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민교육은 1879년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쥘 페리(J. Ferry)가 공교육에서 가톨릭 사제들을 배제하고 초등의무교육을 도입하면서 시작했다. 이른바 쥘 페리는 프랑스 공교육을 보통교육으로 대중화하고 세속화한 장본인이다. 나아가 프랑스 공화국 시민으로서 ‘국민통합’을 추구한 프랑스 시민교육의 선구자⁕가 되었다.

쥘 페리의 공화국 시민교육에 영감을 고취한 계기가 콩도르세(Condorcet)의 공교육 보고서였다. 콩도르세는 일반 보통교육을 역설했는데 말년에 저술한 책이 『인간 정신 진보의 역사』다.

이 책에서 콩도르세는 “모든 인민이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군림하지 못하게 하는 <비판적 시민>으로 교육받아야 한다.” 며 “풍요나 구원을 핑계로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위협하는 그들의 유혹을 이성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깨어있는 시민>으로 교육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19세기 말 당시, 공화주의 정신으로 잘 무장한 교사들이 프랑스 전역으로 배출돼 학교에 배치되었다. 그 결과 프랑스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한 농부들을 ‘공화국 시민’으로 빠르게 변화시켜 갔다. 그 당시 프랑스 시민교육 목표는 프랑스 혁명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라는 공화국 가치를 내면화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시민교육은 한때 68혁명으로 사실상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1985년 사회당 미테랑 정부에 의해서 부활하였다.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은 ‘학생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민교육 과목을 필수과목화했다. 1980년대 프랑스 역시 인종차별과 학교폭력 문제가 정치·사회 이슈로 떠오르며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켰기 때문이다. 미테랑 대통령은 ‘학생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과정 개혁’을 적극 추진했다.

가장 맨 먼저 1985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시민교육을 의무교육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1999년부터 고등학교도 필수 의무교육 과정으로 지정했다. 콩도르세(Condorcet)가 강조한 ‘<비판적 시민>과 <깨어있는 시민>을 길러낸다’는 교육목표 아래 프랑스 ‘민주시민교육’을 초중고 학교 교육과정에서 의무화한 것이다.

그리고 2008년에 들어서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민교육을 도덕 교과와 통합했다. 마침내 2015년엔 초중고 모두 교과 명칭을 ‘도덕 시민교육’(enseignement moral et civique, 약칭 EMC)으로 통일시켰다. 그리하여 ‘민주시민교육’을 필수과목화한 상태에서 토론수업을 더욱 강화했다.

가재울고 학생들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주제로 토론수업하는 모습(출처 : 2016년 9월 26일자 한겨레신문,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프랑스는 토론수업을 가장 중시하는 국가이다. 실제로 토론수업은 생각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는 계기로 작용한다.
가재울고 학생들이 강남역 살인사건을 주제로 토론수업하는 모습(출처 : 2016년 9월 26일자 한겨레신문,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프랑스는 토론수업을 가장 중시하는 국가이다. 실제로 토론수업은 생각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며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나가는 계기로 작용한다.

초등학교에선 담임교사가 ‘민주시민교육’을 맡는다. 중학교에선 역사 교사나 지리 교사가 ‘민주시민교육’을 가르친다. 고등학교에선 가치 갈등 문제를 중심으로 토론식 수업으로 진행한다. 프랑스 초중고 모두,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사회생활 규칙을 체득하며 가치 갈등 상황에 대한 가치 판단 능력을 기른다. 나아가 프랑스 ‘민주시민교육’은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는 태도, 그리고 책임감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2022년 6월 13일 연세대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학내 집회에서 연대 발언하는 연세대 학생(출처 : 2022년 7월 1일자 한겨레 신문 장나래 기자,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2022년 6월 13일 연세대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학내 집회에서 연대 발언하는 연세대 학생(출처 : 2022년 7월 1일자 한겨레 신문 장나래 기자,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프랑스 ‘도덕 시민교육’(EMC) 교과를 ‘연대의 끈’으로 일컫는 이유도 ‘민주시민교육’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바로 ‘연대하는 시민’을 육성하려는 목표 때문이다.

