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과 봄을 나눈다는 절분초, 너도바람꽃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천마산은 나의 식물 학교장입니다. 서울 근교에 이만한 산이 드뭅니다. 식물에 빠진 이래 내가 즐겨 가는 산입니다. 내 블로그에는 천마산에서 모셔온 식물종이 참 많습니다. 언제 어디쯤 가면 뭘 만날 수 있는지 머릿속에 훤하지요. 그런데 올 들어 왜 이렇게 미세먼지가 극심할까요? 옴짝달싹 못하고 집 안에 처박혀 있자니 안달합니다. 다행히 내일 일기 예보에 미세먼지 좋음 수준이랍니다.

 과연 오늘 아침 햇살이 눈부십니다. 남한산성이 선명하게 내다보입니다. 북서풍에 미세먼지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꽃샘추위가 고맙기까지 합니다. 혼자라도 가려는데 꽃동무가 동행하겠다고 합니다, 혼자 가면 외롭다면서. 밖에 나가니 제법 바람끝이 매섭습니다. 난데없이 구름이 몰려오더니 해를 덮어 버립니다. 은근 걱정 됩니다. 잠실 광역버스터미널, 꽃동무가 먼저 와서 기다립니다. 호평동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호평역에서 내려 천마산입구 가는 버스로 환승해 갑니다.

 천마산 입구 임도 가장자리 양지 녘에 둥근털제비꽃이 먼저 얼굴을 내밀고 인사합니다. 제비꽃 가족 중에서도 제일 먼저 피는 친구입니다. 이름에 걸맞게 온통 솜털이 보송보송합니다. 겨우내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위해 무장한 방한복이지요. 외롭게 혼자서 겨울을 지낸다면 얼마나 더 힘들었겠습니까? 이렇듯 여럿이 함께 옹기종기 뭉쳐 견딤에 한겨울 혹한도 극복할 수 있었겠지요. 하얀 입술꽃잎에 보랏빛 줄이 선명합니다. 수정을 위해 곤충을 쉽게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랍니다.

▲ 둥근털제비꽃, 제비꽃 종류 중에 가장 먼저 꽃이 핀다.

 점현호색은 아직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일반 현호색과는 달리 꽃이 크고, 잎 표면 전체에 흰 반점이 많아 얻은 이름입니다. 바로 이 천마산에서 표본을 채집하여 1987년 김윤식, 오병운 교수가 분류학회지에 처음 발표하여 출생 신고한 종입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꽃이 되었습니다. 나는 15년 전 여기 천마산에서 처음 만나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습니다. 점현호색, 이젠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눈짓'이 되었습니다.

▲ 점현호색, 잎도 꽃도 크고 잎 표면에 흰 반점이 많은 게 특징이다.

 팔현마을 쪽으로 내려가는데 아직은 봄이 멀어 보입니다. 골짜기엔 하얗게 쌓인 잔설이 보란 듯이 버티고 있습니다. 너무 성급하다고 조금만 더 기다리랍니다. 혹여 너도바람꽃조차 보지 못하면 어쩌지? 동행한 꽃동무에게 좀 면목이 없을 듯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4월 초순경에나 가야 얼레지도 올라오고, 복수초, 금괭이눈, 산자고, 만주바람꽃, 꿩의바람꽃, 중의무릇, 각시현호색, 달래 등등 온갖 봄꽃의 향연이 펼쳐질 판입니다.

▲ 북사면 골짜기엔 하얗게 쌓인 잔설이 보란 듯이 버티고 있다.

 팔현저수지 발원지인 골짜기로 들어섰습니다. 어디쯤 가면 뭐가 있는지 눈을 감고도 훤하게 떠오릅니다. 거기쯤 가면 필시 너도바람꽃이 피어 있을 거야. 그러면 그렇지! 너도바람꽃이 팝콘처럼 흩어져 피어 있습니다. 남이 바람꽃 비슷하다고 인정해 주어 '너도바람꽃'이 되었답니다. '반짝이는 별 모양 봄 꽃'이라 하여 학명이 'Eranthis stellata Maxim.'입니다. 자칭 바람꽃 닮았다고 안달하여 이름이 된 '나도바람꽃'은 같은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지만 사촌쯤 될까요, 속이 전혀 다릅니다. 너도바람꽃은 키가 고작 5c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진을 제대로 담으려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하는데 밤나무 아래라 밤송이 껍질이 널려 있습니다. 몇 군데 찔리는 것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데 꽃의 상태가 좀 시원찮습니다. 겨울과 봄을 나눈다 하여 절분초(絶分草)라고도 하는 너도바람꽃, 너무 성급하게 서둘러 꽃망울을 터뜨려 냉해를 입었나 봅니다. 상태가 괜찮은 모델을 골라서 정성 들여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 보는 사람들한테 바람꽃을 닮았다고 인정받아 '너도바람꽃'이 되었다.
▲ 팝콘을 흩뿌려 놓은 듯 피어 있는 너도바람꽃, 봄이 왔음을 어찌 알고 꽃망울을 터뜨릴까?

