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3일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하는 이준석 국민의 힘 당 대표(출처 : 김봉규 한겨레 선임기자, 2022년 8월 14일)
2022년 8월 13일 국회소통관에서 기자회견하는 이준석 국민의 힘 당 대표(출처 : 김봉규 한겨레 선임기자, 2022년 8월 14일)

이준석에 대한 호불호는 명확하게 갈린다. 한때 진정한 보수로서 <국민의 힘>에 변화와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정치인으로 기대를 모았다. 반면에, 경쟁 자본주의 체제에서 승리한 기회주의 정치인의 전형이란 견해도 존재했다.

4·10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 힘을 탈당한 정치인 이준석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서 이탈한 세력과 함께 제3지대 정치세력을 구축하려는 모양새를 취했다. 10%대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여론조사 지지율이 급락하자 평소 자신의 정치노선과 상충하는 태도를 보인 결과다.

글쓴이는 그러한 견해들에 일면 수긍하는 점도 있고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다만 이 글에선 ‘청년’ 정치인 이준석이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좋은 정치인이 되기 위해선 어떠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싶다.

우선 정치인 이준석은 지난날 자신의 정치행태에 대해 맨 먼저 국민 앞에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22년 7월 이준석 국민의 힘 당 대표는 “양의 머리를 흔들면서 개고기를 팔았다”고 자책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운을 결정하는 대선에서 국민 전체를 미혹시킨 일이기에 그러하다.

당 대표에서 쫓겨난 이후, 양두구육을 운위하며 윤석열 정권을 비판하는 모습은 여러 차례 보았다. 그렇지만 정치의 궁극적 지향점인 국민을 향한 진솔한 사과는 없었다. 무엇보다 0.73%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엄청난 권력을 거머쥔 윤석열 정권의 등장과 그들이 지난 2년 가까이 보여준 낯짝 두꺼운 정치행태를 생각하면 반성해야 할 정치인들 가운데 이준석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윤석열을 찍으면 1년 뒤 내 손가락 자르고 싶을 거”라던 안철수 후보는 며칠 지나지 않아 윤석열 후보와 전격 단일화했다. 심상정 후보는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 되면 왜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라며 무책임한 언사를 남발했다. 유력 대권주자였던 이재명 후보는 좀 더 일찍,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정의당과 공동정부 구성을 제안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치인 이준석은 윤석열을 대통령 만들기 위한 양두구육 행태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정치권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정치인으로서 무책임한 언동에 대해 아무도 사과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모습은 대중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을 비롯해 장애인 권리 입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의사당역  농성장(출처 : 하성환)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을 비롯해 장애인 권리 입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의사당역 농성장(출처 : 하성환)

둘째로 정치인 이준석은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물음에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워야 한다. 성숙한 정치는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는 멋진 행위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그 사회에서 소외된 채, 투명 인간처럼 살아가는 약자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교육받고 일하며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오늘날 북서유럽 선진국의 공통된 모습이다.