프랑스 학교 ‘민주시민교육’은 바칼로레아 대학입시에 논술형 문제로 출제해 절대평가 방식으로 평가한다. 프랑스는 2018년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해 ‘타인 존중하기’와 ‘공화국의 가치 습득하고 공유하기’, 그리고 ‘시민문화 구성하기‘를 강조한다.

인간을 존중하고 공화국 가치인 자유, 평등, 인류애, 그리고 라이시테 정신을 공유하는 걸 추구한다. 나아가 프랑스 시민으로서 공감과 감수성을 바탕으로 공동체 문제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성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초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인종주의나 성희롱 등 ‘차별과 혐오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학습 주제로 공부한다. 공동체가 지닌 부조리와 불의에 대해 항거하는 태도를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다시 말해 공동체가 저절로 좋아지는 게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저항을 통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이다.

중학생이 되면 ‘청소년 시의회에 참여하기’를 교육 내용으로 학습하고 평등을 상징하는 인물인 「로자 파크스」를 주제로 학습한다. 나아가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권리와 사회 정의를 공부한다.

노동조합의 중요성과 노조 활동에 참여하는 삶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간직하는지를 공부한다. 시민교육을 통해 공감하고 연대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프랑스 시민교육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토론수업을 가장 많이 강조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적 지향점을 학생 스스로 결정하도록 교육 환경을 조성해 준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프랑스 교사들에게 교육활동의 자율성을 크게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를 주교재로 사용할 것인가 여부는 교사의 자율에 맡긴다. 프랑스 교사에게 교과서는 하나의 교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25일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전교조 기자회견(출처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정치기본권 측면에서 국가는 교사들을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다. OECD 38개국 가운데 교사에게 최소한의 정치기본권인 정당 가입조차 불허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기본 토양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사막화된 형국이다.
2022년 5월 25일 교사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전교조 기자회견(출처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제공) 정치기본권 측면에서 국가는 교사들을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다. OECD 38개국 가운데 교사에게 최소한의 정치기본권인 정당 가입조차 불허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기본 토양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사막화된 형국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 교사들은 정치 기본권을 자유롭게 누린다. 정당 가입은 물론이고 교사 신분을 유지한 채 국회에 진출할 수 있다. 의정 활동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승진에도 유리하다.

한 마디로 학교 교육활동인 공무를 수행하는 것을 벗어나면 프랑스 교사들은 정치활동을 자유롭게 보장받는다. 오늘날 프랑스 ‘민주시민교육’이 성공한 중요한 외적 장치이자 교육 환경적 요소이다.

노조와 파업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통상 파업은 불편을 초래하는 나쁜 것이라거나 시위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오히려 파업은 노동자이자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권리임을 공교육을 통해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학습한다.

프랑스는 초등학교 시절 어린아이들에게 노동교육 영상물을 보여준다. 무엇이 노동자를 힘들게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가 노동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조직임을 학습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의 노사교섭을 공부함으로써 아이들이 실제상황을 체험한다.⁕⁕⁕⁕

그런 노동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자신을 지키고 노동자를 배려하며 당당한 시민으로 성장해 간다. 실제로 ‘도덕 시민교육’(EMC) 중학교 4학년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기술돼 나온다.

“직장 폐쇄에 맞선 노동조합, 이 사례를 기반으로 노조가 어떻게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지

설명해 보시오.”

프랑스 중학생들은 3년에 걸쳐 노동교육을 체계적으로 학습한다. 학교 교육을 통해 왜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자기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배운다.

시민 사회단체와 어떻게 연대하는지도 학교 교육을 통해서 배운다. 심지어 노동자가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지가 교과서에 기술돼 나온다. 나아가 사용자와 단체 교섭하는 방법과 교섭 기술도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운다.

