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시민교육’은 중도좌파, 진보 정당 집권의 산물

80년대 신자유주의 사조가 유럽 사회를 강타하면서 노동시장 또한 국가 간 장벽이 무너졌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북서유럽 국가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다인종 다문화 사회가 형성돼갔고 동시에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혐오범죄가 증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청소년 범죄 증가와 함께 청소년 투표율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떨어져 사회문제로 대두하였다. 설상가상으로 80년대엔 극우 정치 세력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북서유럽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켰고 90년대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해 온 시대 배경으로 작용했다. 시민교육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90년대를 ‘민주시민교육 전성기’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다른 북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민주시민교육’이 다소 늦었던 영국에선 1997년 「노동당」 토니 블레어가 집권하면서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민자에 대한 혐오 문화와 함께 청소년 범죄의 증가가 영국 사회를 긴장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1997년 총선 투표율 평균이 71.4%였는데 18세-24세 청년 계층 투표율은 54.1%로 역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노동당」 토니 블레어 내각은 ‘민주주의를 위한 교육과 학교에서 민주주의 가르치기’ 보고서, 바로 ‘크릭보고서’(Crick's Report)를 채택했다.

그리고 2000년 ‘민주시민교육’을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반영했다. 2002년부턴 학교 교실에서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시민성'(citizenship) 교과를 독립교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2005년 「노동당」은 재집권하면서 고든 브라운 총리 역시 ‘민주시민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청소년 범죄는 현저히 줄었으며 청소년 투표율 또한 크게 증가하였다.

학교 교실 학습 과정에서도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을 교사들은 기피하지 않고 논쟁성 있는 수업으로 끌어들였다. 만일에 교사가 논란을 불러올 수 있는 논쟁성 짙은 주제를 의도적으로 회피한다면 학생들은 마땅히 갖춰야 할 지식이나 시민 의식에 결핍을 초래해 ‘적극적 시민’(active citizen) 으로 성장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크릭보고서’는 학생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 교사가 적극적으로 다룰 것을 강조했다.

거꾸로 우리나라 교육은 민감한 주제들을 대체로 피한다. ‘북한’이나 ‘동성애’, ‘미군 철수’는 워낙 민감하고 논쟁성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논란이나 파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교사 스스로 회피하고 싶은 학습 주제이다. 교사의 정당 가입을 비롯해 정치 기본권도 마찬가지이다.

‘제주 4·3 사건’을 ‘제주 4·3 항쟁’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공교육 현실에선 상당히 부담스럽다. 하물며 ‘여순 사건’을 ‘여순 항쟁’으로 부르거나 ‘대구 10월 사건’을 ‘대구 10월 (인민)항쟁’으로 표현하면서 공교육에서 다루기는 쉽지 않다.

교사가 이 정도인데 학생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2016년 「청소년 정책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교실 내 토론의 개방성’ 수준에서 조사대상국 24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24위로 꼴찌였다. 교사든 학생이든 표현의 자유에서 암묵적으로 심각한 제한을 받고 있는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크릭보고서’가 민감한 현안에 대해, 그리고 논쟁성 짙은 주제에 대해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교실로 끌어들일 것을 강조한 점은 한국 사회 현실에선 무척 부러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크릭보고서’가 불러온 이 모든 변화가 영국 「보수당」 정권이 추구한 '좋은 시민'(good citizen)을 넘어서서 사회문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적 시민'(active citizen) 육성으로 방향을 전환한 결과였다. 다만 불행하게도 2015년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시민성' 교과는 필수의무 교과에서 선택교과로 그 위상이 추락했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추모비 앞에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무릎을 꿇은 채 나치 독일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사죄했다. 정작 빌리 브란트는 2차 대전 기간 북유럽으로 망명해 나치 독일에 저항했던 반나치 전사였다. 사민당 빌리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은 1990년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청년기를 반나치 투쟁으로 보낸 역사상 보기 드물게 존경받는 정치인이다.(출처 : 하성환)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추모비 앞에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무릎을 꿇은 채 나치 독일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사죄했다. 정작 빌리 브란트는 2차 대전 기간 북유럽으로 망명해 나치 독일에 저항했던 반나치 전사였다. 사민당 빌리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은 1990년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청년기를 반나치 투쟁으로 보낸 역사상 보기 드물게 존경받는 정치인이다.(출처 : 하성환)

