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그랬다. 하지만 이게 <한겨레>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김대중 정부 때는 "전라도 신문"이라고, 노무현 정부때는 "노빠 신문"이라며 신문을 끊는 이가 많았다. "한겨레가 변했다."거나 "이제 한겨레를 떠날 때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 것에 한겨레에서 일하는 이들은 익숙하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29일 임인택 <한겨레> 수도권팀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속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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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주관적인, 넋두리 좀 하려고 합니다. 속이 상하니까요. (미안하지만, 자유당·바른당 지지자는 보지 마세요.) 

요즘 <한겨레>가 대선 앞두고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반대해 알게 모르게 디스한다는 비판이 많은 모양입니다.
어디는 안희정을 밀어서, 어디는 국민의당을 밀어서, 한때 이재명 지지율이 나올 땐 이재명을 밀어서라고들 합니다.
그나마 다행으로 ‘홍준표나 김진태를 밀기 때문’이라는 공격은 없네요.

<한겨레>는 창간 이래 늘 변했다고 질책하는 분들과 변하지 않는다고 탓하는 분들에 둘러싸여 있듯, 왜 <한겨레>가 ‘이 선(善)’을 지지하지 않냐며, 각각의 善이 그 善의 입점에서 비판을 합니다. 나는 수도권팀장으로, 박원순 시장이 불출마 선언 이후 “<한겨레>가 너무 ‘친문지’였다”고 서운해하는 말을 몇차례 듣습니다. 이젠 웃으면서 말하는데 그때마다 “<친박지>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다)”며 말꼬리를 내릴 뿐입니다. 그것말곤 달리 할 얘기가 없어요. ‘문재인 마크맨’인 제 동기 기자는 “문재인에 인색하다”는 비판, 불만, 불평 전화를 기사 쓸 때마다 받고 있고, 국민의당 쪽도 “한겨레가 그럴 순 없다”는 얘길 곧잘 해왔습니다.

국민에게 빚져 만들어진 미디어라 <한겨레>는 이런 때 버겁고, 그럼에도 아는 게 그것뿐이라 걸어왔던 대로 갈 것인데, 그때 누구는 “이제 한겨레를 버린다”고 냉소하며 말을 합니다. 

지금의 탄핵 후 대선정국이 노정되기까지, 나는 염치불구하고 내 조직의 역할이 대단히 컸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지난해 가을 최순실-박근혜 보도가 그렇고, 몇해전 유진룡 전 장관 보도가 그렇고, 지난해초 진경준-우병우 보도가 그렇습니다. 이전의 국정원 대선개입,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BBK 보도 이런 건 어떤가요. 

탄핵 국면에서 대부분의 언론 지지는 jtbc와 손석희 사장이 받더라도 그건 부정해선 안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걸 통해 나는 큰 학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실을 담보하겠다는 매체가 신문, 방송 하나씩만 있어도 대통령일지언정 ‘거짓보수’를 파면할 수 있고, 정권교체도 전망해볼 수 있다는 경험입니다.

한편으로 기득권 매체에 대한 허상의 공포를 꽤 많이 소각했다는 것도 내겐 성과입니다. 늘 한줌이라 생각해왔던 진보민주 진영의 시민들, 두려운 게 많았지 않습니까. 나는 기득권 매체에 대한 과잉의 공포를 ‘빅존 컴플렉스’라고 부릅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고등학교 때 교사는 늘 농담 하나씩을 하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빅존 얘기만 기억납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공포의 총잡이, 악당, 빅존. 어느 마을도 언제 ‘빅존이 오나’ 바들바들 떨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기어코 우락부락 덩치 큰 총잡이가 마을 술집 문을 박차고 들어와 맥주를 시켜 마십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주민들은 얼굴도 제대로 못봤습니다. 그런데 그 ‘빅존’이 맥주 한잔 목을 축이더니 서둘러 마을을 떠나더라는 겁니다. 의아해 누군가 용기내어 물었더니 그자의 답이 이렇습니다. ”아, 더 못 있어요. 빅존이 곧 온대요~”

실체는 없이, 공포만 있습니다. <조선일보>가 무슨 논조, 어젠다를 펼치던 상식과 다를 때 중요하지 않아졌고, KBS가 망가지고 MBC가 심지어 극우화되어도 우린 그리 외롭지 않을 수 있게 됐고, ‘모든 장년을 세뇌한다’던 종편이 무장 접점을 넓혀도 거짓보수의 파면이 가능했습니다. 상식을 밑동삼는 시민들의 힘이지만, 그들에게 보아야할 현실을 손으로 가리킨 매체들이 있었고, 그것으로 지금 우린 야권의 누가 대통령이 될까, 최소한 몇개월 전보단 희망적인 고민을 합니다. (물론 이런 환경이 지속되리라 보지 않습니다. 더 거대한 반동을 우린 또 만나게 되겠죠.)

그러니 ‘한겨레이지 않은가’ 투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떠난다와 버린다는 다른 말입니다. 선이 선을 적대시하며, 신뢰를 표지로 삼는 매체에 선이 아니라고 버리겠다 냉소할 때만큼 맥빠지는 일은 없습니다. 선이 독점될 리도 없지만, <한겨레>가 단호하게 배제될 때 난 아찔합니다.

