나...

보호자 대기실에는 상황판이 있다. 이름과 함께 현재 상황을 알려준다. ‘수술 대기', '수술 시작', '수술 종료', '회복실'이란 네 단어가 가운데를 *표한 이름과 함께 돌아가면서 나온다. 큰 병원이라 그런지 환자 20명 수술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웃음을 잃어버린 보호자들은 일어 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환자의 진행상황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다. 입원실에 가서 대기하고 있으면 이송원이 환자를 데려다 준다고 했지만, 점심시간임에도 아무도 올라가는 사람은 없다. 말없이 상황판과 휴대폰만 번갈아가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불안함이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다. 한 이름에 ’수술 종료‘ 메시지가 뜨면 안심한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 쉬며 그제야 몸을 좀 움직여 보는 한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회복실에서 전화로 이름이 불리면 그제야 말이라도 한마디 뜨며 웃음을 보인다.

▲ 사진출처 : https://www.pexels.com/ko-kr/photo/3259624/(무료 이미지)

그는 11시 20분 ‘수술 대기‘에 있다가 11시 40분 수술이 시작되었다. 꼬리를 질질 끌며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던 2시간도 느릿느릿 지나갔다. 13시 50분 '수술 종료'가 뜨면서 조금 후에 '회복실'이라고 상황판이 바뀐다. 수술 중 보호자를 부르지 않았으니 돌발 상황 없이 수술이 잘 끝났다는 의미다. 회복실에서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면 전화벨이 울린다. 30~40분 있으면 그가 나올 수 있다. 마취가 깰 경우에 말이다. 그 병원은 마취사고가 한 번도 난 적이 없다고 하니.., 믿고 기다릴 수밖에...

사실 그는 마취를 걱정했다. 자신이 마취발이 너무 잘 받는다는 이야기를 종종했다. 수면내시경으로 위와 장을 검사하고 나면 남들보다 더 자려고 했기 때문이다. 비몽사몽 헤매는데도 간호사는 이젠 가도 된다고 일으켜 세우며, 다음에 수면내시경을 할 때는 보호자와 같이 와야 한다고 했다. 멀쩡한 아저씨에게 무슨 보호자냐며 창피하다고 수면내시경을 받지 않았다.

그가 회복실로 들어간 지 30분이 되자 내 엉덩이도 의자에 붙어 있을 수가 없었다. “삐리리링 ~~” 세 번째 달려가 받은 전화해서 드디어 그의 이름이 들린다. 회복실에서 나오는 그를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는다. ‘나... 살았어’하는 말이 들리는 듯하다. 다른 사람에 비해 짧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었는데 괜스레 심장만 두근두근 고생한 듯싶다.

이송원의 빠르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무사히 병실에 도착했다. 다시 잠에 취한 듯한 그가 스스로 몸을 조심스레 움직여 침대로 옮겨간다. 그리곤 깊은 잠에 빠진다. 2시간 지났을까? 아직 말은 못하지만 눈을 뜬 그가 휴대폰을 찾는다. 걱정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수술을 잘 마쳤다는 문자를 넣어주곤 또 잔다.

자고 있는 그를 바라본다. 내 죽을 때까지 내 옆에 있어달라는 말은 안 해도 알겠지...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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