독일은 일찌감치 70년대 초 빌리 브란트 「사민당」 정부에서 ‘민주주의를 감행하자’는 슬로건 아래 ‘민주시민교육’을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으로 규정했다. 70년대 좌우 격렬한 이념 논쟁 끝에 1976년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가 도출되었다. 이후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정치교육’의 기준 내지 준칙으로 적용돼왔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흘러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학생들로 하여금 민주주의 공동체 내에서 시민의 역할을 인식할 능력을 키우는” 「다름슈타트 요구」(1995)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2년 뒤엔 “민주주의는 ‘정치교육’을 필요로 한다”는 「뮌헨 선언」(1997)으로 발전하였다. 이들 선언 뒤엔 「독일연방 정치교육원」과 「주 정치교육원」의 역할이 컸다.

「뮌헨 선언」(1997)은 ‘정치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길러야 할 역량으로 ‘정치적 판단 능력’과 ‘정치적 행동 능력’, 그리고 정치 문제에 대해 스스로 탐구하고 학습할 수 있는 ‘방법적 활용 능력’을 강조하는 「독일정치교육 표준안」(2004)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독일정치교육 표준안」(2004)은 독일 ‘정치교육’의 준거로 작용해 온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보완한 내용으로 1년 뒤 「마그데부르크 선언」(2005)으로 계승되어 오늘에 이른다. 「마그데부르크 선언」의 핵심은 “민주주의를 배운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것이다”로 요약할 수 있다.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은 2005년부터 해마다 ‘정치교육의 날’(Aktionstage Politische Bildung) 행사를 개최한다. ‘기후 위기’ 등 현실 속 다양한 주제를 선정하여 퀴즈 쇼, 세미나, 문화행사, 강연, 전시회를 개최해 청소년들 시민 의식 고취에 열일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2007년 ‘정치교육의 날’ 행사에는 퀴즈 쇼 형식을 도입하여 ‘기후-환경-지식’ 행사를 개최하였다.

2015년에는 「독일정치교육협회」도 참가하여 모두 18개 기관이 축제처럼 ‘정치교육의 날’ 행사를 주도했다. 오늘날 독일은 학생이든 어른이든 <정치>를 일상의 화제나 담론으로 즐긴다. 명절 때 가족의 화목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예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독일은 학급 회의를 ‘학급평의회’라고 부른다. 학급회장 또한 학급 ‘대변인’으로 부르는데 학생들의 자발성과 참여의식을 드높이기 위한 명칭 변경이다. 당연히 교사 대표나 지역대표와 함께 학생대표는 학교 운영에서 의사 결정권을 갖는다.

나아가 학교 당국은 학생들이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참여하는 생활을 크게 장려하고 포상까지 한다. 심지어 <시 학생의회>나 <주 학생의회>를 비롯해 학교 밖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권장한다는 사실이다. 학교 밖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권유하는 학교 방침은 북서유럽 국가의 공통된 현상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덴뷔템베르크>주의 경우, ‘정치교육’을 담당하는 교과를 주 헌법에 명문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 헌법 제21조 2항에는 “<공동사회> 교과를 정규 교과로” 명기하여 ‘정치교육’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독일은 연방 안에 16개 주가 있는데 주마다 ‘정치교육’을 담당하는 교과 명칭이 다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이끌어 낸 <바덴 뷔템베르크>주 ‘정치교육’ 교과는 <공동사회>(Gemeinschaftskunde)다. 오늘날 독일학교 교육과정과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곳은 독일연방 정부가 아니라 주 정부의 권한이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은 ‘민주시민교육’ 자료를 제작 배포하고 ‘민주시민교육’ 관련 정치 행사나 축제 행사를 주관한다. 더불어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은 학교와 NGO, 노동조합, 그리고 ‘주 정치교육원’과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으며 예산을 지원하면서 ‘민주시민교육’을 총괄한다. 「독일연방 정치교육원」은 ‘민주시민교육’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주 정치교육원」 등 관련 단체의 갈등을 조정할 뿐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독일처럼 행정안전부 산하나, 아니면 교육부총리 산하에 가칭 「민주시민교육원」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독립된 전위 기구인 「민주시민교육원」을 통해 학교 교육이든 일반 시민교육이든 시민의 정치의식을 드높이는 활동이 절실하다. 독일처럼 정치 편향성을 감시하고 예방하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원 감독위원회」를 두고 정당 의석수에 따라 감독위원을 지명하면 된다.