<읽기 자료> 제시와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가는 <질문하기>로 구성된 프랑스 중등학교 교과서 . 프랑스 교과서 아랫부분 내용 가운데 프랑스가 영국이나 독일, 이탈리아보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은 이유를 교과서에 싣고 있고 그 원인을 묻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출처 : 김원태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위원 제공)
<읽기 자료> 제시와 자신의 생각을 정립해 가는 <질문하기>로 구성된 프랑스 중등학교 교과서 . 프랑스 교과서 아랫부분 내용 가운데 프랑스가 영국이나 독일, 이탈리아보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낮은 이유를 교과서에 싣고 있고 그 원인을 묻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출처 : 김원태 성공회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위원 제공)

고등학교 1학년의 경우, 민주시민 교과 수업에서 단체교섭을 진행할 때 무려 석 달 동안 어떤 전략과 전술을 채택할지를 진지하게 공부한다. 한 학년 전체 수업 시간의 1/3을 노동교육에 할애할 정도로 비중 있게 공부하는 모습이 오늘날 프랑스 노동인권 교육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한국의 <법과 정치> 교과서(왼쪽)가 추상적인 개념 설명으로 가득 차 있는 것과 달리, 독일(가운데)과 프랑스(오른쪽)의 교과서는 현실과 맞닿는 자료들로 이뤄져 있다. 독일 교과서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정당을 만들어 선거전을 치러볼 수 있게 했고, 프랑스 교과서는 프랑스에 실제로 존재하는 여러 노조 역사와 성향, 회원 수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출처 : 글과 사진 2015년 2월 19일 한겨레신문 정인선 기자)
한국의 <법과 정치> 교과서(왼쪽)가 추상적인 개념 설명으로 가득 차 있는 것과 달리, 독일(가운데)과 프랑스(오른쪽)의 교과서는 현실과 맞닿는 자료들로 이뤄져 있다. 독일 교과서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정당을 만들어 선거전을 치러볼 수 있게 했고, 프랑스 교과서는 프랑스에 실제로 존재하는 여러 노조 역사와 성향, 회원 수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출처 : 글과 사진 2015년 2월 19일 한겨레신문 정인선 기자)

프랑스는 판사도 노조가 있고 변호사도 노조가 있다. 경찰 노조까지 존재한다.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프랑스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그 정도로 세밀하게 가르치는 이유는 단순하다. 노조 파업은 노동권으로서 ‘사회권적 기본권’이자 노동자가 지닌 신성불가침한 권리로 인식한다. 무엇보다 기본권으로서 노동계급이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방어무기로 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사회적 약자이다. 따라서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호할 때 공동체 전체에 유익함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우리가 프랑스 학교 시민교육에서 참고할 만한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심성보(2011). 『인간과 사회의 진보를 위한 민주시민교육』.  서울 : 살림터.  123쪽.

⁕⁕ 이기라(2018). 「인민과 시민 사이에서 : 프랑스 민중교육 전통과 학교 시민교육」.   『국민 주권 시대의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현황과 과제』. 4쪽.

⁕⁕⁕ 심성은(2017). 「프랑스 학교 민주시민교육 - 초중고 교육 내 의무교육화」.   『한국 민주시민교육 학회 세미나』.  106쪽.

⁕⁕⁕⁕허지희(2018). 「유럽은 초등학생부터 노동자 인권교육, 그럼, 한국은?」. 『충북 MBC』.   2018. 5. 2.

<라이시테> : 프랑스어로  ‘세속’ 을 가리키는데 공공장소에서 종교의 철저한 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프랑스 공화정의 정신이다. 드레퓌스 사건에서 발단이 된 정신으로 자유, 평등, 박애와 함께 프랑스 4대 정신이다. 당연히 사적 영역에선 종교의 자유와 다양성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정신이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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