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7~19일

열흘 가까이, 그리도 비가 내리더니 어제 오늘은 아침 하늘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모르겠다. 미세먼지라곤 없는 독일의 맑고 깨끗한 하늘과 공기가 부럽다. 저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밭과 숲이 부럽다. 바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럽다.

숙소를 찾아 이동하다보니 거의 매일 50km가 넘는 강행군을 해왔다. 잠시 길이라도 잘못 드는 날은 60km까지 달려야 했다. 덕분에 예정보다 하루 앞서서 베를린에 도착하게 될 것 같다. 베를린에서 달콤한 휴식이 기대가 된다.

내 손목에 GPS시계는 배터리가 8시간만 간다. 쉬는 시간이나 식사시간에 시계를 꺼놓아도 8시간을 훌쩍 넘겨 내가 간 거리를 측정할 수 없다. 지도상으로 나온 거리로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 2017-09-17 마그데부르크에서 숍스도르프까지 달리면서
▲ 2017-09-17 마그데부르크에서 숍스도르프까지 달리다 만난 성

마그데부르크에서 아침 호텔 식사를 하고 7시 반이 안 되어 출발하여 힘겹게 목적지 숍스도르프에 6시가 다 되어 도착했는데 그 큰 호텔의 문은 잠겨있고 아무도 없다. 문에는 전화하라는 쪽지만 적혀있는데 내 전화는 어떤 이유에선지 통화가 안 된다. 그냥 인터넷만 사용하는 것으로 감지덕지다. 아날로그 세대의 한계다.

몸은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숙소에 도착했는데 들어갈 수가 없다. 숲 속 호텔이라 주위에 식당도 없다. 이 순간적인 좌절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짧은 순간 머리는 내 짐 속에 무슨 비상식량이 있나를 계산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서는 인간은 참 영악하다. 어제 점심을 제 때 못 먹어 서브웨이 샌드위치 큰 것을 두 개를 사서 한 개 반은 먹고 반을 버리지 않고 가져왔다. 그리고 우유 한 병, 바나나 하나, 도넛 두 개가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진 않지만 굶주릴 염려는 없었다.

한참을 대책 없이 앉아 있는데 사람 소리가 안에서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 쳐도 밖을 내다보지 않는다. 2~30분 동안 긴급조난자처럼 소리를 쳤고 드디어 안의 사람이 밖을 내다본다. 그가 전화를 해주어 10분 후에 종업원인지 매니저인지 나타났다. 일요일은 사람이 없고 열쇠를 함에 넣는데, 손님이 전화하면 비밀번호를 가르쳐준다고 한다. 독일은 정말 일요일은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슈퍼마켓까지 문을 닫아버리니 우리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 2017-09-18 숍스도르프를 출발하면서

오래 달리기는 내 안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달리는 발걸음에는 꿈과 새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넓혀준다. 달리기는 상상력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준다. 달리는 것은 역동적으로 공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시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움직임이다.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광, 변덕스런 날씨, 땀을 식혀주기기도 하고 옷깃을 여미게도 하는 바람이 다 사랑스럽다.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면서 심연과도 같은 깊은 고독 속에서 내 몸의 오감이 최고로 활동하는 것을 즐긴다.

독일은 성(castle)의 영주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였다. 독일 지명 중에 브루크(brug)가 뒤에 붙는 경우가 많다. 브루크(brug)는 독일어로 중세 유럽에서, 요새와 방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란 의미이다. 내가 지나온 마데스브루크라든가 여기 브란텐브루크, 또 함브루크 같은 곳은 영주가 다스리던 공국으로 보면 맞을 것이다. 또 푸르트(furt)가 붙는 지명도 많다. 푸르트(furt)는 샘이라는 뜻이다. 프랑크푸르트 같은 도시는 샘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이다.

▲ 2017-09-18 숍스도르프에서 브란덴부르크까지 달리면서 만난 성과 교회

브란덴브루크에 도착했을 때는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빨리 씻고 누적된 피로를 풀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호텔 문이 잠겨있다. 전화를 하라고 정문에 쪽지가 붙어있는데 전화를 할 수 없다. 길거리에는 인적이 드물다. 한참을 기다리다 지나가는 중년신사를 붙들고 전화를 부탁하니 자기는 전화가 없단다. 또 한참을 기다리는데 이번엔 금발머리 여자가 지나간다.

