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 용어 사용은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지 올해로 78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저버리고 여전히 제국의 언어를 쓴다. 학급<회장>을 ‘반장’으로 부르고 <문화탐방>을 ‘수학여행’으로 부른다. <나들이>를 ‘소풍’으로, 진급 <평가회>를 진급 ‘사정회’라고 한다. 너무 익숙한 탓이다. 어디 그뿐이랴! 담임 선생님이 들려주는 <덕담>이나 <도움 말씀>을 ‘훈화’라고 한다. 나아가 <결석신고서>를 ‘결석계’, <휴학신청서>를 ‘휴학계‘, <정담회>를 ‘간담회’라는 표현도 그렇다.

학교 바깥도 예외는 아니다. <막무가내>를 ‘무데뽀’, <송년회>를 ‘망년회’, <전단지>를 ‘찌라시’, <손수레>를 ‘리야카’, <가득 채움>을 ‘만땅’, <곁들이>를 ‘스끼다시’, <임시 계약>을 ‘가계약’, <임시 건물>을 ‘가건물’, <콘크리트>를 ‘공구리’, <흠>을 ‘기스’, <둔치>를 ‘고수부지’, <추산서>를 ‘견적서’, <예삿일>을 ‘다반사’, <원앙>부부를 ‘잉꼬’부부, <돌려봄>을 ‘공람’, ‘회람’, <재가>를 ‘결재’, <얼마 동안>을 ‘당분간’, <빈칸>을 ‘공란’, <선임>을 ‘고참’, 버스 <전세>를 버스 ‘대절’, <빈 집터>를 ‘나대지’, <이어달리기>를 ‘계주’, <포대>나 <자루>를 ‘마대’, <이름표>를 ‘명찰’이라고 표현하는 등 제국의 언어는 끝이 없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를 더 적어 보자. <가짜>를 ‘가라’, <부름>을 ‘호출’, <실어옴>을 ‘반입’, <분배>를 ‘분빠이’, <본보기>를 ‘견본’, <이해>를 ‘납득’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흔하다. 모두 식민지 언어 잔재다. 그밖에도 나이든 세대에 익숙한 <접시>를 ‘사라’, <팬티>를 ‘빤스’, <도시락>을 ‘벤또’, <분필>을 ‘백묵’, <진남색>을 ‘곤색’, <들통나다>를 ‘뽀록나다’, <갓길>을 ’노견‚ <우두머리>를 ’댓빵‚ <틀>을 ’와꾸, <합계>를 ’도합‚ <단속>을 ’단도리‚ <굶는 아이>를 ‘결식아동’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글쓴이 또한 별 생각 없이 그렇게 써왔다는 사실에 적이 놀랐다.

특히 100년 넘게 써온 ‘유치원’(幼稚園)이라는 표현이 그렇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어린아이를 얕잡아 보며 썼던 표현이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유치원’(幼稚園)을 유아학교로 바꿔야 마땅하다. 제국의 언어 ‘아동’(兒童) 또한 언론계 성찰이 절실하다. 어제 부모가 저지른 ‘어린이 학대’로 11살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찍이 소파 방정환 선생은 ‘아동’(兒童)이란 말 대신 ‘어린이’라는 말을 썼다. 젊은이, 늙은이 하듯이 ‘어린이’라는 순우리말을 1920년에 처음 썼다. ‘어린이날’도 제정해 어린이들 인격을 존중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말 ‘어린이’를 써서 1923년엔 『어린이』 잡지를 펴냈다. 올해로 ‘어린이날’ 101주년 되는 해이자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 되는 해이고 잡지 『어린이』 창간 100주년 되는 해이다.

<어린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고 낡은 봉건 질서와 속박으로부터 조선의 어린이들을 정신적으로 해방시킨 방정환 선생은 조선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자  100년 전 <어린이> 잡지를 개벽사에서 발간했다. 소파 방정환은 천도교 독립운동가로 32살에 요절했다.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출처 : 국가보훈처)
<어린이>란 말을 처음 사용하고 낡은 봉건 질서와 속박으로부터 조선의 어린이들을 정신적으로 해방시킨 방정환 선생은 조선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고자 100년 전 <어린이> 잡지를 개벽사에서 발간했다. 소파 방정환은 천도교 독립운동가로 32살에 요절했다.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출처 : 국가보훈처)

널리 알려졌듯이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사랑은 민족운동의 꿈나무에 대한 깊은 애정이자 인격적 표현이다. 3‧1 시민 혁명을 주도한 의암 손병희 선생의 사위로 3‧1운동 당시 일경에 피검되기도 했다. 방정환 선생의 독립 열망은 어린 시절 ‘소년입지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소년운동을 이끌었다. 18살 결혼 이후엔 ‘소년입지회’를 잇는 ‘천도교 소년회’, 나아가 ‘경성청년구락부’를 창립해 청소년 운동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천도교 청년회’로 계승되었고 ‘천도교 청년회’는 천도교 잡지 『개벽』을 발간하면서 소파 역시 『개벽』 기자로 활동하기에 이른다.

