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 쓴 진시황과 어머니 조희(趙姬)에 이어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가 13년 만에 막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환관 조고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진시황의 어머니 조희(趙姬)가 조나라 출신의 여자였듯이 환관 趙高는 조나라 출신의 고씨 성을 가진 왕족 출신으로 봅니다. 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권력에 대한 이해나 운용이 탁월한 면을 보아 후대의 학자들도 성장환경이 왕족이었다고 여깁니다.

조고가 진시황 가까이에 있을 수 있었던 원인이 환관이면서 법에 능통한 법률가였기 때문입니다. 진시황이 태어나기 100여 년 전에 변방의 소국이던 진나라가 법가인 상앙을 발탁 중용하면서 강대국이 되었고, 천하를 통일하게 되지요.

사목입신(徙木立信)의 고사. 나무를 옮겨 믿음을 얻다. 법이 공평하면 신뢰를 얻지만, 권력자의 칼날이 되면 재앙이 따른다(신 열국지 삽화.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사목입신(徙木立信)의 고사. 나무를 옮겨 믿음을 얻다. 법이 공평하면 신뢰를 얻지만, 권력자의 칼날이 되면 재앙이 따른다(신 열국지 삽화.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2016년에 쓴 ‘[대만이야기 23] : 천하통일의 기초를 닦은 법가 상앙!’을 다시 찾았습니다. 필요한 사진을 첨부하려고요. 당시에는 대한민국에서 법 기술자들이 득세하여 국가권력을 쥐락펴락할지 미처 예상은 못했지만, 법으로 흥했던 상앙이 사지가 찢겨지는 거열형에 의해 법대로 처형되는 이야기를 썼군요.

자신이 고안한 거열형이란 방법으로 처형이 되는 상앙. 상앙의 권세는 군주 효공과 비슷했지만, 과욕과 부덕의 결과는 지극히 참담했다(신 열국지 삽화,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자신이 고안한 거열형이란 방법으로 처형이 되는 상앙. 상앙의 권세는 군주 효공과 비슷했지만, 과욕과 부덕의 결과는 지극히 참담했다(신 열국지 삽화,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기원전 350년경에 진나라 왕 효공과 상앙이 법치를 내세워 부국강병책을 시행합니다. 100년이 지난 기원전 247년 진시황은 황제로 등극을 합니다. 백년대계가 이루어진 샘이지요.

최고 권력자가 되고 나면 공포가 극심해지는 모양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오른 최고의 자리. 그래서 진시황은 죽음으로부터 더 멀리 달아나고 싶었는지 불로초를 찾았고, 우화등선의 도인이 되고자 도사들을 가까이했으며, 자객으로부터 안전을 도모하고자 했지요.

그러면서도 진시황은 세속적인 욕망을 억누르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변두리 조폭이 전국을 통일하고 나니 얼마나 으스대고 싶었겠습니까? 그래서 10년의 재위 중 5차례나 자신의 영지를 순행합니다. 가는 곳마다 졸개들 일렬로 도열해서 바리바리 진상품 올리고, 아부와 주지육림이 기다리니 대를 이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었겠지요. 순행 중에는 암살에 대비하여 똑같은 수레 5대를 병력이 나누어 호위하도록 하였습니다.

실제로 형가나 고점리는 암살 직전까지 갔지만 운 좋게도 진시황은 목숨을 건집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사람 외에는 만나지 않게 되고, 모든 업무는 법에 능통한 환관 조고를 통하도록 하였지요. 자고이래 권력의 크기는 권력자와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역사에 남는 유능한 재상 이사도 결국 조고를 두려워하게 되고, 환관에게 목숨을 맡기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영생을 꿈꾸던 진시황은 만 49세, 황제 즉위 10년 만에 그토록 으스대고 좋아하던 순행 중에 객사하고, 정권은 조고의 손아귀에 떨어집니다. 주변에 많은 도사들이 있었음에도 국가의 존망은 그렇다 쳐도, 본인의 객사뿐만 아니라 자손들의 비명횡사도 막지 못했습니다.

다른 대만이야기에서 언급했듯, 조고는 가짜 편지로 장남 부소를 자결시키고, 어린 막내 호해를 2세 황제로 옹립하고 마음대로 주무르지요. 바로 ‘대만이야기 지록위마’에서도 언급했습니다. 조고는 재상 이사를 모함해서 죽이고 권력을 공고히 합니다. 전국에서 백성의 원성이 자자해지고, 사방에서 난이 일어나게 되자, 조고는 수양 사위를 시켜 황제 호해를 죽이지요. 자기 딴에는 함양에 먼저 들어온 유방에게 진나라를 넘기고 자기는 고향인 조나라를 통치하려고 했지만, 당시 군사력과 지명도에서 월등한 항우를 두려워하던 유방이 조고의 제안을 받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호해의 아들 자영을 3세 황제로 추대하려고 합니다.

자영이 어리다 한들 눈에 보이는 사지로 들어가겠습니까?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조고 일당을 죽입니다. 한 달 남짓 명목뿐인 황제로 있다가 항우의 칼날 아래 진나라 영씨 성을 쓰는 모든 황족이 죽임을 당합니다. 진의 통일천하는 결국 13년 만에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졌고, 진시황의 아방궁은 석 달이 넘는 화염 속에서 재가 되고 말았지요.

2000년이 지나서 발견된 병마용으로 진시황릉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갑니다. 그렇지만 더 진보된 발굴 기술을 기다리며 50년째 발굴을 미루고 있는 진시황릉.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100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야 할 교육이 술자리 오징어 땅콩처럼 안줏거리가 되고, 법치의 법이 조폭 주먹처럼 멋대로 휘둘러진다면 50년은커녕 10년 안에도 나라가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법이 절대 선은 아닙니다. 총칼과 같은 도구일 뿐이지요. 선과 악은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운용하는 인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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