2018년 6월20일 오후, 난민인권단체들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난민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며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 장면.(출처 : 한겨레 신문 정용일 기자) 전쟁을 피해 제주도에 왔던 500 명 넘는 예멘 난민들이 난민 신청을 하자  일주일만에 35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청와대에 난민 신청 반대를 청원했다.  <제주도 이대로 가면 유럽 꼴 난다!>며  30개 넘는 서명 단체는 과거에 동성애 혐오를 외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했다. 독일 중도우파 메르켈 총리 당시,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을 독일이 받아들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현실과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2018년 6월20일 오후, 난민인권단체들이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난민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며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 장면.(출처 : 한겨레 신문 정용일 기자) 전쟁을 피해 제주도에 왔던 500 명 넘는 예멘 난민들이 난민 신청을 하자  일주일만에 35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청와대에 난민 신청 반대를 청원했다.  <제주도 이대로 가면 유럽 꼴 난다!>며  30개 넘는 서명 단체는 과거에 동성애 혐오를 외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했다. 독일 중도우파 메르켈 총리 당시,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을 독일이 받아들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현실과 크게 비교되는 대목이다. 

오늘날 독일은 〚성교육, 정치교육, 생태교육〛을 중핵 교육과정으로 운영하며 독일인들의 정치의식과 성숙한 시민 의식을 주도하고 있다. 북서유럽 국가 가운데 난민을 100만 명 넘게 가장 많이 받아들인 국가로서 그 배경엔 성숙한 시민 의식, 바로 ‘민주시민교육’의 결실이 환하게 빛을 발한 결과이다.

프랑스 또한 1985년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학생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과정 개혁’을 단행했다. 시민교육 과목을 1985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필수의무 교과로 지정했다. 1999년부턴 고등학교도 필수의무 교육과정으로 지정했다. 2008년에는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민교육을 도덕 교과에 통합했다.

그리고 2015년엔 마침내 초중고 모두 시민 교과 명칭을 ‘도덕 시민교육’(enseignement moral et civique, 약칭 EMC)으로 통일했다. 초중고 모두 ‘민주시민교육’ 과목 명칭을 통일시키고 필수과목화한 상태에서 프랑스 교실 내 토론수업을 더욱 강화했다. 2018년도에는 ‘민주시민교육’ 목표를 <타인 존중하기>와 <공화국 가치 습득하고 공유하기>, 그리고 <시민문화 구성하기>로 개정했다. 이는 프랑스 시민교육을 정체성 측면에서 더욱 정교하게 규정해 강화한 것이다.

프랑스 ‘도덕 시민교육’(EMC) 교과를 <연대의 끈>으로 일컫는 이유도 ‘민주시민교육’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바로 ‘연대하는 시민’을 육성하려는 목표 때문이다. 프랑스 ‘민주시민교육’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차별과 혐오, 그리고 불의에 침묵하지 말고 저항할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도덕 시민교육’(EMC) 교과서에는 <인종주의>나 <성희롱>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학습 주제로 다루고 있다. 나아가 <성평등>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기후 위기 시대! 생태계 보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실천으로 이어지는 시민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학교 졸업 자격시험인 브르베(brevet)와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에서 ‘도덕 시민교육’ 과목을 논술형으로 시험을 친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이 ‘민주시민교육’의 교과 정체성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도덕 시민교육’ 교과에 대한 학업성취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고 평가한다.

독일도 그렇지만 프랑스도 고등학교 2-3학년이 되면 입시 공부에 몰입한다. 입시 공부 자체가 논술형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라 사고의 깊이와 폭을 넓히기 위해 학생들은 독서를 일상화하고 토론수업이 주를 이룬다. 대학 입학 자체가 우리나라처럼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기에 학교생활 만족도가 매우 높다.

