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가 대학 졸업 당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왼쪽부터 여동생, 누님, 글쓴이, 어머니(출처 : 하성환)
글쓴이가 대학 졸업 당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왼쪽부터 여동생, 누님, 글쓴이, 어머니(출처 : 하성환)

누님은 언제나 밝은 얼굴이었다. 대학생 시절, 동생이 힘들어하면 옆에서 따뜻한 말로 위로하며 다독여주고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특히 89년 전교조 해직 당시, 누님은 동생을 지지하고 응원해 준 든든한 힘이었다.

군산 평화동에서 누님과 함께한 모습(출처 : 하성환)
군산 평화동에서 누님과 함께한 모습(출처 : 하성환)

성장하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누님과 다툰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린 시절 군산에서, 삼천포에서,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목포에서, 마지막으로 부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누님은 언제나 화사했고 든든했으며 엄마처럼 따뜻했다.

1970년경으로 추정하는 부산시 동구 초량동 생활할 때 기념사진(출처 : 하성환). 사남매 맨 오른쪽에 있는 분이 누님이고 제일 왼쪽이 글쓴이, 글쓴이 옆에 남동생과 여동생이 함께했다.
1970년경으로 추정하는 부산시 동구 초량동 생활할 때 기념사진(출처 : 하성환). 사남매 맨 오른쪽에 있는 분이 누님이고 제일 왼쪽이 글쓴이, 글쓴이 옆에 남동생과 여동생이 함께했다.

목포에서 유달초등학교를 다닐 즈음 누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곤 했다. 그 친구들은 누님처럼 어린 동생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귀여워했다. 그 기억이 아련하다. 내가 엄마 몰래 만화방에서 놀다 들어와도 누님은 눈 감아 주었다.

목포 유달초등학교 시절  누님과 함께 다정한 한때를 보내며(출처 : 하성환)
목포 유달초등학교 시절  누님과 함께 다정한 한때를 보내며(출처 : 하성환)

저녁 늦게까지 딱지를 치며 놀다 들어와도 누님은 항상 밝은 얼굴로 나를 대해줬다. 엄마는 왜 일찍 일찍 들어오질 않느냐며 야단 반 걱정 반 목소리를 높이셨지만 누님은 단 한 번도 어린 동생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고향인 전북 임실군 관촌면과 삼계면 가던 길에 아버지, 누님과 함께한 순간(출처 : 하성환)
어머니와 아버지 고향인 전북 임실군 관촌면과 삼계면 가던 길에 아버지, 누님과 함께한 순간(출처 : 하성환)

어린 시절 선친께선 누님을 매우 사랑하셨다. 여행하기와 사진 찍기를 무척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짙은 선글라스로 멋을 내며 항상 누님을 데리고 다니셨다. 어쩌다 내가 누님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노라면 아득하지만 옛날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누님은 어린 시절 무용을 배웠다. 어머니의 교육열 때문인지 그 당시 흔치 않던 유치원을 다녔고 무용도 공부했다.

경남여고 시절 가족과 함께 나들이간 누님(출처 : 하성환) 누님때부터 중학교 무시험 전형이 시행됐다. 불행하게도 추첨된 학교가 해운대여중이었다.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해운대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코피를 흘리며 다니던 누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은 해운대가 부산의 중심이자 관광지역이지만 당시 해운대는 허허벌판이었다. 한 학년 600명이 넘는 속에서  누님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공부를 잘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 마지막 입학시험을 치른 세대로서  세칭 명문여고였던 경남여고에 합격했다. 경남여고 입학 후 누님은 흥사단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소홀히하자 어머니에게 야단도 맞고 했다. 그 아련한 기억이 남아 있다.
경남여고 시절 가족과 함께 나들이간 누님(출처 : 하성환) 누님때부터 중학교 무시험 전형이 시행됐다. 불행하게도 추첨된 학교가 해운대여중이었다.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해운대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코피를 흘리며 다니던 누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은 해운대가 부산의 중심이자 관광지역이지만 당시 해운대는 허허벌판이었다. 한 학년 600명이 넘는 속에서 누님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을 만큼 공부를 잘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 마지막 입학시험을 치른 세대로서 세칭 명문여고였던 경남여고에 합격했다. 경남여고 입학 후 누님은 흥사단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소홀히하자 어머니에게 야단도 맞고 했다. 그 아련한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어린 시절 누님은 공부를 잘했다. 목포 유달초등학교 시절, 누님을 짝사랑하던 남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학업성적이 우수한 게 한몫 했겠지만 글쓴이가 생각할 땐 세련되게 돋보이고 희고 고운 얼굴에 그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2004년 글쓴이가 관악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어느 날 낯선 분이 찾아왔다. 그분은 2000년을 전후해, 조선일보와 맞짱을 뜨며 한국 사회 언론과 근현대사 분야 수많은 책을 저술한 강00 교수의 동생이다. 어린 시절 목포 유달초등학교 시절, 누님을 몹시도 흠모했던 기억이 남아 있어 수소문 끝에 글쓴이가 있는 관악고등학교까지 찾아왔다. 아마도 누님 근황이나 누님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소식을 듣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리라!

