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예쁘고 이름도 특이한 깽깽이풀

▲ 4월 초 물향기수목원에서 만난 깽깽이풀, 꽃이 벙글기 직전 꽃봉오리와 붉은빛 잎이 앙증맞다.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 중에 깽깽이풀이란 꽃이 있다. 앙증맞기 이를 데 없는 깽깽이풀, 언제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워낙 꽃이 예쁘고 곱다보니 수난을 많이 당한다. 그래서 식물원이나 수목원에 가야 볼 수 있지 자생지에서는 좀처럼 만나볼 수 없다. 내가 처음 깽깽이풀을 대면한 곳도 홍릉수목원에서다. 조금 이른 시기라 꽃망울이 아직 완전 벙글지는 않았을지라도 붉은 빛깔의 방패 같은 둥근 잎과 연보랏빛 꽃이 지금도 선연하다. 꽃도 깜찍하고 예쁘지만 그 이름도 특이하여 한번 본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다.

'깽깽이풀' 이름의 유래에 대한 여러 가지 설

▲ 2006년 4월 2일 홍릉수목원에서 처음 만난 깽깽이풀, 지금도 그 선연한 자태가 잊히지 않는다.

왜 이름이 깽깽이풀이 되었을까? ‘깽깽이풀’이라는 국명은 정태현 외 3인의 《조선식물향명집 (1937)》에서 비롯한다. 혹자는 해금이나 바이올린을 속되게 이르는 ‘깽깽이’와 연관시켜, 한창 농사가 시작되는 바쁜 시절에 한가롭게 꽃을 피우는 풀이라는 데서 그 유래를 찾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한 발은 들고 한 발로만 뛰는 걸음을 뜻하는 ‘깽깽이걸음’의 ‘깽깽이’와 관련시켜 조금씩 떨어져 띄엄띄엄 무더기로 나는 이 식물의 생태적 특성에 유래한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개가 짖는 소리 ‘깽깽’에서 유추하여 개가 마취 성분이 들어 있는 이 풀을 뜯어 먹고 내는 소리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호사가들의 황당무계한 억측에 불과하다.

▲ 깽깽이풀의 생태적 특성, 종자를 개미가 먹잇감으로 띄엄띄엄 옮겨 놓아 모닥모닥 퍼져간다..

국명 '깽깽이풀' 이전의 옛 이름

‘깽깽이풀’이란 국명이 나오기 이전의 문헌 기록을 찾아보면 《조선식물명휘(1921)》에 ‘ᄭᆡᆼᄭᆡᆼ이입’, 《조선산야생약용식물(1936)》에 ‘ᄭᅢᆼᄭᅢᆼ이닙’이란 이름이 나온다. 《조선식물명휘(1921)》는 일본인 모리 다메조(森爲三)가 조선총독부의 위탁을 받아 식민지배의 기초 정보 확보를 위해 저술한 것인데, 당시에 민간에서 실제 사용했던 이름을 조선인이 부르는 대로 기록하고 기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고 한다. 《조선산야생약용식물(1936)》은 정태현 박사가 일본인 하야시 야스하루(林泰治)와 함께 우리 약용식물을 정리하여 저술한 것인데, 정태현 박사도 민간에서 실제 사용한 이름을 우리의 식물명으로 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ᄭᆡᆼᄭᆡᆼ이입’과 ‘ᄭᅢᆼᄭᅢᆼ이닙’ 둘 다 민간에서 실제 사용한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 ‘ᄭᆡᆼᄭᆡᆼ이입’과 ‘ᄭᅢᆼᄭᅢᆼ이닙’의 현대적 표기는 ‘깽깽이잎’이므로 ‘깽깽이풀’은 ‘깽깽이잎’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깽깽이풀'이란 국명의 유래에 대한 나의 주장

▲ 깽깽이풀 열매, 넓은 타원형으로 끝이 부리처럼 긴 골돌(蓇葖)이다. 익으면 한 개의 봉선으로 비스듬히 옆으로 터진다.

