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 정체는?

가사목 초입 집 주인에게 벽에 어떤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는지 수차례 문자를 넣었는데 그냥 알아서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기왕이면 생각할 거리가 담긴 그림이 좋겠지. 초등학교 시절에 배운 ‘의좋은 형제’를 그리자.

"한 마을에 형제가 살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벼낟가리를 보면서 형은 생각했다. '동생이 새살림을 차렸으니 쌀이 더 필요할 거야.' 형은 볏단을 가져가 동생 논 낟가리에 보탰다. '형님은 식구가 많으니 쌀이 더 필요할 거야.' 동생 역시 식구가 늘어난 형님을 위해 볏단을 형 낟가리에 보탰다. 다음날 그들은 자기들의 낟가리가 변함없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기며 다시 볏단을 형님에, 동생에게 보탰다. 아침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형제는 사흘째 되는 보름날, 각각 볏단을 지고 가다가 길에서 마주치고 나서야 연유를 알게 되었다. 형제는 부둥켜안고 고마움을 나누었다."

어떤 벽화를 그리고 싶은지 주민들에게 물었을 때 쟁기질 하는 소, 농악대 등의 의견이 나왔는데 그건 기회 있는 대로 그리기로 하고 우선 ‘의좋은 형제’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3월 초쯤 가사목 노인회관에 목적 없이 잠시 들렀던 나는 왕언니 세 분이 격렬하게 언성을 높이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다. 얼굴이 모두 붉으락푸르락 한 것이 저러다가 뇌혈관이라도 터져 중풍이 오면 어쩌나 싶어 급히 세 사람을 떼어놓았다. 싸움의 발단이 된 건 노인회장의 비민주적 운영 때문이었다.(장녹골의 노인회장은 작년에 교체되었고 무탈하게 운영되고 있다.)

면에서는 회관 청소비 명목으로 담당자에게 월 27만원을 지급해왔다고 한다. 가사목 노인회장은 이런 수입이 되는 일자리를 공개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아내에게 맡겼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분노했다. 

“땅은 내 땅인데 벌어먹기는 왜 당신이 벌어먹어?”

“당신이 뭔데 회관 일에 간섭해?”

이게 그날 싸움 줄거리였다. 현금 보기가 힘든 시골에서 월 27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다. 다른 마을에서는 청소는 돌아가며 하고 지불금은 민주적으로 의견 수렴해서 회관 점심 반찬값으로 쓰는 등 공동생활에 보태기도 한단다. 그간 노인회장의 가부장적이고 비민주적 운영방식에 대해 주민들 불만이 쌓였던 터라 이 문제가 분노를 촉발시켰다.

18년 전 문을 연 이래 가사목의 노인회관은 법적으로 등록을 하지 못했다. 땅 임자가 땅을 노인회에 팔지 않고 그냥 빌려주었고 건물은 십시일반 주민들이 모아 세웠기 때문에 사용에는 문제가 없어도 법적으로 등록을 할 수는 없었던 것. 싸움이 있은 지 며칠 후 땅 임자네 성년이 된 자식들은 ‘우리 땅에서 시끄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회관 앞에 바리케이트를 쳐 놓았다. 군청에 노인회관 철거신청을 해 놓았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사단이 나도 크게 난 것이다.

주민들은 노인회장 교체를 희망했다. 3월 28일 이장 주도하에 가사목 임시총회를 소집했다. 노인회장은 자기 임기가 7월 말이면 끝난다고 했다. 대체 노인회장 임기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고 어떤 절차로 이어져 왔는지 서로 모른 채로 지나왔던 가사목 주민들은 그렇다면 몇 달을 더 참고 임기가 끝나기 전인 7월 중에 다시 이장의 사회로 임시총회를 열어 노인회장을 선출하기로 했다. 후보는 65세 이상의 남녀불문, 귀촌 귀농 원주민 불문. 이 모든 사실은 서기 임은상씨가 회의록에 적어 두었다.

▲ 가사목 3월 임시총회 결정사항. 7월에 이장 주관하에 노인회장을 선출한다. 자격은 65세 이상 남녀, 귀촌, 귀농 토박이 불문... 이렇게 회의록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딴 소리들 하시면 아니되시옵니다!

아뿔싸! 그 사이 땅 주인 아들은 분노가 풀리지 않았는지 농기구 따위로 바리케이트를 쳤던 것을 치우고 상당한 금액을 들여 높은 울타리를 쳐 버렸다.