사실 이 미디어 기업은 충분히 허덕이고, 결핍적입니다. 수년 동안 <한겨레>는 어느 매체가 좇아올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의미있는 보도들로 각종 상을 휩쓸었습니다. 하지만 독자가 늘진 않았습니다. 이 부조리를 나는 아프게 보고, 조직은 또 허덕댑니다. 

<한겨레>가 오점이, 모자람이 없을 리 없습니다. 2014년 세월호 보도가 부족했고, 2011년 박근혜 검증도 부실했습니다. 1990년대 DJ 편들기가 심해서 정치 편향성이 두드러져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도 선배들로부터 들었습니다. 셀 수도 없겠지요. 하지만 어느 노조의 의견광고를 거부한 경영진의 결정에 궐기하는 기자들이 있고, 논조의 편향성에 대드는 조직원들이 있고, 이명박 정부 시절 삼성 비자금 보도로 삼성이 광고를 3년 끊었을 때 무급휴직 돌아가며 감내하는 이들로 가득인 조직입니다. 

몇달 전 일이었습니다. 회사가 성과급을 나누기로 했는데, 막내들 몫이 가장 적었습니다. 연차에 비례해 주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조직에서 상식일 법한 무하자의 결정에, 조직원 100명이 넘게 왜 정액제가 아니냐며 성과급을 반납했습니다. 이후 수습이 되긴 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가 다니는 <한겨레>는 그렇습니다.
그 엄결함이, 모두에겐 아니지만, 지배적이고, 자본으로 결코 조롱받거나 압도될 수 없는 가치여서, 부패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나또한 그덕에 덜 썩고 있다고 믿습니다.

<한겨레>를 떠난다는 당신은 떠나도 됩니다. <한겨레>를 버린다는 당신은 버려도 됩니다. 국민에게 빚진 미디어는 더 모질게 국민 앞에 평가받을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민에게 빚을 지었을지언정, 그것이 여러분 모두 한겨레의 주인이다, 는 말은 아닙니다. 미디어 <한겨레>의 주인은 진리이고 진실이고 다수의 상식이며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열망입니다. 

이 정권 최순실의 실체를 처음 거명해 보도한 후배 기자의 급여는 <조선일보>나 jTBC 기자의 절반이나 많아야 2/3 수준일 겁니다. (나는 <한겨레> 월급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나라에선 월급으로 권위나 실력을 재단하려는 이들 만나기 십상인 탓입니다.)
그 보도로 촉발되어 지금 우린 새 대통령을 뽑는 시점을 맞은 것입니다. 

<한겨레>는 국민이 만들어준 미디어 기업이란 점, 그것을 잊지 않고 그것을 ‘한겨레적 가치’라는 말로 응결시켜 여러 판단의 준거로 삼습니다. 그것은 때로 막연하여 갈피를 잃지만, 많은 동료들이 늘 그 위에 서려고 노력하려고 안에서 다투고, 스스로 투쟁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한겨레>를 버리겠다고 말하는 분들에게 묻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문재인-안희정-이재명 사이 치열한 경선과정, 어쩌면 향후 20년 집권의 그림을 모색해야할 이들간의 경선과정에서, 사진 하나때문에, 제목 하나때문에, 어떤 시민의 워딩 하나 때문에 <한겨레>는 선이 아니고, 그래서 버리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장 오늘만, 1년만, 살아보자, 는 건 아닌가요.

반성이 없어 미안합니다. 더 엄결하고, 엄격하겠다고 말해야 하는데.. 한겨레라는 조직은 문재인을 지능적으로 편들 수 없고, 지능적으로 디스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문재인의 자리에 놓을 수 없습니다. 이 나라 어느 조직도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에 있어선 한겨레를 앞설 수 없다고 봅니다. 그때문인지 노정되는, 내가 보는 진짜 <한겨레>의 문제는 투박함입니다. 그걸로 의도를 오해받고 중심마저 흔들립니다. 더 세련되어지도록 저부터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 글은 참 구차하기 짝이 없습니다만)

10년 진보민주정권이 1년 만에 전복되고, 망실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권에서 누가 정권교체를 하든, 수많은 소외그룹들이 한번에 제 얘길 들어달라 소리치고 거리로 나올 겁니다. 그때마다 정권을 흔든다고 할텐가요. 그때마다 그 단체를, 그 그룹을 버린다고 할텐가요.

독한 것과 강한 것은 다릅니다. 박근혜는 독했을 뿐, 이번 대통령은 강해야 합니다. 비판을 수용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나는 이제 성공한 대통령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한겨레>를 그런 이유로 버린다면 삼성이 광고를 끊었던 그 3년처럼 그저 감내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말하겠습니다.


* 나는 14년차 한겨레 기자입니다.

▲ 임인택 <한겨레> 수도권 팀장

이 회사에 처음 들어와 ojt를 받는데 그때 대표이사가 “당신들은 사회생활을 한 이상 부패할 수밖에 없고, 이 조직에 들어와 희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 조직에 들어와 그 부패의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춰진다면 그건 여러분이 고마워해야할 일”이라고 한 말을 기억합니다. 난 부패 유전자가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글, 다시 각오도 할 겸 적어보았습니다.

편집: 이동구 에디터

이동구 에디터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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