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9) 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처음 받은 시멘트지정 후원금은 가사목에 다 써버리고 장녹골 쪽은 김정자님의 막내아들 박종민님 지정후원금으로 시멘트를 마련했다. 같은 분량 시멘트를 샀는데 막상 살펴보니 장녹골 쪽은 보수할 곳이 마을회관 앞 빈집 외엔 별로 없다. 저 집에서 나오는 하얀 하수관. 저것을 이용해 무얼 그릴 수 있을까?

▲ 마을회관 앞 빈 집. 재주가 많은 팔방미인 장녹골 노인회장님이 시멘트로 수리를 해 주셨다. 저 하얀 하수 파이프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 보자!

삼방리에는 이전에 언급한대로 두 개(차로 5분 거리의 장녹골과 가사목)의 마을이 있다. 이장은 한 명이지만 노인회장은 두 명. 회관도 두 개. 초기에 장녹골 쪽 어떤 주민은 가사목을 끼고 마을사업을 하면 1차, 2차는 몰라도 더 이상은 절대로 진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을 했다. 거리상으로 많이 떨어져 있어 이질감도 많은데 사업이 커지고 복잡해질수록 함께 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시간이 적으니 이질감이 느껴질 만도 하다. 처음에는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함께 가는 건 모험이지만 해야만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함께 시작했다가 중간에 제외시킨다는 건 빠진 쪽 입장에서는 크게 서운(분노)할 일이다.

귀농 귀촌한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몰라도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어머니, 아버지, 형, 누나, 동생... 서로서로 빠삭하게 알면서 수십 년을 지내왔다. 여름이면 윗옷 벗고 구호물자 담았던 자루를 잘라 만든 바지를 입고 개울 건너 같은 학교를 다녔다. 그들에겐 수십 년 간 쌓인 묵은 추억이 있다.

“어버이날 우리 마을에서 돈이 더 걷혔는데 그 돈을 왜 저 쪽 마을하고 함께 쓰냐?”

“왜 공금으로(또는 이쪽 마을 돈으로) 저쪽 필요한 물건을 사나?”

이건 얼핏 야무진 듯 보이지만 더 넓은 공간에서 더 자유로운 공동체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알뜰함이다. 마을 돈이 없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아야 한다며 초상난 집에 가서 50만원씩 받아오는 걸 관례처럼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슬픔이 가득하고 경황이 없는 집에 가서 적지 않은 돈을 세금처럼 받아 오는 게 어찌 마을을 위하는 길이 될 것인가.

유무상자(有無相資)는 동학의 핵심 사상의 하나로 있으나 없으나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지식이 있는 자는 지식으로, 힘이 있는 자는 힘으로, 재산이 있는 자는 재산으로 서로 돕는다는 협동정신을 일컫는다. 그래서 흉년이 들어도 역병이 휩쓸어도 동학도들은 얼굴에서 빛이 난다고 했단다. 70년 원수로 살았던 남북도 언젠가는 벽을 허물고 함께 살게 될 날도 있을 터, 미리미리 훈련이 필요한 우리들이다. 이런 걸 언제 찬찬히 설명한담?

옳거니,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저 하얀 하수도를 중심으로 엄마와 딸 천사의 이야기를 그려야겠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읽는 순간 나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그 이야기. 6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내 가슴 깊은 곳에 아프게 남아 있는 그 이야기.

