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부터 11일까지 Keystone 학회에 참석했다. Keystone 학회는 1972년부터 현재까지 50년간 이어져왔다. 미국 Colorado주에 있는 Keystone Resort에서 주로 진행한다. Keystone Resort는 스키 관광지로 유명하다. 스키 관광지답게 주위에 아무것도 없어 학회장에서 열심히 강의를 듣다가 저녁엔 다들 술집으로 우르르 몰려가 술을 마시며 하루를 마친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보단 덜 사교적이다. 따라서 고립된 공간에서 학회를 진행하고 한 공간에 과학자들을 몰아넣어 서로 만나게 해주어야 협력연구도 잘 진행된다고 생각해서 그 지역을 고른 거 같다. ㅎㅎㅎ

하지만 내가 참석한 학회는 팬더믹 상황을 고려해 가상공간에서 진행했다. Keystone Symposium은 1년에 총 52개의 학회를 개최할 만큼 크고 명성이 자자한 학회다. 학회에서 발표하는 교수들은 세계 탑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연구 실적이 뛰어나다. 회사들도 참석한다. 개발 중인 약에 대한 발표를 통해 치료제에 대한 현재 진행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다.

내가 참석한 학회는 ‘신경 퇴행성 질환 : 유전자, 메커니즘 및 치료학’ 이라는 어렵고도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학회다. 좀 쉽게 풀이하자면 치매, 파킨슨 병, 헌팅톤 병과 같은 뇌질환의 원인을 찾고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를 주제로 다룬 학회다. 

학회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쉬는 시간 거의 없이 진행되었다. 한 교수 당 20~30분 정도 발표를 하고 5~10분 정도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다. 질문은 채팅룸에 실시간으로 올릴 수 있다. 질문이 마음에 들면 상대방에게 하트를 쏘아줄 수 있다. 하트가 많은 질문을 우선순위로 진행자 2명이 돌아가며 질문을 읽고 교수는 이에 답한다.

사실 가상이 아닌 실제 학회에 가면 손을 들고 선택 받으면 앞으로 직접 나가 마이크를 잡고 질문한다. 대가인 교수님들 앞에서 석·박사 학생이 앞으로 나가 질문하기란 쉽진 않다. 하지만 가상공간에서는 이런 부담이 확~ 줄었다. 채팅룸에 질문을 남기면 이름만 뜨고, 질문자가 학생인지 교수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인기투표를 통해 질문 대부분을 선택하기 때문에 내가 한 질문이 선택될 가능성도 있다. 나도 채팅룸에 여러 번 올린 질문이 선택되어 내가 한 질문의 답을 바로 들을 수 있어 신기했다. 궁금증이 바로해소되어 시원~했다.

가상공간 학회이지만 강의는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인상적이고 획기적인 연구결과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년 봄에 박사 졸업을 위해 달리고 있는 나는 연구결과가 인상적이고 좋은 인상을 주는 교수들을 한 명씩 적어 나갔다. 3일 동안 진행되었던 학회가 끝나고, 마음에 들었던 교수들을 다시 쭉 훑어 봤다. 놀랍게도 전부 다 여자 교수님이었다! 그만큼 이번 학회엔 여자교수님이 굉장히 많았고, 잘 웃고 친절해 보이는 교수님들을 선택해 의도치 않게 여자 교수님만 적게 된 게 아닌가 싶다 ㅎㅎ

그중 너무나 재미난 연구결과를 보여준 여자교수님 세분을 소개하겠다.

Gloria Choi 교수님
Gloria Choi 교수님

먼저 Gloria Choi 교수님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어릴 때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국적이 미국인인 MIT 교수님이시다. 한국 여성이라 그런지 더욱 반가웠다. 이분은 Harvard에 계신 한국계 허준 교수님과 결혼을 하셨고, 같이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계신다. 그 둘은 과학계에서 탑 저널인 Nature, Science에 논문을 꾸준히 내고 있다. 가히 멋진 커플이다!

Gloria Choi교수는 임신 중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자폐증을 보이는 아이를 낳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결과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바이러스 감염이 임산부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이한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원인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활발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 Science에 1저자로 발행한 논문에 의하면 임신 중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경우 특정 면역세포(Th17 세포)가 활성화 된다. 활성화된 Th17 세포는 태아의 뇌로 침투해 뉴런에 해로운 인자(IL17a)를 마구 뿜어낸다. 이는 결국 태아 뇌발달에 영향을 주어, 출산 후 자폐아 같은 행동을 유도한다.

해로운 인자 IL17a를 태아의 뇌에서 없애면 자폐증 행동이 억제될 수 있을까? 항체 치료제로 IL17a를 억제시켰을 때 자폐증 행동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바이러스 감염은 어떻게 Th17세포를 활성화시킬까? 놀랍게도 임신한 쥐에 존재하는 특정 장내 박테리아가 Th17세포를 활성화시켜 태아의 뇌로 침투하게 한다(2017, Nature). 그리고 특정 박테리아를 없애는 약을 임신한 쥐가 먹으면 바이러스 감염이 되더라도 자손이 자폐증과 같은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모든 실험은 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Anne Brunet 교수님
Anne Brunet 교수님

두 번째는 Anne Brunet 교수님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현재 Stanford 대학에서 노화원인과 방지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계신다. Anne Brunet 교수는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매일 저녁에 와인 한잔을 마신다고 한다. ㅎㅎ

