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고추 한 봉다리


              - 권말선
 

안동풋고추
한 봉다리 얻어 집으로 가는 길 
가방 열 때마다 풀 냄새가, 고춧잎 냄새가
 
짭쪼롬한 쌈장 찍어 와삭! 깨문 듯 혀는 벌써 알큰함에 긴장하고
된장찌개엔 역시나 쫑쫑 썰은 맵싸한 풋고추가 제격이지
한 입 깨물면 입 안 가득 국물 흥건한 스읍 고추장아찌
 
가방 열 때마다 알싸한 내음 훅 훅 풍겨오고
마음은 왜 그리도 흐뭇한가
풋고추 한 봉다리
 
언제였더라
끝도 없이 넓었던 친구네 고추밭
비닐푸대 질질 끌며
고추고랑에 허리 꾸부리고
붉은 붉은 붉은 고추 똑 똑 따다
마당에 산처럼 쌓았었지, 어린 날
그 고춧가루
어떤 반찬에 어느 집 김장에
버무려졌을까, 지금은 다 사라진
 
언제간 마당가에
딸기밭을 만들고
꽃밭을 만들고
감나무를 심고
감나무에 오르고
고추도 잔뜩 심어야지
 
그리운 고향
돌아가지 못할 것에 대한
눅눅한 그리움
훅 훅 안겨온다
풋고추 한 봉다리

 

편집 : 양성숙 객원편집위원

권말선 주주통신원  kwonbluesun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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