그런데 ‘깽깽이풀’은 ‘{[(깽깽)이]풀}’로 구성성분 분석이 되는데, ‘깽깽’은 어떤 소리일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깽깽'을 검색해 보자. 후두염 환자가 몹시 아프거나 힘에 겨워 괴롭게 자꾸 내는 소리라고 풀이한다. 마치 개가 짖는 소리처럼 목 안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침, 곧 개기침소리가 '깽깽'이다. ‘깽깽이풀’이 이런 기침 환자를 치료하는 약재로 쓰인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천식이나 해소 환자가 숨을 자꾸 가쁘고 거칠게 쉬는 소리를 '헐떡헐떡'이라고 한다. 그런데 울릉도에 가면 그곳에만 자생하는 ‘헐떡이풀’이라는 식물이 있다. 헐떡헐떡 기침하는 천식, 해소 환자를 치료하는 데 바로 이 헐떡이풀이 귀한 약재로 쓰였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헐떡이풀'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성급한 일반화일지 모르지만 '깽깽이풀'이란 이름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실제 깽깽이풀의 뿌리줄기 말린 것을 생약명으로 황련(黃蓮, 黃連), 선황련(鮮黃連)이라 하는데 폐결핵, 백일해, 디프테리아, 편도선염, 인후염, 후두염 등의 호흡기 계통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귀중한 약재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결국 깽깽이풀이란 이름은 호흡기 계통의 개기침소리를 내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약재로 쓰인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 밖의 국명과 외국명

▲ 깽깽이풀의 종자, 끝에 하얀 엘라이오좀(elaiosome)이 붙어 있다. 이게 개미의 먹잇감이 되어 옮겨져 영역을 넓혀간다.

정태현 외 3인의 《조선식물향명집 (1937)》에서는 깽깽이풀이란 순우리말 국명과 함께 조황련(朝黃蓮)이란 한자명도 제시하였다. 이밖에 박만규의 《우리나라식물명감 (1949)》에서는 ‘깽이풀’, 정태현 외 2인의 《조선식물명집 (1949)》에서는 잎과 꽃의 모양이 연꽃을 연상시키고, 한약재로 쓰이는 뿌리줄기가 노랗다고 하여 ‘황련(黃蓮)’이라 하였다. 북한에서는 ‘깽깽이풀’ 이외에 ‘산련풀’이라고도 부른다. 중국명은 선황련(鲜黄连, xian huang lian)이라고 하는데 조선(朝鮮)의 황련(黃連)이란 뜻이다. 실제 깽깽이풀은 중국의 동북부 길림과, 연길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일본에서는 일본군함 용전호(竜田號)의 승무원이 중국에서 최초 발견하였다고 하여 ‘タッタソウ(竜田草)’라 부른다, 영문명은 ‘Chinese Twinleaf’라 한다. 중국에 나는데, 잎이 깊게 갈라져 마치 두 개의 잎이 달린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Twinleaf’이라고 한 것이다.

깽깽이풀의 학명

깽깽이풀은 독일-러시아의 식물학자 Karl Maximowicz(1827~1897)가 1859년 “Plagiorhegma dubium Maxim.”라는 학명으로 최초 기재하였다. 그는 아무르강 유역에서 채집한 표본을 근거로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꽃에 달리는 단성화를 갖는다고 추정하였다. 그 후 영국의 분류학자 George Bentham(1800~1884)과 Joseph Dalton Hooker(1817~1911)는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깽깽이풀의 꽃이, Maximowicz가 기재한 바와 달리, 단성화가 아니라 암술과 수술이 한 꽃에 달리는 양성화임을 확인하고, 북아메리카 동부지역에 분포하는 “Jeffersonia diphyllae”와 유사하다고 여겨 이들 두 분류군을 동일한 속으로 분류하고 Plagiorhegma속을 Jeffersonia속으로 전이하여 “Jeffersonia dubia (Maximowicz) Bentham & J. D. Hooker ex Baker & S. Moore(1879년)”로 이명 처리하였다. Baker & S. Moore는 이 학명을 출판하여, 정당 공표한 사람이다. 속명 ‘Jeffersonia’은 미국의 제3대 대통령 Thomas Jefferson(1743~1826)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매자나무과 깽깽이풀속을 의미한다. 종소명 ‘dubia’는 ‘잎이 반으로 접혀져 올라오는 모양’이란 뜻이다.