노화는 아시다시피 일방통행으로 알려져 왔지만 다양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노화과정을 지연시키고 잠재적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알려진 노화 역전 방법은 4가지다.식습관 개선, 운동, 노화세포를 없애는 약을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젊은 피 수혈이 그것이다. 이 4가지 방법 중 Anne Brunet 교수는 운동과 젊은 피 수혈을 이용해 나이든 쥐에 존재하는 뇌 줄기세포의 노화를 역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미지 출처 : https://sciencebasedmedicine.org/parabiosis-the-next-snakeoil/
이미지 출처 : https://sciencebasedmedicine.org/parabiosis-the-next-snakeoil/

비인간적 방법인 젊은 피 수혈 연구방법은 생각 외로 간단하다. 나이든 쥐와 젊은 쥐의 혈관을 서로 연결하여 2~3주 정도 같이 붙어 있게 만든 다음 3주 뒤에 둘을 떼어 낸다. 그리고 나이든 쥐의 뇌를 수집하여 줄기세포 표현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했다. 놀랍게도, 젊은 쥐 피를 받은 나이든 쥐는 뇌줄기세포가 젊어졌다. 피의 어떤 성분이 노화를 방지하는지는 확실친 않다. 더불어 다른 실험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젊은 피 수혈은 뇌뿐만 아니라 신체 여러 곳에 있는 줄기세포 재생력을 증진시켜 각종 노화관련 질병에 도움이 된다.

다음으로 사용한 노화 방지 방법은 운동이다. 나이든 쥐를 매일 운동하게 만들고, 후에 뇌를 수집해 줄기세포 표현형을 보았을 때, 젊은 피만큼은 아니지만 운동 역시 노화를 역전시킨다. 연구에 따르면 운동을 통해 발생하는 다양한 호르몬들이 쥐의 대사량을 증진시켜 줄기세포를 젊게 만들었다. 다른 실험실들의 연구결과를 더하자면 운동을 하면 Irisin이라는 호르몬이 근육세포에서 생성된다. 이 호르몬은 혈액을 따라 뇌에 전달 되며 이는 기억력 상승, 치매 방지 등 다양한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다.

강의에서 언급하진 않았지만, Anne Brunet 교수님이 쓰신 리뷰논문에 의하면 간헐적 단식, 탄수화물을 적게 먹는 Ketogenic diet, 그리고 레드와인에 들어있는 Resveratrol이라는 물질이 노화를 예방하거나 역전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는 젊고 예뻐지기 위해 태아의 피를 마시거나 목욕을 했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노화를 막기 위해 다양한 성형외과의 각종 주사에 의존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방법은 간단해 보인다. 건강히 적게 먹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

  Elaine Hsiao 교수님
  Elaine Hsiao 교수님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Elaine Hsiao 교수님은 아주 젊고 발랄한 교수님이다. 몸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가 인간 신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고 있다. 우리 몸에는 총 1014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고 그중 장내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우리 몸에 있는 총 세포수와 박테리아수를 비교하면, 박테리아가 10배로 많다. 또한 우리 몸에 있는 박테리아를 다 합쳐서 무게를 재면 거의 3kg 정도 되고 이는 뇌보다 3배나 무겁다. 따라서 우리 몸은 박테리아와 몸 세포와의 공존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볼 수 있다. Elaine 교수님은 이 중 장내 박테리아가 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우리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장내미생물들은 숙주인 인간과 함께 진화하면서 인간의 건강과 질환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여러 연구들에서 밝혀지고 있다. 위 그림은 다양한 미생물 종들의 장내 분포를 보여준다. 아래는 장내미생물들의 현미경 영상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학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사진출처 : http://scienceon.hani.co.kr/431514)
» 장내미생물들은 숙주인 인간과 함께 진화하면서 인간의 건강과 질환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여러 연구들에서 밝혀지고 있다. 위 그림은 다양한 미생물 종들의 장내 분포를 보여준다. 아래는 장내미생물들의 현미경 영상들.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학교,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사진출처 : http://scienceon.hani.co.kr/431514)

장내 박테리아는 외부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Elaine 교수님은 저산소 환경과 Ketogenic diet(저탄수화물, 고지방 식품 위주로 구성한 식단)을 했을 때, 쥐의 장내 박테리아가 어떻게 변하고 쥐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했다. 먼저 쥐에게 Ketogenic diet를 일주일간 시행했다. 4~5일 동안 간헐적으로 저산소 환경에 노출시켰다. 이런 환경을 겪은 쥐는 기억력을 요구하여 출구를 찾아야 하는 미로에서 더욱 헤맸다. 이 쥐는 또한 장내 박테리아의 종류가 바뀌어 있었으며, 이는 면역세포(T 세포)가 염증반응을 일으키게 유도하였다. 장내 박테리아에 의해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T세포는 뇌세포에도 영향을 주어 기억력을 저하시켰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환경에 있느냐 혹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장내 박테리아는 유동적으로 변하여 우리 행동, 생각, 기억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먹는 음식에 따라 장내 박테리아는 바뀔 수 있고, 우리 기억력, 더 나아가 기분과 뇌질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세 교수님의 흥미진진한 연구결과를 보며 다시 한 번 내가 왜 과학자 길을 걷게 되었는지, 내가 왜 이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하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가상공간에서 진행된 학회였지만, 쟁쟁한 그들과 함께 나도 새로운 과학을 꿈꿀 수 있었고, 미래에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 참고로 Anne Brune 교수님과 Elaine Hsiao 교수님의 Ketogenic diet에 대한 연구 결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아직 Ketogenic diet에 대해서는 상반된 연구결과가 많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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