그런 측면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약칭 전장연)의 지하철 승차 투쟁을 ‘비문명적 방식’이란 언어로 비하할 일이 아니다. 19세기 노동자의 인권을 시작으로 20세기 들어서 어린이, 여성, 흑인을 비롯해 지난날 정치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확장되어 온 역사는 ‘비문명적 방식’으로 진행돼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2000년대 초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투쟁을 이끌어 낸 것도 <전장연>의 전신인 <장애인 이동권연대>, <노들장애인 야학> 등 장애인 NGO, 장애인 단체의 치열한 투쟁의 결실이다. 오늘날 어린아이, 임산부,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 교통약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출처 : 하성환)
2000년대 초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 투쟁을 이끌어 낸 것도 <전장연>의 전신인 <장애인 이동권연대>, <노들장애인 야학> 등 장애인 NGO, 장애인 단체의 치열한 투쟁의 결실이다. 오늘날 어린아이, 임산부,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 교통약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출처 : 하성환)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나라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난 20여 년의 역사만 살펴봐도 공감할 수 있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오이도역 사건과 혜화역, 발산역 사건을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다. 그것이 인권 투쟁의 역사임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인권은 앞선 세대의 고난과 희생의 결과물이다. 아니, 오늘날 사회모순과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헌신의 결과물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그분들의 피와 눈물이 배어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랑 없이는 고통받는 사람들과 공감할 수도 없고 더더욱 손을 내밀어 함께하려는 연대의 정신을 발휘할 수도 없다. 따라서 정치인이 되려는 꿈을 간직한 사람은 공감하고 연대하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 이준석은 정치인의 품격에 의구심을 갖게 했다.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2014) 당시, 딸 구보현 양을 잃은 어머니가 3년이 지난 2017년 말 <세월호 기억교실> 아이의 책상 머리에 남긴 편지글. 딸을 향한 그리움과 애절함이 가득하다.(출처 : 하성환)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2014) 당시, 딸 구보현 양을 잃은 어머니가 3년이 지난 2017년 말 <세월호 기억교실> 아이의 책상 머리에 남긴 편지글. 딸을 향한 그리움과 애절함이 가득하다.(출처 : 하성환)
10.29 이태원 참사(2022) 직후, 어느 추모 시민이 해밀튼 호텔 골목길 참사 현장에  분노하며 추도한 글(출처 : 하성환)
10.29 이태원 참사(2022) 직후, 어느 추모 시민이 해밀튼 호텔 골목길 참사 현장에  분노하며 추도한 글(출처 : 하성환)

새벽녘 6411번 버스를 타고 매일 네 시 반 강남으로 출근하던 청소노동자들, 그리고 국회 청소노동자들을 투명 인간이 아니라 오롯이 그분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직업정치인으로 당당히 투쟁하며 정치력을 발휘했던 노회찬 의원을 닮아가길 바란다. 해병대 채상병 사건에서 눈물만 흘릴 게 아니라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와 함께 관련 특별법과 특검이 통과되도록 협력하고 연대해야 한다. 좋은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셋째로 정치는 분열이 있는 곳에 통합을 가져오고 상처 난 곳을 치유하는 가치지향적인 행위이다. 정치적 동물로서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이다. 실제로 정치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는 결정적 기준으로 공동체에 감동을 낳는 고차원적 정신 활동이다. 따라서 좋은 정치인은 분열을 통합으로, 혐오를 존중으로, 차별을 평등으로 변화시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지난 대선에서 정치인 이준석은 ‘이대남’이니 ‘여성가족부 해체’니 ‘세대포위론’이니 하면서 분열을 조장해 표를 결집한 적이 있다. 그런 선거 전술은 좋은 정치인이라면 선택할 수 없는 방식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또다시 반복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오는 4·10 총선을 앞두고 개혁신당 대표 이준석은 정책을 발표하면서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를 거론했다. 게다가 여성이 군인과 경찰 공무원으로 지원할 경우, 남성과 똑같이 군 복무 이수를 주장하기도 했다.

글쓴이가 보기엔 갈등을 해소하고 공동체가 좀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범상한 시민의 눈으로 보기에도 정책의 깊이가 얕고 즉자적이며 선동성이 짙다. 사회갈등을 조장해 분열을 초래하기보다 청년 정치인 이준석이 좀 더 공동체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품격 있는 정책으로, 그런 정치인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인 이준석이 진정한 보수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보수’를 흉내 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정치인 이준석을 진정한 보수정치인으로 분류한다. 이런 현상은 국민의 힘이 지나칠 정도로 극우 성향 내지 수구적 속성이 강한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라 생각한다. 참된 보수는 민족공동체에 애정을 갖고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며 진보와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선한 방향으로 공동체가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협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게 참된 보수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존경받는 참된 보수의 상징적 인물은 문익환 목사와 리영희 교수 정도이다. 두 분 모두 냉전 질서가 형성되던 시기, 반공 전선에서 일했던 공통점이 있다. 한 분은 기독교인 가정에서, 그리고 또 다른 한 분은 가난한 선비 집안 출신이다. 그러함에도 참된 보수는 분단과 통일이라는 민족문제에 깊은 애정을 간직한다. 분단을 넘어 통일을 지향하는 삶을 지고의 가치로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민족공동체가 지닌 전통 가치인 사상과 문화를 존중하며 이를 계승 발전시킨다. 이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문익환 목사와 리영희 교수이다.

