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봄이 왔다. 코로나사태와 따듯한 날씨로 인해 혼자 산책을 자주 나간다. 혼자 걷다보니 자연과 자꾸 눈을 맞추게 된다. 캐나다의 긴 겨울이 가시자 연두 빛 잎사귀가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개나리가 노릇노릇 올라온다. 다양한 색깔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이 계절이 참 고맙다.

모든 사람이 이런 다양한 색깔을 볼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하다. 초록색 잎사귀를 옅은 회색으로 보거나, 빨간색을 회색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색맹이라 부른다. 남성 발생률이 더 높다. 반면 여성 12%는 일반인들에 비해 100배 정도 색깔을 더 볼 수 있다.

▲ 색맹

왜 특정 인구는 색깔을 더 보거나 덜 보게 되는 걸까?

왜 색맹은 남성에게 흔하고, 일부 여성은 색깔을 더 많이 볼 수 있을까?

색깔을 인식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길을 가다가 개나리를 보았다. 햇빛은 개나리와 접촉하여 특정파장을 방출한다. 이 파장은 안구에 있는 렌즈로 들어와 안구 뒤쪽에 있는 망막을 자극한다. 망막에 있는 원추세포(cone cell, 圓錐細胞, 척추동물 눈 망막에 있는 빛에 민감한 뉴런)는 이 파장을 전기적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이 에너지는 신경망을 통해 뇌에 전달되고 우리는 ‘노란색’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 빛의 흐름과 색깔 인식

이렇듯 특정 빛을 인식하는데 있어 원추세포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은 총 3 종류 원추세포를 갖고 있다. 각각의 원추세포는 파랑, 초록, 빨간 파장을 인식하고 뇌에 전달한다. 원추세포 유전자 정보는 X염색체에 있다. 여성은 X 염색체를 두개 갖고 있고 남성은 한개만 갖고 있다. 원추세포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 남성에게서 색맹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반면에 12% 여성은 총 4종류 원추세포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더 다양한 색깔을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3종류의 원추세포만 갖고 있어도 약 천만 개의 색깔을 인식하고 구분할 수 있다.

왜 그런 걸까?

그 이유는 바로 빛에 원리에 있다. 초등학교 시절 아래 이미지와 같이 빨강, 파랑, 초록빛을 사용하여 각 빛을 겹쳐 보았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 삼원색

빨간빛과 초록빛을 섞으면 노란빛이 보이고, 빨간빛과 파란빛을 섞으면 보라색 빛을 볼 수 있다. 이런 원리와 마찬가지로 개나리가 만든 노란색 파장을 눈에서 받아들이면 동시다발적으로 빨강과 초록빛을 인식하는 원추세포가 활성화된다. 이 정보는 뇌에 전달되고 우리는 이를 노란색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렇듯 각 원추세포의 활성도에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색깔을 인식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우리가 사용하는 핸드폰 스크린, 모니터, TV에도 적용된다. 스크린은 3종류 원추세포 시스템을 RGB(Red, green, blue)로 도입하여 다양한 색을 제공한다.

그럼 인간 외에 다른 생명체들은 개나리를 봤을 때 노란색으로 인식할까? 아니면 우리가 생각치도 못한 어떤 다른 색상으로 인식할까?

▲ Bluebottle 나비

Blubottle이라고 불리는 나비는 15개의 원추세포를 갖고 있다. 각각 원추세포는 자외선(UV)를 감지할 수 있거나 보라색, 하늘색, 에메랄드색등을 인식할 수 있다. Bluebottle 나비는 원추세포와 더불어 파랑-초록 무지갯빛 날개를 이용하여 빛 인식을 한다. Bluebottle 나비의 원추세포가 15개나 되는 이유는 하늘에서 잽싸게 움직이는 다른 생명체를 인식하고, 숲속에 숨어있는 생명체를 재빠르게 파악하기 위함이다.

▲ 깡충거미

실질적으로 일부 동물이 인간보다 많은 원추세포를 갖고 있다. 곤충도 4개의 원추세포를 갖고 있다. 깡충거미는 총 8개 눈이 있다. 이 덕분에 사방에서 움직이는 사물을 인식할 수 있고, 생명체의 공격에도 발 빠르게 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8개 눈과 더불어 깡충거미는 빨강, 파랑, 초록빛을 감지하는 원추세포 외에 짧은 파장을 갖고 있어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자외선(UV)을 감지하는 원추세포도 갖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능력을 이용해 깡충거미는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으며 정확히 포획할 수 있다고 한다.

▲ 왼쪽은 인간이 보는 꽃, 오른쪽이 깡충거미가 보는 꽃

동물은 눈으로 색만 감지하는 것일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한국에 입국하는 모든 여행자는 열감지 기계를 지나가야 된다고 들었다. 혹시 신체에서 발산되는 열을 인식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생명체도 있을까?

비단구렁이는 다른 생명체가 발산하는 열인 적외선을 인식하는 원추세포와 빨강 파랑, 초록 빛을 인지하는 원추세포를 갖고 있다. 열감지 원추세포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내는 열을 멀리서도 인식하고 잽싸게 먹잇감을 포획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 왼쪽이 밤에 인간이 보는 쥐와 오른쪽이 뱀이 보는 쥐

인간은 어두운 밤엔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고 흑백으로 인식한다. 이는 원추세포가 어두운 빛에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생명체는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간상세포를 준비해두었다. 간상세포는 어두운 빛에 굉장히 민감하여, 어두워졌을 때 사물을 명암으로 구분하도록 도와준다. 야행성인 동물인 고양이와 올빼미는 인간에 비해 간상세포가 더 많다. 따라서 빛이 적은 밤에 오히려 사물을 더 정확히 판단한다.

▲ 위 사진이 인간이 보는 밤, 아래 사진이 고양이가 보는 밤

이렇듯 우리가 인식하는 색은 원추세포 그리고 간상세포에 의해 이루어진다. 동물은 인간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눈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잠시 나비, 비단구렁이, 올빼미가 되어 사물을 본다고 상상해보자.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색깔만이 절대적이 아니고 원추세표와 간상세포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색채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나비의 눈으로 본 꽃

그럼 시각능력에서 볼 때 인간이 덜 발달한 생명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잠시 나비와 비단구렁이의 시각능력을 가지고 숲속에 들어간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날아다니는 곤충, 먼지, 열을 내는 동물을 지속적으로 인지하게 될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생명체와 물체의 움직임에 사고가 좌우되고, 멍때리지도 못하고, 특정 생각에 집중하지도 못할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 고민, 사색, 고찰, 상상’을 한다. 그것은 외부 자극을 일정 부분 차단해야만 가능하다. 어쩌면 인간이 원추세포를  2~4개만 갖고 있는 것이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진화한 것은 아닐까?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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