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개최된 “제9차 한일 탈핵 평화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일본 나고야 교구와 센다이 교구의 핵발전소를 방문하고, 그 지역에서 탈핵 운동을 펼치고 있는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핵발전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절규를 들었습니다.
후쿠이현의 와카사만에 밀집되어 있는 쓰루가 핵발전소와 미하마 핵발전소, 오이 핵발전소와 다카하마 핵발전소를 방문했습니다. 일본이 꿈의 원자로라고 말하며 1조 엔 넘게 엄청난 돈을 투입했던 몬주도 방문했습니다. 몬주는 운영도 해 보지 못하고 폐로가 되었습니다. 몬주는 문수보살의 일본식 발음입니다.
후쿠시마도 방문했습니다. 5년 전에 방문했던 후쿠시마와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떠난 빈 들에 가득했던 새카만 포대의 핵폐기물들은 사라졌습니다. 많은 건물이 새로 지어졌습니다. 후바타군 후바타마치에 있는 ‘동일본 대지진원자력 재해 전승관’이란 건물에는 일본 각지에서 견학을 오는 모습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전승관을 소개한 책자에 의하면, “원자력 재해 및 부흥에 대한 기록과 교훈으로서 부흥의 가속화를 위한 기여”를 위해 건설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바로 앞바다에는 새로 완공된 방파제가 있었고, 항구도 있었습니다. 수산물을 가공하는 식품 회사도 있었습니다. 대폭발이 있었던 핵발전소 앞에 수산물 가공 공장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숨이 막힐 듯한 놀라운 풍경이었습니다.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후쿠시마의 예전 모습은 위장 폐업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커다란 식당에는 IAEA가 적힌 푸른 점퍼를 입은 외국인들도 보였습니다. 새로 지은 호텔과 후바타역도 있었습니다. 후바타역 앞에는 멋지게 지은 관청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지어진 건물들과 그 안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인형처럼 보였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있는 방파제를 올라갔습니다. 태평양을 향하는 후쿠시마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나미가 몰려올 듯한 환각과 환청에 시달렸습니다. 고통스런 경험이었습니다. 5년 전에 공사 중이었던 방파제와 완공된 방파제의 모습은 낯설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방파제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는 순간이었습니다. 버스 기사분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바지에 묻은 풀잎들을 모두 털어내고 버스를 타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후쿠시마 핵발전소 주변의 흙과 풀 등에서는 고농도 방사능 피폭이 우려되고 있었습니다. 후쿠시마 주민들에게서는 여전히 심리적 공포감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바지에 묻은 풀잎들을 하나하나 맨손으로 제거하면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고농도 방사능에 피폭된 물질들을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맨손으로 처리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되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를 기억하면 후쿠시마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후쿠시마처럼 재해를 당했던 지역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잊고 있습니다. 바로 미야기현의 오나가와정입니다. 오나가와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은 대지진과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람들이 대피했던 언덕 위의 병원에도 쓰나미가 휩쓸었습니다. 마을도 사람들도 사라졌습니다. 오나가와 핵발전소 1호기와 2호기는 전력이 공급되지 않아 ‘멜트다운’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오나가와 핵발전소 3호기에는 전력이 공급되어 핵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현재 오나가와 핵발전소 1호기는 영구 정지되었지만, 2, 3호기는 재가동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오나가와정 주민들은 오나가와 핵발전소 2, 3호기의 재가동을 반대하며 공동소송 중에 있었습니다.
오나가와정을 중심으로 센다이 주민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핵발전을 반대하며 집회와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순례단이 오나가와 핵발전소를 방문하고, 주민들의 공동소송에 관한 진행 상황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오나가와의 ‘바람의 모임’에서는 한국 순례단의 일정을 배려해서 목요일에 집회와 행진을 하였고, 한국 순례단도 참여했습니다. 저는 발언 요청에 의해서 일본 사람들에게 밀양과 월성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일본의 핵발전은 참혹한 후쿠시마 핵사고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아베와 기시다 정부에서는 후쿠시마 핵사고를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기억에서 지우고 있었습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핵발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핵발전을 정지시켰던 일본에서 다시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 일본 정부와 핵발전을 운영하는 전력 회사들은 일본의 핵발전소는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소의 안전신화가 붕괴된 후 10년이 지나서 다시 안전신화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핵발전은 미래의 에너지’라는 신화가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 글이 너무 길어져서 이번 ‘포토 에세이’는 한일 탈핵 평화순례지를 중심으로 글을 썼습니다. 다음에는 탈핵 평화순례를 통해 만났던 일본의 탈핵 활동가들을 소개하겠습니다.
*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에도 실린 글입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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