문익환 목사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는 북간도 용정 중앙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며 민족운동에 헌신한 분이다. 1946년 제3차 국공합작이 결렬되고 공산화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교회를 빼앗겼다. 리영희 교수의 외조부는 천석꾼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다 분쟁이 생겨 정의부 중대장에게 피살된 인물이다. 문익환 목사와 리영희 교수는 한국 지성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두 분 모두 파시즘 독재 권력에 맞서며 민주주의를 위해 고난을 자처한 삶을 사셨다. 참된 보수가 아니면 불가능한 삶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또한 보수정치인들이다. 그들이 집권한 시절, 민족문제를 가장 중요시하며 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애썼다. 그들 대통령 모두 참된 보수이자 진정한 자유주의 정치인이다.

장애인들이 카페에서 음료를 만들고 서빙하는 사회적 기업 그라나다 센터(출처 : 하성환) 우리 사회가 제대로된 복지국가이자 인간의 얼굴을 한 평등 사회라면 천주교를 비롯해 종교단체만이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국가 예산을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데 써야 할 것이다. 장애인들도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모습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카페에서 음료를 만들고 서빙하는 사회적 기업 그라나다 센터(출처 : 하성환) 우리 사회가 제대로된 복지국가이자 인간의 얼굴을 한 평등 사회라면 천주교를 비롯해 종교단체만이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국가 예산을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데 써야 할 것이다. 장애인들도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모습이기 때문이다.

분배와 정의, 노동문제와 복지, 환경과 생태 문제에선 구두선에 그치거나 몇 걸음 나아가질 못했지만 그래도 흉내는 내지 않았던가! 그들 정치인이 진보 정치인이 되지 못하고 참된 보수의 면모에 그친 이유이다.

고 이이화 선생은 이완용을 <양두구육의 전형>이라 일컬었다. 덕수궁 중명전에서 을사늑약 체결 당시 광경(출처 : 하성환) 
고 이이화 선생은 이완용을 <양두구육의 전형>이라 일컬었다. 덕수궁 중명전에서 을사늑약 체결 당시 광경(출처 : 하성환) 

극우 세력이나 수구 세력들은 종종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종북좌파로 흠집 내고 몰아가지만 이는 얼토당토않은 색깔 씌우기이다. 겉과 속이 다른 자신들의 반민족성, 양두구육을 은폐하고 자신들이 마치 ‘보수’의 본령인 체하는 고도의 위장술이자 선전술이다. 존경받는 역사학자 고 이이화 선생은 반민족 친일 세력의 상징! 이완용을 ‘양두구육의 전형’으로 보았다.

오늘날 보수를 자처하거나 보수 흉내를 내는 사이비 보수, 가짜 보수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입으로는 애국을 얘기하고 다른 이들에겐 엄정한 법치와 공정을 내세우지만 정작 자신의 범죄에 대해선 철저히 감추는 사익 추구 집단이다. 다시 말해 ‘양두구육의 전형’으로 예나 지금이나 반민족 매국 집단이다.

모름지기 청년 정치인 이준석이 좋은 정치인으로 대중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선 위에 제시한 네 가지를 성찰해야 한다. 대구 ‘김광석 거리’에서 대중 연설을 하고 노회찬을 연상시키는 고깃집 ‘불판 이미지’로 자신의 정치철학이나 정체성을 포장할 순 없다. 좋은 정치인은 분열을 조장해 정치 이득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공이라는 과잉 이념으로 일그러진 한국 정치 환경에서 진정한 보수의 좌표가 무엇인지, 어떤 모습의 정치노선을 걸어야 하는지 두고두고 성찰할 일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정치인 이준석은 경쟁 자본주의 질서 속 학력 지상주의 사회가 초래한 일그러진 초상일 뿐, 이번 총선을 계기로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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