그분은 목포 유달초등학교 시절을 언급하며 누님 이야기를 꺼냈다. 글쓴이 역시 옛날 목포 유달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나눴다. 원래 북쪽 출신인데 한국전쟁 당시 인천을 통해 목포까지 내려오게 된 경위와 월남한 가족사를 잔잔히 들려주었다. 그분을 만난 이후, 그 사실을 미국에 계신 누님께 전해드렸다. 누님은 자형과 함께 그분 이야기를 나누며 크게 행복해하셨다고 들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며 느꼈던 순애보 같은 동심때문이리라!

글쓴이가 대학생 시절, 누님은 동생을 엄마처럼 돌보았다. 서울에서 갑자기 부산으로 내려갈 일이 생겨 시간에 쫓기며 글쓴이에게 남긴 편지글을 읽다보면 누님의 사랑을 느낀다.

1980년 9월에 누님이 글쓴이에게 남긴 편지글(출처 : 하성환)
1980년 9월에 누님이 글쓴이에게 남긴 편지글(출처 : 하성환)

학구열과 지적 호기심 또한 왕성했다. 암투병 직전까지 청소년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미국 유학을 했던 남동생이 전해주었다. 서울에서 생활하실 때도 매번 바쁘게 하루를 보내며 열정적으로 사셨는데 미국 가서도 그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누님은 불문학을 공부했는데 상상력이 풍부했다. 부산 영도여고에서 교사 생활을 할 때 경남 사천에 계신 시아버지께 편지를 쓰곤 하셨다.

누님이 1991년 부산 영도여고 재직 당시 경남 사천에 계셨던 시아버지께 보낸 자작시 한 편(출처 : 이혜승)
누님이 1991년 부산 영도여고 재직 당시 경남 사천에 계셨던 시아버지께 보낸 자작시 한 편(출처 : 이혜승)

교사 하제숙

잔잔한 가슴으로/출렁이는 파도를 보노라면

가녀린 목의/그대 생각이 난다.

그대! / 저 넓은 바다에 한 점

돛배에 남아/ 거머쥔 두 손

끊임없이/ 건져 올리는 그 모습은

추억의/ 시지프스를 떠올린다.

 

모래알 평화가 깃든/ 이 해변에서

멀찌감치 바라보는 / 이 침묵엔

감히 동행하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서러운 눈물이/ 송이송이 무지개로

피어오른다.

 

바다로 나간/ 그대의

여린 목에/ 햇살과 폭풍우는

싸우듯 달려 나갔고/ 지켜보는 눈이

애처러워 /나는/또

울어야 한다.

 

노래 부르며 마중 가리라.

바다가/ 은빛 치마로 갈아입고

쪽빛 하늘이/ 오로지 진실의 저고리로

치장하는 날

그대, 건져 올린/ 햇살 안고

돌아오는 날/ 뜨거운 노래를

부르리라.

 

! 그대가/ 나의 인연이라면

온몸으로/ 사랑하리라.

끝까지/ 사랑하리라. 1991. 3. 31

어느날 편지와 동봉해 자작시를 보냈는데 얼마전 시아주버님께서 사천 어르신 유품을 정리하다가 누님이 쓴 시를 발견하고 미국 조카에게 건네주었다. 

누님이 천상으로 떠난 지 이제 3주기가 돌아온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아주 가끔씩 찾아온다. 그렇지만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는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있어도 매일매일 그립다. 누님에 대한 그리움도 어느 날 불쑥불쑥 돋아나 마음마저 울적해진다.

한강 변 메타세쿼이아 숲길. 겨울 숲 나무들조차 쓸쓸한 풍경이다(출처 : 하성환)
한강 변 메타세쿼이아 숲길. 겨울 숲 나무들조차 쓸쓸한 풍경이다(출처 : 하성환)

누님이 그리울 때마다 집 근처 식물원을 찾거나 한강 변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거닐며 그리움을 달랜다.

이제 글쓴이도 60대 중반이다. 지상에서 주어진 삶을 잘 갈무리하고 떠나야한다. 언제 어느 때 하늘길 떠나는 그날에 그리운 누님을 만날 수 있겠지... 그땐 그리운 외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님도 모두 함께 만나겠지...

부산 태종대  바닷가에서 1990년대 어느 날 가족과 함께한 사진.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 분이 누님이다.(출처 : 하성환)
부산 태종대 바닷가에서 1990년대 어느 날 가족과 함께한 사진. 맨 오른쪽에서 두 번째 분이 누님이다.(출처 : 하성환)

그날 모두 크게 웃으며 지상에서 있었던 지난일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품으리라! 그리고 사랑한다고 한 분씩 꼭 껴안아 드리고 싶다. 이승에서 못다 한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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