 앉은부채, 꽃싸개잎에 둘러싸인 육수꽃차례가 마치 부처가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듯합니다. 잎과 꽃이 함께 있어서 모델이 그만입니다. 덩이뿌리를 한약재로 쓰지만 독초입니다. 배춧잎 같아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연한 잎, 먹으면 큰일 납니다. 꽃에서 나는 야릇한 냄새에 이끌려 찾아온 벌레들이 기어들어가 수정합니다. 중국에서는 취숭(臭菘)이라 하고, 영어권에서는 스컹크가 풍기는 악취가 나는 배추 같다고 하여 'skunk cabbage'라 부른답니다.

▲ 앉은부채, 불꽃 모양의 꽃싸개잎이 육수꽃차례를 감싸고 있는 모양은 마치 부처가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 앉은부채, 배춧잎처럼 보이는 잎은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만 독초라서 먹으면 큰일 난다.

 바람꽃 중의 백미(白眉), 꿩의바람꽃도 선을 보입니다. 가느다란 줄기 위쪽에 꽃싸개잎에 둘러싸인 하얀 꽃에서 꿩의 모습이 연상되나요? 내 보기에는 20여 종이 넘는 바람꽃 중에서도 아름답기로는 압권(壓卷)입니다. 햇볕이 좋으면 하얀 꽃받침을 벌리고 우아한 자태를 뽐낼 텐데 아쉽네요. 일주일 후면 절정일 듯합니다.

▲ 꿩의바람꽃, 우아한 자태는 미나리아재빗과 바람꽃 종류 중의 백미이다.
▲ 가느다란 줄기 위쪽에 꽃싸개잎에 둘러싸인 하얀 꽃이 꿩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현호색, 서운해 할까 봐 딱 하나가 꽃이 피었습니다. 점현호색, 각시현호색보다는 먼저 핍니다. 한자로 玄胡索이라고 쓰지요. 덩이줄기가 검고, 중국 북부지방 오랑캐 땅에 많이 나는데 새싹이 돋아날 때 노끈(매듭) 모양이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바람꽃 종류와 마찬가지로 현호색 종류는 큰키나무들이 잎이 무성해지기 전 이른 봄부터 서둘러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야 합니다. 그래야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여 뿌리에 영양분을 저장하고, 꽃을 피우고 결실하여 종족을 보전할 수 있습니다. 현호색 덩이줄기는 피를 맑게 하고 통증을 진정시키는 데 귀중한 한약재로 쓰인답니다.

▲ 이른 봄에 꽃이 피는 현호색, 덩이줄기는 귀중한 한약재로 쓰인다.

 완전히 핀 꽃보다 빨갛게 맺혀 있는 꽃망울이 더 예쁜 딱총나무입니다. 아직은 너무 일러 별 볼 품이 없지만. 여름철 빨갛게 익은 열매가 송알송알 달려 있는 모습이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새순에서는 누릿한 냄새라 할까 독특한 향이 납니다. 이 향을 즐기는 사람들은 어린 순을 따서 나물로 먹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약 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 나무 이름을 딱총나무라 했다고 합니다.

▲ 딱총나무, 화약 냄새 같은 독특한 향이 있어 새순을 나물로도 먹을 수 있다.

 나무 꽃은 딱 하나, 생강나무를 만났습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바로 그 나무입니다. 점순이한테 떠밀려 부둥켜안긴 채 푹 파묻힌 그 노란동백꽃! 점순이 채취인지, 노란동백꽃 향기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나는 고만 정신이 아찔해집니다. 생강나무가 노란동백꽃이란 걸 몰랐을 때는 웬 동백꽃이 강원도 산골짜기에 피나 의아했지요.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동백기름만 못할지라도 머릿기름으로 쓴 데서 생강나무를 강원도에서는 노란동백꽃이라 한답니다. 그런데 생강나무는 새잎이나 잔가지에서 진짜 생강 냄새가 납니다. 은은한 향이 좋아서 어린잎을 따다가 덕어 차를 만들어 먹기도 합니다. 또한 암수딴그루로 꽃이 피는데 대체로 수그루의 수꽃이 더 화려하고 풍성합니다.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는 여러 가지로 비슷합니다. 둘 다 이른 봄에 꽃이 피고, 꽃 색깔도 노란색입니다. 꽃만 보고서는 헷갈리기 십상입니다. 꽃자루를 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지요. 꽃자루가 짧으면 생강나무, 꽃자루가 길면 산수유나무입니다. 또한 생강나무는 깊은 산에 자생하지만 산수유는 관상용, 약용으로 마을 근처에 심어 기르는 나무랍니다.

▲ 생강 냄새가 나는 생강나무는 꽃자루가 짧고, 깊은 산에 절로 자란다.

 산괭이눈은 속살대는 물 소리 들으며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주로 물이 흐르는 계류 근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있으면 흰털괭이눈, 애기괭이눈, 금괭이눈도 노오란 꽃망울을 터뜨릴 것입니다. 머지않아 아래처럼 예쁘게 꽃이 필 것입니다. 왜 이름이 괭이눈일까요? 제 눈에는 괭이의 눈 같지 않습니다. 시냇가에 반짝이는 노란 별 같지 않나요? 

▲ 계류 근처에 나는 산괭이눈은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다.
▲ 그곳에서 만난 산괭이눈, 괭이의 눈 같지 않고 노란 별 같아 보인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이호균 주주통신원  lee1228hg@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