전화를 걸어 비밀번호를 받아 열어 방 열쇠를 꺼내고, 호텔방에 올라가 방문이 열리는 것까지 확인하고 다시 내려와서 내가 정문의 비밀번호로 문 여는 것까지 확인해준다. 독일 사람들은 무뚝뚝하다는 생각을 한방에 날려 보내준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독일 사람들은 무뚝뚝하다는 말을 여기저기 하고 다녔을 것이다. 너무 피곤하지만 않았다면 같이 저녁이라도 하자고 했을 텐데...

유럽에서 가을비에 씻긴 담쟁이덩굴이 덮고 있는 고성이 숲 사이에 솟아있는 것을 마주보고 서있는 일은 멋진 일이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풍스런 성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를 달리며 처음 와 본 도시의 감회에 젖는 것도 새롭다. 그러나 잠시 후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이 멋진 건물들이 선망의 대상이던 동화 속 왕자들이 보통사람들을 지배하며 핍박하던 본거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이 거대한 건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착취 당했을까?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저 웅장한 건물들이 서있는 것이다. 지배자는 늘 백성을 위한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오로지 한 사람 권력자와 그의 일족을 위한 건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인류 위대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지고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어쩐 일인가? 권모술수와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며 힘없는 시민들의 원성이 돌의 무게만큼 무겁게 들리는 듯하다. 세월은 흘러 모든 것을 묻히고 아름다움만 빛바랜 채 남아 후세의 관광객들에게는 예술적 가치와 인간의 뛰어난 능력으로만 남아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 2017-09-19 만난 성

다시 발걸음을 옮겨 포츠담으로 향했다. 오늘도 나는 점심을 제때 먹지 못하고 왔으므로 숙소를 찾았을 째는 이미 몸의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였다. 한 시간 정도 자리에 누워 에너지를 모은 다음 저녁을 먹고 석양이 지는 상수시(Sanssouci) 궁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포츠담에는 독일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상수시 궁전이 있다. 상수시 궁전이 있는 상수시 공원은 수천 그루의 포도나무와 드넓은 잔디가 융단처럼 깔린 바로크식 공원이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포츠담에 로코코 양식의 궁전을 지어 놓고 예술에 심취해 포츠담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곤 했다. 상수시는 프랑스어로 걱정이 없다는 뜻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종결 직전 1945년 7월 26일 미국의 트루먼,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이 포츠담에 모여서 정상회담을 했다. 이미 패망한 독일에 대한 처리문제와 곧 무너질 일본에 대한 처리가 주된 내용이었다. 일본은 이 선언을 거부한 대가로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맞았다. 이로 인해 한국은 해방을 맞게 되었다.

▲ 2017-09-17 마그데부르크에서 숍스도르프까지 달리다 만난 이정표
▲ 2017-09-17 마그데부르크에서 숍스도르프까지 달리면서

 

▲ 2017-09-18 숍스도르프에서 브란덴부르크까지 달리면서 
▲ 2017-09-18 숍스도르프에서 브란덴부르크까지 만난 독일
▲ 2017-09-18 숍스도르프에서 브란덴부르크까지 내 모습
▲ 2017-09-19 브란덴부르크에서 포츠담까지 달리면서
▲ 2017-09-19 브란덴부르크에서 포츠담까지
▲ 2017-09-19 브란덴부르크에서 포츠담까지
▲ 2017년 9월 1일 네델란드 헤이그에서 출발해서 9월 19 독일 포츠담까지 782km

* 평화마라톤에 대해 더 자세한 소식을 알고 싶으면 공식카페 (http://cafe.daum.net/eurasiamarathon)와 페이스북 페이지(http://facebook.com/eurasiamarathon)에서 확인 가능하다. 또한 다음카카오의 스토리펀딩(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6870)과 만분의 일인 1.6km를 동참하는 런버킷챌린지 등의 이벤트를 통해 후원과 함께 행사의 의미를 알리고 있다

[편집자 주] 강명구 시민통신원은 2017년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년 2개월간 16개국 16,000km를 달리는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2년 전 2015년,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고 아시아인 최초로 미대륙 5,200km를 단독 횡단한 바 있다. 이후 남한일주마라톤, 네팔지진피해자돕기 마라톤, 강정에서 광화문까지 평화마라톤을 완주했다. <한겨레:온>은 강명구 통신원이 유라시아대륙횡단평화마라톤을 달리면서 보내주는 글과 이와 관련된 글을 그가 마라톤을 완주하는 날까지 '[특집]강명구의 유라시안 평화마라톤'코너에 실을 계획이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강명구 시민통신원  myongkuka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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