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야기 9] 경국지색’에서 짧게 언급했던 하 나라 걸 왕과 말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진 : 한겨레 그림판(11, 5)
사진 : 한겨레 그림판(11, 5)

 

역사는 반복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지난 수천 년의 역사에서 온고지신의 지혜를 찾아야 하겠지요.

제 기억에 사마천의 사기를 끝까지 읽도록 흥미를 유발한 고사가 주지육림(酒池肉林)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의 학생이 알만한 사자성어의 뿌리가 사기에 줄줄이 나오는데, 당시 느낌은 새로운 눈이 열리는 신세계였습니다.

중국 상고시대 태평성대를 연 요와 순 그리고 하 나라와 상 나라를 세운 우 왕과 탕 왕을 4대 성군이라고 합니다. 요는 순에게 순은 우에게 왕위를 넘겨주지요. 모두 황하의 범람을 잘 관리하여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우는 왕위를 선양하는 선례를 깨고 자기 아들에게 넘겨주면서 최초의 전제국가인 하(夏) 왕조가 탄생합니다.

주지육림의 고사는 하 왕조 마지막 왕인 폭군 걸(桀) 왕과 왕비 말희(妺喜) 이야기입니다.

‘걸은 중국 하조 제17대 군주이며 마지막 군주이다. 걸은 건장한 신체로 능히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았다. 후세의 문헌에 따르면 폭군이 되었다고 서술한다. 왕후 말희를 총애하여 정사는 돌보지 않고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를 많이 죽였다. 대신 관룡봉은 통째로 지지고 구워 죽였다. <통감외기>에 의하면 호화로운 궁전을 짓느라 백성과 재정을 파탄 냈다. 술 연못을 만들어 음탕한 쾌락에 빠졌으며, 북을 치면 3천 명이 소처럼 엎드려 마셨다.

桀jié(?-?)中國夏朝第十七任君主,亦是最後一任君主.桀身體強壯,能赤手空拳搏虎豹。后世的文獻將他描述成一個暴君:他寵信王后妺喜,對政事不聞不問之餘,還大量殘殺忠良,以炮烙殺大臣關龍逢。《通鑑外紀》載:“桀作瑤台,罷民力,殫民財。為酒池糟堤,縱靡靡之樂,一鼓而牛飲者三千人(维基百科 발췌)’

하 나라는 아직까지 유물이 나오지 않아 역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허의 발굴로 역사시대로 편입된 상 나라가 은이란 도시로 성립된 도시국가이었듯, 걸 왕에 의해 망한 하 나라도 도시국가의 하나일 것입니다.

모든 설을 인정하고 유추해보면 걸 왕은 지금부터 약 3,500~4,000년 전 폭군이고, 말희는 나라를 망하게 한 요부로 중국 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여인입니다.

21세기에 모든 범죄의 뒤에는 여자가 있다고 말하면 제 명에 살기는 어렵겠지만, 중국 역사는 영웅들의 활약이고 그 영웅들의 이야기에는 대부분 술과 여자가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사마천은 아마도 주지육림이란 이야기를 앞머리에 실어, 후세들이 술과 여자를 경계하기를 바랐던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상술한 바와 같이 걸 왕은 건장하고 능력도 갖추었기에 왕이 되었겠지요.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서 그런지, 아니면 대부분 겉으로 강한 남자가 내면은 유약해서 그런지 걸 왕은 겉은 강하지만 속은 허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외강내약(外强內弱)형 인간은 쉽게 술을 탐닉하고, 부드럽고 요사스러운 여자나 주술에 쉽게 빠져들지요. 술에 취하면 세상이 다 발아래 보이고, 용기는 하늘을 찌릅니다. 그러다 권력이라도 잡으면 폭군이 되지요.

요부 말희를 위해 호화로운 궁전을 지었고, 연못을 만들어 술로 채워 능히 배를 띄웠으며, 주변에는 나무 기둥을 세우고 고기를 걸어 안주로 삼았다고 합니다. 3천의 궁녀를 들여 고관 대신들과 나체로 음주를 즐기며 음탕한 생활을 하였고, 충언을 고하는 신하들은 처참하게 죽였으니 나라가 망하는 건 당연지사.

하(夏) 나라가 망하고 탕(湯) 왕이 세운 상(商) 나라도 똑같은 폭군 주(紂) 왕과 요부 달기에 의해서 망합니다. 주지육림과 포락지형(炮烙之刑) 고사가 거의 복사판입니다. 하 나라 걸 왕과 상 나라 주 왕을 붙여 폭군 걸주(桀紂)라 칭합니다. 후대에 신하들은 걸핏하면 ”주상, 걸주(桀紂)의 뒤를 따르시렵니까? 성군이 되십시오!“ 라고 협박했지요.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가난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사마천 사기의 교훈 덕분에 주색을 멀리하여 지금까지 패가망신의 경험은 없이 살고 있으니 어쩌면 주지육림의 고사가 저의 큰 스승이기도 합니다.

약 3,5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 주지육림 대신 폭탄주로 두주불사를 자랑하는 걸 왕과 요부 말희가 등장하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조상의 영령이 보우하시고, 대한민국의 운명이 다하지 않았다면 예서 끝나지는 않겠지요!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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