도쿄 유학 시절엔 손진태를 비롯해 조선인 유학생들과 1923년 ‘색동회’를 조직했다. ‘색동회’를 기반으로 『어린이』 잡지를 개벽사에서 발간하였고 그해 ‘어린이날’도 제정했다. 그리고 40개가 넘는 소년운동단체들 통합해 ‘조선 소년운동협회’를 발족했고 바로 ‘조선 소년운동협회’가 최초로 ‘어린이날’ 행사를 거행했다. 모두 소파 방정환의 열정이 깃든 활동의 결실이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 운동이 독립운동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소년운동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방정환 선생은 사회주의 계열 무산(無産)소년운동이 ‘오월회’로 분열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 그러나 1927년 민족유일당 운동의 영향으로 민족주의 소년운동 단체인 조선소년협회는 오월회와 다시 연합해 조선소년연합회로 통합되고 방정환 선생은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소년운동을 묵묵히 감당해 나갔다.

방정환 선생이 1923년에 만든 최초의 『어린이』 잡지에 대한 인기도 인기이지만 무엇보다 지방을 전전하며 열정을 다해 펼친 순회 강연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러한 배경에는 낡은 봉건 질서와 속박에 오랫동안 어린이를 가두어 두었던 조선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 바로 ‘어린이 해방 선언’의 충격이 컸다.

오는 2월 17일에 열리는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 기념행사 포스터(출처 : 어린이 문화연대 이주영 선생님 제공)
오는 2월 17일에 열리는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 기념행사 포스터(출처 : 어린이 문화연대 이주영 선생님 제공)

어린이 인격을 존중하고 어린이에게 높임말을 쓰며 당대 봉건 질서와 낡은 습속에 정면으로 저항하며 실천했던 소파의 행동에 조선 사회가 공감한 때문이다. 1923년에 발간된 월간지 『어린이』 잡지가 1925년 새해를 맞아 신년호 초판이 7일 만에 매진돼 3판까지 발행될 정도였으니 당시 인기를 가늠하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소파 방정환 선생은 서른두 살로 요절할 때까지 『어린이』 잡지 편찬에 혼신을 다했다.

올해로 제국주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 지 78년이 된다. 이젠 더 이상 제국의 언어 ‘아동’(兒童)이란 용어를 쓰지 않아야겠다. 맨 먼저 언론인들을 비롯해 식자층에서 생각 없이 ‘아동’이란 용어를 쓰는 걸 멈춰야 한다. 우리말을 오염시키는 잘못을 강화하기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널리 사용하고 퍼뜨리는 데 힘써야 하겠다.

종로구 새문안로 한글회관 지하에 내걸린 조선어학회 언어독립투쟁(1942-1943) 당시 고초를 겪었던 조선어학회 33인(출처 : 하성환)
종로구 새문안로 한글회관 지하에 내걸린 조선어학회 언어독립투쟁(1942-1943) 당시 고초를 겪었던 조선어학회 33인(출처 : 하성환)

그것이야말로 언어 사용에서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일제 말기 우리말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조선어학회 언어독립투쟁(1942-1943)을 생각하면 후손된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우리 생활 주변에서 ‘아동문학, 아동문학가, 아동심리학, 아동학과, 아동복지(학), 아동학대, 아동권리’라는 용어를 적잖이 마주하고 있다. 올해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을 계기로 언론에서 제국의 언어 대신 아름다운 우리말 쓰기를 고대한다.

종로구 당주동 <주시경 마당>에 세운 미국의 언어학자 헐버트 기념 부조(출처 : 하성환) 그는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우리말글을 극찬했다(출처 : 하성환)
종로구 당주동 <주시경 마당>에 세운 미국의 언어학자 헐버트 기념 부조(출처 : 하성환) 그는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우리말글을 극찬했다(출처 : 하성환)

오늘부터  ‘아동학대’란 표현 대신 ‘어린이 학대’라고 쓰자. 나아가 ‘유엔 아동 권리협약’이란 용어 대신, ‘유엔 어린이 권리협약’이란 말을 즐겨 쓰자. 언론인, 지식인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작은 실천이 큰 울림을 낳기 때문이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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