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주 가까운 두 분이 세상을 떠났다. 모두 90세 넘게 사셨다. 두 분 다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 긴 시간 투병하지 않았다. 한 분은 한 달 정도, 한 분은 두 달 정도... 입원 전까진 정상 생활을 하셨다. 물론 여러 가지로 가까운 이들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일상이 파괴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사시다 갑작스럽게 입원하셨고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평균 수명 이상 사셨고 비교적 자연사에 가깝게 돌아가셨기 때문에 천수를 누리셨다고 생각해서 그럴까~ 장례식장은 통곡하는 분위기 대신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인사하는 분위기였다.

이제 60대 중반을 달려가고 있고... 굥정부만 빼면 비교적 큰 걱정없이 안정된 삶을 살고 있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건강을 잘 지킨다고 생각하면서도... 장례식장에 갔다 오면 언젠간 나에게도 닥쳐올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아무르> 중에서 (사진 출처 : 무료 사진 - https://ndla.no/subject:2fc808ef-7cd4-4982-a429-fa0939e784aa/topic:ef1ef38f-eda0-48d8-914e-5c89d08a42a3/topic:9dc3230a-8a9a-497d-8b12-fab6fe3d4b59/resource:5eefb209-0b41-45ba-8adb-bb29b7265df2)
영화 <아무르> 중에서 (사진 출처 : 무료 사진 - https://ndla.no/subject:2fc808ef-7cd4-4982-a429-fa0939e784aa/topic:ef1ef38f-eda0-48d8-914e-5c89d08a42a3/topic:9dc3230a-8a9a-497d-8b12-fab6fe3d4b59/resource:5eefb209-0b41-45ba-8adb-bb29b7265df2)

2012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아무르>가 생각난다. 팔십이 넘는 노부부의 죽음을 그린 영화다. 음악가였던 두 부부(조르주와 안느)는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고 차분한 노년의 삶을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안느에게 뇌경색이 오고 수술 후 반신불수가 된다. 조르주는 정성스럽게 그녀를 간호하지만, 그녀의 병세는 회복될 조짐이 없다. 딸은 엄마를 병원에 보내라고 한다. 하지만 조르주는 병원에 보내지 말아 달라는 안느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 안느는 점점 타인의 손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신과 그런 자신을 간호하는 조르주를 보는 것이 괴롭기만 하다. 조르주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안느는 갈수록 악화된다. 자기 몸을 못 가누는 것뿐만 아니라 결국 의사소통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어 간다. 조르주는 안느의 몸이 무너지는 건 견딜 수 있지만,  마음과 영혼이 무너지는 건 견딜 수 없다. 

영화의 대부분은 조르주와 안느의 집에서만 전개된다. 몇 안 되는 방문자들을 맞으며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며 촬영한다.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80세가 넘은 두 배우의 연기는 그냥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 자연스럽다. 대사도 많지 않지만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침묵조차도 몰입을 높인다. 아마도 관록 있는 배우들이 명연기와 밀도 있게 전개되는 스토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르주 역을 한 배우는 ‘쟝 루이 트랭티냥(Jean Louis Trintignant)’이다. 1966년에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그 유명한 영화 <남과 여>의 남자 주인공이다. 이 영화로 ‘제38회 세자르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아무르> 개봉 당시 82세였던 그는 이후 세 편의 영화에 더 출연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남과 여: 여전히 찬란한>으로 2020년에 촬영했다. <남과 여>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2022년 92세에 생을 마감했다.

엠마뉘엘 리바(사진 출처 : 무료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mmanuelle_Riva_C%C3%A9sars_2013.jpg)
엠마뉘엘 리바(사진 출처 : 무료사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mmanuelle_Riva_C%C3%A9sars_2013.jpg)

‘안느' 역을 한 배우는 ‘엠마뉘엘 리바(Emmanuelle Riva)’다. <아무르>는 그녀를 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85세에 촬영한 이 영화로 ‘제38회 세자르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비롯하여 6곳에서 여우주연상을 탔다. 말년에 촬영한 영화로 이렇게 상을 받을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리바도 <아무르> 이후 세 편의 영화에 더 출연했다. 2016년 89세에 영화 <로스트 인 파리>를 마지막으로 2017년 90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무르>는 성공한 영화다. 80세 넘는 주연배우 두 명을 기용하고 거의 한 곳에서만 촬영하고도 명작을 만든 감독은 ‘미카엘 하네케’다. 2009년 <하얀 리본>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탔던 그는, 다시 이 영화로 2012년 제65회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이외에 <아무르>는  외국어 영화상, 작품상 등 30개가 넘는 상을 탔다.

비록 허구이지만 지금이라도 나에게 닥칠 수 있는 현실감 있는 영화를 보고 나니 죽음이라는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두 배우 또한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삶과 죽음을 읊조리듯 촬영에 임했으리라.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단숨에 설명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도 죽음만은 어찌하지 못한다. 잘 살았다고 잘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죽음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품위를 잃지 않고 살다 죽기를 바라지만 때론 의지와 관계없이 긴 시간을 생명 유지만으로 살다 갈 수도 있다. 한낮 몸뚱어리만이 남아 지독한 본능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삶도 존중해야 할 삶일까?  그것도 존엄한 생명일까? 모두 그렇다고 말하겠지. 

나의 죽음은 그렇다고 치고 배우자의 죽음은 또 다른 문제다. 배우자가 원하는 죽음이 나의 생각과 다를 경우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조율해야 하나? 조르주는 안느와의 약속인 ‘병원에 보내지 않는다’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부서지도록 노력하지만, 주변인들은 왜 병원에 데려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안느는 물조차 먹기를 거부한다. 조르주가 억지로 먹인 물을 내뱉는다. 안느는 말할 수 없지만 행동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조르주는 순간순간 정신을 놓치기도 하는 안느가 원하는 마지막 삶이 무엇인지 확실히 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도 모두 버리는 용기를 낸다.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도 삶이다. 그 과정이 아름답게 자연스럽게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의학이 살려놓고 자본이 치밀해지면서... 마지막 삶도 철저히 상품화 과정을 밟을 테니 말이다. 그동안, 이 세상은 탄생과 죽음에서만는 자유를 부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탄생은 다양한 상품으로 세상에 등장해있고, 죽음에도 자유를 부여하는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안락사 상품도 나와 있으니...  점점 더 정밀하고 세련된 죽음의 상품이 등장하겠지...

언젠간 나에게도 다가올 그 마지막 삶을 생각하며... 나와 배우자가 서로 원하는 대로 살다 서로 힘들게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삶을 마감했으면 하는 바람을 하고 또 해본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  심창식 편집위원

김미경 편집위원  mkyoung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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