오늘날은 가짜뉴스나 왜곡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따라서 정보 문해력(미디어 리터러시)을 핵심 역량으로 하는 ‘민주시민교육’은 공교육 현실에 바로 적용해야 할 교육과정이다. 아무리 팩트 체크를 강조해도 이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경우, 어지간해선 왜곡된 의식을 성찰하고 교정하기보단 자신의 왜곡된 신념이나 당파성만 강화할 가능성이 짙다. 나이 들수록 고집이 세진다는 말 앞에 ‘민주시민교육’이 왜 평생교육이 되어야 하는지 말없이 가르침을 준다.

실제로 핀란드 학교 사회는 6살 예비학교(Pre-school) 시절부터 정보 문해력(media literacy) 교육을 학교 교육과정으로 가르친다. 정보 문해력(media literacy) 교육 자체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이다. 미디어 정보와 뉴스가 넘치는 오늘날, 어린 시절부터 뉴스와 정보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기르고 안전한 미디어 정보 환경을 구축해 나가기 위한 교육적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를 비롯해 북유럽 국가들은 15세 정도면 정당 가입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중학교 3학년 정도에 학생들 스스로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셈이다. 18세 나이가 되면 시의원이 돼 시 의정 활동을 펼치거나 국회의원으로 출마도 가능하다. 실제로 22살에 국회의원을 하는 나라가 북유럽 국가다.

놀라운 사실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사회에서 40세 이하 청년 국회의원 비율은 거의 1/3에 육박한다. 노르웨이(34.3%), 스웨덴(31.4%), 덴마크(30.7%), 핀란드(29%)는 30% 안팎이다. 2021년 국제의원연맹(IPU)에 따르면 한국은 40세 이하 유권자가 33.8%를 차지하는데 청년의원 비율은 고작 4.3%에 지나지 않았다. 조사 대상 국가 121개국 중 118위였다. 청년 정치의 대표성이 극히 취약한 현실임을 보여주는 씁쓸한 지표이다.

스웨덴은 2022년 9월 총선에서 「사민당」을 비롯해 좌파당이 과반을 점하진 못했어도 여전히 제1당을 유지했다. 핀란드 「사민당」 역시 2023년 4월 총선에서 제3당으로 위치 변동이 생겼지만 2019년 총선 득표율(17.7%)보다 2.2% 올라 43석(19.9%) 지지를 받은 것 역시 ‘민주시민교육’의 힘이다.

2023년 4월 핀란드 총선 결과(출처 : 핀란드 법무부, 한겨레 신문 노지원 기자)
2023년 4월 핀란드 총선 결과(출처 : 핀란드 법무부, 한겨레 신문 노지원 기자)

2019년 당시, 「사민당」 대표 산나 마린이 34세 최연소 총리로 등장한 것 자체가 ‘민주시민교육’이 낳은 결실로 오랜 세월 공교육에서 ‘민주시민교육’의 세례를 받은 결과이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제로 산나 마린은 <탐페레 대학> 시절, 20세에 「사민당」에 가입해 정치에 입문했다. 따라서 34세에 최연소 총리가 되었을 당시, 산나 마린은 정치경력이 이미 15년 차였다. 산나 마린은 이미 20대에 <탐페레 시의회> 의장을 역임한 상태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유럽 영국, 독일, 프랑스와 달리 북유럽에선 산나 마린처럼 빈곤 계층 청년들도 정치인의 미덕을 간직한 채,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모두 북유럽 <평등주의 교육>의 결과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산나 마린은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였고 어머니는 이혼했다.  어머니는 이혼 후, 다른 여성과 결합했고 산나 마린은 무지개 가정에서 자랐다.

