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캐나다는 지난 3월 중순부터 4달 동안 대부분 공공기관과, 회사, 상점들의 출근을 금지했다. 우리 연구실은 6월부터 부분적 출근이 허용되었고, 7월이 지나고 나서야 정상 출근이 허용되었다. 회사는 아직 재택근무나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고 있다. 4개월 만에 연구실에 출근했을 때 다들 반가워하기보단 ‘코로나19가 아직 잡히지도 않았는데 벌써 출근?’ 걱정에 탐탁지 않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처음 몇 주는 같이 먹던 점심 식사도 따로 먹었고, 커피 타임도 가지지 않았다. 실험실은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8월이 되어서야 실험실은 예전 분위기로 돌아왔다. 실험실원들은 ‘코로나19’의 두려움을 이겨냈는지 점차 서로에게 관심을 보이고 대화를 하며 웃기 시작했다. 같이 점심도 먹고 커피타임도 가졌다. 그런데 실험실원들 행동이 전과 좀 달라졌다는 느낌이 왔다. 다들 덜 피곤해보였다. 쫓기는 모습도 덜했다. 오히려 행동과 대화에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실컷 쉬어서 그랬을까?

▲ 클라우디아와 나

어느 날씨 좋은 금요일, 함께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팅'과 '클라우디아'와 일을 일찍 끝내고 음식과 맥주를 사들고 근처 공원으로 피크닉을 갔다. 한여름답지 않게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도 솔솔 불고 분위기는 정말 끝내줬다. 우리는 신이 나서 음식을 먹으며 시원한 맥주를 탁~ 따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시원한 맥주 때문이었는지, 살랑거리는 바람과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 때문이었는지 실험실에선 하지 않았던 속 얘기를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유학생인 '팅'은 지난 4달 동안 실험실에 나오지 못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지난 4달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어. 강제로 실험을 멈추고 집에만 머무르게 되자 갑자기 시간이 너무 많아졌어. 그 시간에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더 불안했어. 논문을 쓰기 시작했는데 몇 개월 동안 밤낮없이 일해 만들었던 데이터들이 쓸모없어졌다는 걸 알고는 허무했어. 나중엔 우울하기까지 하더라고. 그동안 실험만 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잊고 살았던 것 같아. 내 주위 사람들한테 너무 무심하기도 했고. 그래서 삶을 서서히 바꾸기로 결심했어. 지금은 잠도 충분히 자고, 일하는 시간도 줄이고, 주말엔 공원도 가고, 다른 취미활동도 찾으려 해. 부모님께도 자주 안부 전화 드리고.. 캐나다에 있던 지난 3년간을 돌이켜보면 딱히 남는 기억이 없어. 매일 실험만 했거든. 그렇다고 실험이 지겨워진 건 아니야. 나는 아직도 연구할 때 가장 행복하지만 이젠 삶의 밸런스도 유지할 거야"

캐나다 학생인 '클라우디아'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 앞으론 밸런스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전엔 모든 에너지와 정신을 실험에 집중하다보니 집에 가서도 계속 일 생각만 났거든. 그러다 보니 수면에 영향을 줬고, 내 파트너한테도 부정적 영향을 줬던 거 같아. '핀’(푸들과 래브라도가 섞인 강아지)을 입양하면서 삶이 바뀌기 시작했어. 이제는 ‘핀’ 덕분에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30분 동안 핀과 산책하고 출근해. 그 시간이 평화롭고 나를 정말 즐겁게 해줘. 그리고 ‘핀’ 덕분에 일이 있어도 하던 일을 접고 바로 퇴근하기 시작했어. 그렇다고 연구에 대한 열정이 줄어 든 건 아니야. 난 아직도 연구를 좋아하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것에 감사해. 단지 연구와 일만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거지.”

두 친구들은 내가 만나본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똑똑하고, 강하고, 진취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박사과정 학생들이다. 둘 다 연구 장학금과 발표상 등을 휩쓸었고 연구결과도 우리 기관에서 탑텐안에 들 정도로 좋았다. 둘은 이 모든 걸 이루기 위해 많은 희생은 필요한 거고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잠시 멈췄던 지난 4개월간, 둘을 비롯해 나 또한 ‘행복’, ‘웰빙’, ‘인생 만족’ 이런 개념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 같다.