▲ 3월 임시총회 이후, 땅 임자 아들은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큰돈을 들여 높은 울타리를 세웠다.

총회를 열려면 사전에 주민들에게 고지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7월 초, 단체카톡방과 밴드에서 논의한 후 임시총회일정을 포함한 행복마을 프로그램일정을 프린터로 뽑아 양쪽 동네 회관 벽에 붙여 두었다.

▲ 밴드와 단톡방에 의견을 물어 12일 가사목 임시총회를 하기로 하고 공지문을 붙였다. 이걸 '외지에서 온 여자가 자기 맘대로 총회를 열고 남의 동네일을 쥐고 흔든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안 궁금하다 ^^)

그러자 묘한 소문이 돌았다. '한의원 원장이 마음대로 남의 동네 총회를 열고 노인회장을 갈아치우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 소리 전하는 사람에게는 3월 임시총회 회의록을 뽑아 눈앞에 보여주었다. “내가 총회를 여는 게 아니고 3월에 이장 주도하의 임시총회에서 결정한 것이다. 노인회장은 주민들이 뽑는 것이고 나는 투표권이 없다.”

카톡이나 밴드를 즐겨 하지 않는 이장은 3월 임시총회의 결정사항을 몇 달이 지났는데 어찌 기억하냐며 가사목 임시총회 직전 서울로 올라가버렸다. 다행히 하루 전 날 전차 회의록을 이장에게 가져가 따진 뒤 12일의 임시총회 사회권을 위임 받았다. 처음으로 이장에게 언성 높이고 대든 그 자리에서 이장은 가사목 노인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의원 원장에게 총회 사회권을 위임한다고 말했다. 가사목의 주민들은 벌써부터 노인회장의 교체 필요성을 하소연 해왔고 3월 이후 몇 달간 이 날을 고대해 오지 않았던가.  

드디어 7월 12일 임시총회일. 가사목 노인회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 12일 가사목 임시총회. 시작 전부터 잿빛 긴장감이 감돌았다.

불참하게 된 이장 대신 사회권을 위임받았다는 것을 알리며 내가 개회를 선언했다. 행복마을 총무 임은상씨가 서기를 맡고 3월의 회의록 결정문을 낭독했다.

"7월에 박이장의 주관 하에 민주적 절차를 통해 노인회장을 선출한다. 새로운 노인회장의 자격은 65세 이상 남녀 귀촌 귀농 토박이 불문한다!"(이 회의록이 없었다면 덤터기 쓸 뻔했다. 회의록 꼬박꼬박 챙깁시다!) 

3명이 노인회장 후보로 추천되었다. 불참 후보와 사양하는 후보를 제외하고 한 사람이 남았다. 자연스럽게 그가 박수를 받으며 차기 노인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부산에서 청소년시절을 보낸 뒤 오랫동안 미국에서 생활했고 귀국 후 청산에 왔다가 한 눈에 반해 귀촌을 결심했던 분이다.

민주적인 절차로 교통정리를 했을 뿐이지만 얼마 후 “외지에서 들어온 여자가 남의 동네 대표를 자기 마음대로 갈아치웠다.”는 이야기가 다시 들려왔다. 소문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짐작되는 바이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남의 동네라니? 이건 우리 동네다! 자기 마음대로 갈아치워? 천만에. 이전 임시총회 결정대로 회의가 열렸고 나는 그저 사회 보며 주민들 뜻을 모았을 뿐이다.

언제 왔다가 언제 갈지 모르는 묵은 권력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스스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주민들은 그것을 넘사벽으로 여긴 채 어디서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몰라 힘들어했다. 그러나 마을회관 앞에 높은 울타리가 세워져서야 행복마을로 갈 수는 없는 일. 회관 앞 바리케이트와 행복마을만들기 사업이 그 실마리를 풀어준 셈이다.

권력을 강탈당했다고 생각한다면 분노로 괴로울 수 있겠다. 그 때문에 또 다른 시끄러움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래지 않아 그 분노가 누그러지기를 희망한다.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어디 있으랴. 행복마을에서는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함께 갈 것이다. 그것을 믿어주시기 바랄 뿐이다.

행복마을 초기, 벽화를 그리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의좋은 형제’가 1순위로 내 마음에 떠올랐던 것은 봄부터 위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 그림은 동화책 그대로를 옮기지는 않을 작정이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7)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8)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9) 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생뚱맞은 파도타기?
12)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3)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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