대학등록금 국제 비교. 멕시코나 체코는 우리보다 가난하지만 국립대학을 무상교육으로 시행하고 있다. 청년을 위한 정치가 실종된 현실이다. 서유럽과 달리 산나 마린처럼 빈곤가정 출신 청년이 성숙한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북유럽이다. 모두 <평등주의> 이념이 낳은 산물이다.(출처 : OECD, 한겨레 21)
대학등록금 국제 비교. 멕시코나 체코는 우리보다 가난하지만 국립대학을 무상교육으로 시행하고 있다. 청년을 위한 정치가 실종된 현실이다. 서유럽과 달리 산나 마린처럼 빈곤가정 출신 청년이 성숙한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북유럽이다. 모두 <평등주의> 이념이 낳은 산물이다.(출처 : OECD, 한겨레 21)

모두 대학 무상교육이 복지 차원에서 보장된 국가에서 당 청년조직이나 정치학교에서 정치인의 미덕과 품격을 갖춘 정치인으로 단련된 결과다. 우리나라처럼 사적인 이익을 꾀하고자 정치에 기웃거리며 정치를 악용하는 일부 정상배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2019년 12월 사민당 집권 산나 마린 내각. 19명 장관 중 12명이 여성이다.(출처 : 한겨레TV )
2019년 12월 사민당 집권 산나 마린 내각. 19명 장관 중 12명이 여성이다.(출처 : 한겨레TV )

마찬가지로 2019년 산나 마린 내각에서 교육문화부 장관이 된 리 안데르손(32세) 역시 「좌파 동맹 청년조직」에서 활동하며 28살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이듬해 29세에 「좌파 동맹」 당 대표가 됐다. 「녹색당」 대표이자 내무장관 마리아 오히살로(34세) 역시 수도 헬싱키 시의원을 거쳤다. 「중앙당」 까르티 꿀무니(32세) 재무장관은 28살에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정당 내 「청년조직」은 미래세대 정책을 생산하는 싱크 탱크로서 기능하지만 같은 정당 내 야당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따라서 북유럽 「정당 청년조직」은 품격을 갖춘 정치인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훌륭한 생산기지다. 우리나라엔 이런 당 청년조직이 없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 이후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노회찬을 그리워하며 노회찬이 꿈꾼 세상을 만들어 내고자 「노회찬 정치학교」가 존재하지만 스웨덴 「사민당 정치학교」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요컨대 오늘날 북서유럽 복지국가 건설엔 하나같이 사민당, 사회당, 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중도좌파 정당이 집권했을 때 이룩한 결과물이다. 마찬가지로 존중과 참여, 그리고 연대와 상생의 가치를 성숙한 시민 의식으로 ‘시민격’(citizenship)을 높이려는 ‘민주시민교육’ 또한 중도좌파 진보 정당이 집권했을 때 교육개혁의 핵심 정책으로 추구해 오고 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미래 교육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류애라는 보편 가치에 기초하되 불평등과 기후 위기, 정보 문해력, 존중과 배려, 협력과 연대의 정신을 강조하는 ‘민주시민교육’이 핵심 교육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 길만이 국가공동체를 살리고 지구를 지키는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는 세계 교육개혁의 흐름과 정반대로 윤석열 정권 들어서서 거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취임하고 두 달 뒤 교육부는 <민주시민교육과> 부서 명칭을 <인성체육예술교육과>로 갑자기 변경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 산하 ‘민주시민교육과’가 신설된 지 딱 4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더욱 기막힌 일은 ‘보수’를 자처한 교육감이 당선되자 경기도 교육청은 <민주시민교육과>를 없애고 <미래교육과>로 명칭을 바꿨다. 그 여파인지 일선 혁신학교에서조차 ‘민주시민교육’ 핵심 부서인 <교육혁신부>를 없애고 <미래교육부>로 부서 명칭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퇴행은 극우 정치 세력의 준동에 맞서서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세계 교육개혁의 흐름과도 정면 배치되는 정책이다. 2010년을 전후해 한국 사회에 등장한 ‘일베’ 현상과 2022년 대선 국면에서 특정 정치인이 갈라치기하면서 부추긴 ‘이대남’ 현상은 혐오와 차별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들은 페미니즘에 쉽게 경기를 일으킨다. 좁직하다 못해 옹졸한 그들의 ‘공정’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도 ‘민주시민교육’은 학교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강화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마냥 거꾸로 가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참고> 

*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 : 1976년 좌우 이념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개최한 학술 세미나에서 합의한 <정치교육>의 대원칙으로 오늘날 독일 <정치교육>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①강제성(교화 및 주입) 금지의 원칙 ②논쟁성 유지의 원칙 ③정치적 행위능력 강화의 원칙을 가리킨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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