행복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삶을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Edx라는 웹사이트에선 미국 버클리대학 교수가 ‘The science of Happiness(행복의 과학)’이라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강의에선 행복은 어떤 큰 것, 물질적인 것이기 보단 소소한 것(microhappiness)이라고 매번 강조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10분 동안의 여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시간, 꽃에 물을 주고 꽃을 보는 시간, 친구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 등 잠시나마 우리를 여유롭고 편안하게 해주는 시간이 바로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하루하루 일과에 이런 소소한 시간들을 넣어주고 그 시간에 감사하는 것이 행복의 중요 요소라고 한다.

▲ 이른 아침 베란다에 와서 나를 깨우는 산새를 기다리는 작은 행복

물론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논문을 편찬했을 때, 장학금을 받았을 때, 돈으로 새로운 차를 사거나 집을 샀을 때 오는 행복감도 있다. 하지만 결국 ‘Hedonic adaptation(행복에 적응)’으로 인해 그 행복감은 익숙해지고, 순간적으로 행복했던 마음도 점차 옅어진다. 따라서 특정 물질을 쟁취하거나, 목적을 달성하면 행복한 삶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고 한다. 매일 소소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일과에 넣어주게 되면 그것이 건강하고, 창의적이며, 진취적인 삶을 사는 지름길이란다. 

행복은 놀랍게도 상대방을 도와주면서도 받을 수 있다. 오랜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이타심과 관용을 베푸는 활동이 뇌의 특정 영역을 활성화시키고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단순한 Hedonic(감각적인 행복) 뿐만 아니라 Eudaimonic (삶에 의미와 만족)도 타인을 도와줄 때 상승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연구에서 돈 20만원을 두 그룹에 지급했다. 한 그룹은 본인을 위해서만 20만원을 써야했고, 다른 그룹은 남을 위해서 써야 했다. 일주일이 지난 뒤 두 그룹의 행복지수를 측정했을 때 놀랍게도 남을 위해 돈을 쓴 그룹에서 행복지수와 삶의 만족도가 높았다. 이처럼 조건 없이 타인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우리는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만족감과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 실험실에는 레바논에서 온 박사과정 '마틴'과 포닥과정 '니빈'이 있다. 이 강의를 듣고 지난 8월 4일 레바논 베이루트 대형폭발사건으로 우울해하고 있는 레바논 친구를 위해 실험실에 케이크를 만들어 갔다. 다 같이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레바논 친구는 여러 차례 고맙다고 말했지만, 사실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과 같이 나누어 먹는 시간들이 나를 더 행복하게 했다.

사람은 본능으로 상대방 말투, 표정, 제스처를 통해 그 사람의 에너지와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Mirror Neuron(거울 뉴런)’을 이용해 상대방 감정을 느껴서 슬픔과 기쁨을 공유하기도 하고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한다. 따라서 마음이 통하는 상대방과 긍정적인 대화, 배려심, 관심이 깃든 대화를 하면 서로 간 행복은 상승한다. 마치 공명처럼 행복이 양방향으로 전달된다. 이를 ‘행복 공명 (Happiness resonance)’이라고 한다. 이처럼 상대방과 진실하게 연결될 때 우리는 행복과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팅'과 '클라우디아', 나 또한 연구를 사랑하며 앞으로 연구를 계속 하고 싶다. 하지만 연구 성취만으로는 인생에 만족감과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걸 지난 4개월간 집에 갇혀 있으며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실험실 분위기는 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지고 긴장감이 없어졌다. 실험실원들도 서로 더욱 신경 쓰고 배려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시간이 멈췄던 지난 4개월, 행복과 삶에 대한 우리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진 때문이 아닐까?

* '팅'은 < 몬트리올 이야기 2. 알에서 깨어나다> 글에서 소개했던 친구다. '클라우디아'는 <몬트리올 이야기 23. 문화를 나눈다는 것은>글에서 잠시 등장했던 친구다.   

 

편집 : 박효삼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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