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기 전 항상 챙기는 아이템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에어팟(애플 무선 이어폰)이다. 에어팟을 귀에 꽂고 신나는 음악을 골라 경쾌한 발걸음으로 실험실로 향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마치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행위 의식’처럼 생각된다.  

어느 날 아침, 에어팟을 찾을 수 없었다. 항상 하던 행위가 깨진다 생각하니 갑자기 불안이 밀려왔다. 정신없이 온 집안을 뒤엎고 혼자 추리게임을 하며 에어팟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에어팟은 어디에도 없었다. 더는 출근을 지체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에어팟 없는 출근길이 지루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신선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차가 달리는 소리,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더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의식하게 되었다. 

일을 끝내고 헬스장에 갔다. 운동하면서 신나는 음악을 듣는 건 필수다. 운동할 때 듣는 음악은 운동에서 오는 순간순간의 고통을 이겨내고 다음 운동으로 넘어가게끔 응원해주는 일종의 ‘노동요’다. 따라서 음악이 없는 운동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심하고 고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음악이 없으니 운동이 주는 고통이 감각적으로 다가오며, 근육 움직임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엔 주변 사람들도 슬금슬금 쳐다보며 다들 어떤 운동을 하는지, 주위에 누가 있는지 등 주위 환경을 살피기도 했다. 

저녁엔 멀리 떨어진 연애를 하는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음식을 만드는 중이라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한다고 했다. 에어팟이 있을 땐 음식 만들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에어팟 없인 일을 하면서 통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음식 만드는 걸 후다닥 끝내고 소파에 앉아 차분한 상태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자친구는 주로 출근하면서 전화를 한다. 통화하다가도 회사 사람을 만나면 인사하기도 하고, 커피 주문도 하므로 대화에 100% 집중하지 못했다. 그런 대화에 익숙했었는데 유난히 오늘따라 대화가 도마 위 채소처럼 계속 잘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속적으로 이런 느낌이 들자 결국 대화에 집중할 수 없어, 잘 출근하라고 이야기한 다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에어팟이 생긴 뒤로 우리는 항상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통화했다. 장을 보면서, 청소하면서, 설거지하면서 통화했다. 남자친구도 마찬가지로 다른 일을 하면서 통화했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을 멈추고 통화하니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힘든 대화를 해왔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통화하고 나면 어떤 주제로 대화했는지 기억이 전혀 안 날 때도 있다. 

에어팟 사용 전 남자친구와 전화할 때면 방에 들어가 대화에 집중하며 통화했던 기억이 있다. 통화하고 나오면 엄마는 “흥~ 무슨 비밀이 많아서 문을 그렇게 꼭 닫고 귀가 빨개지도록 통화를 하냐!”라고 질투 같은 핀잔을 주시곤 했다. 하지만 그 당시를 회상해보면 우리는 항상 다양한 범주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좋은 기억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모든 생활에서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다. 직장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여가시간에서도 끊임없이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TV를 보면서 식사를 하거나, 심지어 먹으면서 일을 하기도 한다. 음악도 운동을 하면서 듣는다. TV를 켜놓고도 핸드폰을 계속 확인하거나 만지작거린다. 정말 순수하게 한 가지 일만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실천하기도 어렵게 느껴진다. 

카페에 앉아 노래 없이 글쓰는 singletasking 중
카페에 앉아 노래 없이 글쓰는 singletasking 중

에어팟이 없어지자 그동안 내 삶이 얼마나 정신없이 그리고 몽롱하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삶을 개선하기로 작정했다. 먼저 짧더라도 남자친구와 통화할 때는 한 가지 일인 ‘대화’만 하기로... 음악은 ‘감상’ 시간을 따로 갖기로... 휴대폰에서 보여주는 자잘한 동영상들은 최대한 보지 않고 대신 책을 읽기로... 밥 먹으면서는 음식 맛을 음미하기로... 아직 실천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 삶은 '싱글태스킹(singletasking)'을 하면서 더욱 풍성해지고 감성적이며 덜 몽롱해지는 것 같다. 

멀티태스킹이 정말 효율적일까? 동시에 여러 일을 해야지만 지혜롭게 사는 것일까? 현대사회는 직장은 물론 모든 면에서 멀티태스킹이 잘되는 사람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를 돕기 위해 에어팟, 애플워치, 5G, 더욱 고도화되고 빨라진 PC, 핸드폰들이 우리 구매를 자극한다. 물론 이런 아이템들이 우리 일상을 엄청나게 개선한 점도 있지만, 무분별한 사용은 오히려 사고력과 감각을 뿌옇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부터 싱글태스킹에 도전해 보면 어떨까? 나처럼 에어팟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깨닫는 대신 ‘시간을 사용하거나 쓴다’라는 생각을 잠시 접고, ‘시간을 즐긴다’라고 생각하면 싱글태스킹이 좀 쉬워질 것이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지산 주주통신원  elmo_part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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