[모녀가 살았습니다. 엄마는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 죽어 지옥에 떨어지고 딸은 착한 일을 많이 했는지 후에 죽어 천당에 갔습니다. 딸은 천당에서도 늘 슬퍼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이 이유를 묻자 딸은 지옥의 엄마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하나님은 큰 천사를 불러 딸의 엄마를 지옥에서 데려오라고 말했습니다. 큰 천사는 힘차게 지옥으로 날아가 엄마를 발견하고 천당으로 가자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천사의 발을 잡았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이를 보고 줄줄이 매달렸습니다. 많이 매달리면 천사가 힘들어져 자기도 떨어트릴까봐 엄마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발을 흔들어 사람들을 뿌리쳤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갈 때마다 이상하게도 큰 천사 날개에도 힘이 빠져나갔습니다. 결국 큰 천사는 엄마를 구하지 못하고 혼자 천당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리자. 그러나 다르게 그리자. 어차피 창작한 이야기, 또 창작하면 어떠랴. 삼방리 장녹골 딸 천사는 어머니에게 사람을 많이 구해 오라고 소리친다. 엄마는 재빨리 눈치를 채고 많은 사람을 그대로 매달은 채, 신이 나서 나팔 부는 큰 천사를 따라 천당으로 온다. 하나님과 대 천사는 야무지고 이기적인 마음보다 널럴하게 포용하고 더불어 함께 살려고 하는 마음을 더 좋아하신다. 혼자 빨리 가는 당신보다 함께 손잡고 멀리 가는 당신이 아름답다.

▲ 딸 천사는 엄마에게 많이 구해오시라 소리치고 눈치 빠른 엄마는...

코로나로 회관이 닫혀 있으니 옆의 팔각정에서 틈틈이 동양화 공부를 하시는 왕언니들 중에 똑순이 김정자 할머니에게 숙제를 내어주었다.

“사람들이 이 그림에 대해 물으면 할머니가 책임지고 설명을 해 주세요잉? 모녀가 살았는디 여차저차 저차여자... 그래서 다 구했다고. 삼방리 딸 천사는 다르다고요.”

“잉. 그란데 우리 교회 목사님은 한 번 지옥에 빠지마 절대로 다시 못 나온다카셨어.”

“삼방리서는 다르게 돌아간다니께여!”

또 다른 천사들이 벽화를 그리러 왔다. 청산 주민자치 프로그램의 하나인 한국화반의 박홍순 선생님과 백승옥님. 내가 겁도 없이 벽화 그릴 맘을 내게 된 것도 주민자치 프로그램에서 무료로 주 1회씩 그림을 배우느라 붓을 잡아 보았기 때문이다. 박샘에게는 능소화를 부탁드렸다. 능소화는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들여왔는데 양반 집에만 심을 수 있어 양반꽃이라고도 한단다. 해가 뜨거운 한 여름에도 조금도 풀죽지 않는 능소화. 양반들의 갑질에 맞섰던 동학혁명군이 즐길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벽 속의 동학혁명군이 즐길 수 있게 맞은 편 벽에 배치했다.

▲ 주민자치 프로그램 한국화반 선생님도 벽화천사로 등장하셨다. 지나가던 주민들도 이제는 자신감 있게 붓을 드시고...
▲ 한 여름 땡볕에도 조금도 기 죽지 않는 능소화. 양반만 즐길 수 있는 꽃이었다지만 삼방리 동학도들은 365일 보게 되었다.

연꽃 역시 마을을 환히 밝혀주는 고마운 꽃. 백샘과 서옥자샘이 땡볕을 등에 받으며 그려주셨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찌질하지 않게 멋지고 당당하게 살자고요.

▲ 폭염 속에서 구슬 땀을 흘리며 그림을 그려주신 한국화반 회원님들 감사합니다.
▲ 장녹골 회관 앞에도 어엿한 연꽃밭이 하나 생겼다. ^^

 

연재 순서

1) 새 이장이 들어서고 행복마을사업 시작하다,
2) 행복마을 만들기-청소부터 시작하고 나무를 심었다.
3) 마을 단체복으로 앞치마 만들고 행복마을잔치
4) 요가 수업과 벽화 그리기 밑 작업
5) 서울에서 내려온 한 명의 전문가와 자봉 학생들
6) 가사목을 덮은 어두운 분위기의 정체는?
7) 삼방리의 '의좋은 형제'는 다르다
8) 동학도들이 살아나고.
9) 삼방리의 '딸 천사'도 달라졌다.
10) 젖가슴을 드러낸 여인은?
11) 생뚱맞은 파도타기?
12) 개벽세상이 무어냐고?
13) (이어집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위원

 

고은광순 주주통신원  koeunks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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