분류학상 위치와 분포

깽깽이풀은 분류학적으로 피자식물문Magnoliophyta) 목련강(Magnoliopsida) 미나리아재비목(Ranunculales) 매자나뭇과(Berberidaceae) 깽깽이풀속(Jeffersonia)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매자나무과 식물 가운데 줄기가 없는 식물이므로 쉽게 구분된다. 깽깽이풀은 세계적으로 중국 동북부, 러시아 아무르, 우수리, 일본 등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역의 산 중턱 이하 낙엽활엽수림 아래 반그늘 습기가 있는 토양에서 자라는 희귀식물이다. 꽃이 예쁘고 귀한 약재로 남채(濫採)되어 환경부에서는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 보호종으로 지정하였으나 분포역이 넓고, 개체수가 증가하여 2011년 이후 법정 보호종에서 해제하였다.

형태적 특징

▲ 깽깽이풀의 꽃, 햇빛을 받아 보랏빛 꽃잎을 활짝 편 모습은 위성 접시안테나 같아 보인다.

깽깽이풀은 땅 위에 줄기가 없고 여러 개의 잎과 꽃이 땅속줄기에서 모여 나와 높이 20~30cm 정도로 자란다. 뿌리줄기는 짧고 단단하며 옆으로 자라는데 잔뿌리가 많이 달린다. 잎은 긴 잎자루 끝에 달리는데 잎몸은 길이 5~9cm, 너비 7~10cm쯤의 원심형(圓心形), 잎끝은 오목하고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이다. 꽃은 4~5월에 뿌리에서 나온 긴 꽃자루 끝에 1개씩 달려 피는데 자생지에 따라 약간 다른 경향을 보인다. 남부지역에서는 잎이 전개되기 전에 여러 개의 꽃이 먼저 나와 피며, 중부지역에서는 잎과 꽃이 동시에 나오는데 꽃 크기는 더 크지만 적게 핀다. 꽃 크기는 보통 지름 2cm쯤이고, 붉은 보라색 또는 드물게 흰색이다. 꽃받침잎은 4장, 피침형, 일찍 떨어진다. 꽃잎은 6~8장이며 난형이다. 수술은 6~8개, 암술은 1개다. 열매는 골돌(蓇葖)로 넓은 타원형이고 끝이 부리처럼 길다. 다 익으면 한 개의 봉선으로 비스듬히 터지며, 종자는 흑색이고 타원형이다.

깽깽이풀의 다양한 쓰임새

▲ 깽깽이풀의 뿌리줄기, 말려서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한약재와 천연 염료로 쓰인다.(관찰 후 다시 묻어줌)

깽깽이풀은 이른 봄에 나는 붉은색 잎과 보랏빛 꽃이 앙증맞게 아름답다. 수목원이나 식물원에서는 관상용으로 심어 기르는 곳이 많다. 요즈음에는 종자로 증식하는 데 성공하여 어렵지 않게 식재한 것을 만나볼 수 있다. 뿌리줄기는 예로부터 열을 내리고 해독작용이 있어 귀중한 한약재로 사용하여 왔다. 복통, 설사, 안질, 구내염, 피부염, 기관지염 등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약재로도 쓰인다. 특히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는 청금강화탕(凊金降火湯)이 좋은데 여기에 깽깽이풀이 들어간다(한국전통지식포털(http://www.koreantk.com). 또한 노란색을 내는 천연염료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이처럼 쓰임새가 다양하고 개발이란 미명하에 자생지가 훼손되다보니 깽깽이풀을 자생지에서 만나보기란 극히 어렵다. 국립수목원에서는 희귀식물 위기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해마다 봄이 되면 보고 싶은 깽깽이풀

▲ 경기도 모처에서 대군락을 이루어 만개한 깽깽이풀, 잘 보전되어 더 많이 증식되었으면 좋겠다.

활짝 핀 깽깽이풀을 자생지에서 제때 만나 보기란 쉽지 않다. 꽃동무의 안내로 몇 년 전 경기도 모처에 깽깽이풀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너무 늦은 시기라 꽃잎이 이미 다 스러져 버려 아쉬움이 남았다. 해마다 봄이 오면 깽깽이풀을 또 보고 싶어진다. 4월 5일에 혼자 다녀온 꽃동무가 아직은 조금 이르단다. 3일 후에 함께 그곳에 갔다. 상당히 많은 개체가 군락을 이루어 흐드러지게 피어 쫙 깔려 있다. 그야말로 찬란하게 만개하여 탄성이 절로 난다. 너무 호사스런 행복을 누리는 것 아닌가 싶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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