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빠'나 '문빠'라는 표현은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진보 측 인사들을 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이제 진보정부가 들어서면서 "나는 노빠다" 혹은 "내가 문빠다"라고 자랑스럽게 외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한빠'는 무엇인가? 여기서 '한빠'의 '한'은 '한겨레'이다. 한겨레 창간주주로서 요즘 한겨레에 대해 느끼는 정서를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말이 '한빠'다.

"나는 한빠다"를 외치는 사람이 "나는 문빠다"라고 목에 힘주어 말하는 사람에게 할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사실 할 말이 별로 없다. 최근에 한겨레에서 벌어진 몇 건의 불상사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한겨레21>에 실린 사진과 관련한 안 모 기자의 '문빠'라는 언급 때문만도 아니다. 독자들을 적으로 대하는 듯한 실언을 했던 그 기자를 한겨레에서 문책하지 않았기 때문만도 아니다.

한겨레 창간 주주들은 한겨레를 잉태한 주주로서 일종의 '어미'같은 심정을 갖고 있다. 잘나도 내 새끼요, 못나도 내 새끼다. 한겨레가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만 욕을 먹는다해도 같이 욕할 수만은 없는 게 창간주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 한겨레신문사 3층 현관에 걸려있는 동판

진보언론은 보수정부에서는 돋보일 수 있어도 진보정부 하에서는 돋보이기보다는 어긋난 행태를 보일 수 있다. 언론의 기능이 진실보도와 비판정신이라고 할 때 그 기능은 진보정부 하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해야 한다는 원칙론적인 발상이 나올 수 있다.

최근에 불거진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소액주주들의 한겨레 접수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크게 번지지는 않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한겨레로서는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바라보는 '한빠'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한겨레 경영진과 기자들을 싸잡아 비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겨레를 '한걸레'로 부르는 일부 비판적인 진보시민들의 문제제기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거나 그와 정반대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없다.

'한빠'가 '문빠'를 바라보는 마음은 그래서 복잡다단하다.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도 없다. '한빠'는 대부분 '문빠'이기도 하다. 한겨레가 진보정부와 궤를 같이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한겨레가 이름하여 '문빠'와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빠'이면서 '문빠'인 창간주주들은 자기모순에 빠진다. 그래서 '한빠'들은 자기 성찰적이고 상황 타개적인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다.

굳이 표현한다면, "내 안에 한겨레도 있고, 문재인도 있다."

'한빠'가 '문빠'를 만났을 때 그러한 자기 모순적 상황에 직면하여 오히려 한겨레는 이를 진정한 진보언론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겨레가 주주와 독자들을 중시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현재 한겨레 경영진은 한겨레의 본질적인 가치 구현보다는 기업 경영의 측면에서 한겨레를 운영하는 데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빠'로서 한겨레 경영진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진보정부시대를 맞이한 진보언론으로서 어떻게 한겨레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 고뇌하는 신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은 한겨레가 진보정부 하에서 한겨레라는 기업을 효율적으로 경영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편이기도 하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이동구 에디터

심창식 편집위원  cshim777@gmail.com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