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효림·혜연 ‘입학’ 축하하는 엄마의 글

 

유치원 입학한 작은 딸 조혜연(왼쪽)과 초등학교 입학한 큰 딸 조효림(오른쪽). 할아버지 할머니와 한강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에 함께 찍은 사진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대로 피어도, 몰래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사랑하는 두 딸! 초등학교 입학과 유치원 입학을 축하한다.

너희들 덕분에 엄마의 아침은 꽃길이야. 너희들과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등굣길에 붉은 철쭉과 여러 봄꽃이 피어 있잖아. 그 길을 걸을 때마다 너희들이 좋아하는 ‘모두 다 꽃이야’를 함께 부르면서 엄마는 때때로 울컥할 때가 있어.

하지만 인생길이 어디 꽃길만 있으랴. 엄마도 너희 둘을 낳고 산후우울증과 경제적인 어려움, 코로나19까지 몰아닥치면서 인생이 한꺼번에 고꾸라진 것만 같았어. 아빠 역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어려움에 마주해서 당황하고 힘겨워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지. 마냥 잘 나갈 것만 같던 일도 갑자기 수입이 끊기고 빚을 지게 되면서 점점 감당하기 힘든 상황까지 왔었어.

그때 엄마는 스스로 낙오자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이 힘겨운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 엄마에게는 없는 것 같아서 낙담 속에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지냈었지. 무엇보다 너희들의 맑은 눈망울이 엄마 때문에 슬픔으로 바뀌게 될까봐 너무 두려웠어.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신념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생존이 달린 어려움이 생기니까 한순간 무의미하게 느껴지더라. 그 어둠의 시기에 엄마를 붙들었던 건 신념도 신앙도 아닌 가족이었어.

우선, 매일 학교에 가고, 삼시 세끼 밥 먹고, 친구와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너희들 일상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게 제일 먼저라는 생각에 엄마는 용기를 냈어. 끊어져 버린 경력과 애매한 미국 대학 학력을 다 던져버리고 조건 따지지 말고 우선 일당이라도 벌자는 생각에 주말마다 물류센터에 갔어. 아빠는 엄마가 몸이 상할까 말렸지만 그래도 엄마는 뭐라도 해야 했어.

중국동포들과 함께 섞여 열심히 물건을 포장하는데 엄마가 일을 못 한다고 관리자에게 한 소리 듣곤 했어. 사실 머리 쓰는 일만 주로 했지. 엄마는 몸 쓰는 일은 잘하지 못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지. 서른 후반에 다시 사회초년생이 된 것만 같았어. 밤에 일이 끝나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는데 다음날 통장에 돈이 들어오니까 너희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줄 수 있게 되어 기쁘기만 하더라.

물류센터 이후로도 여러 일을 전전하면서 아빠의 격려와 지원 덕에 지금 직장으로 옮기기까지 엄마가 생각한 건 단 하나였어. 너희들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걸 가능하게 하는 일이라면 엄마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말하는 건가 봐. 너희들이 내 곁에 없었다면 엄마는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야.

세상이 알아주는 일을 하고 높은 지위와 연봉이 사람을 존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립해서 살아가고 지켜야 할 존재가 있다는 게 사람을 존엄하게 만든다는 걸 깨닫는 순간, 엄마는 거칠 게 없더라. 이 세상에서 너희 둘에게는 이 엄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 엄마가 삶을 열심히 붙들고 엄마 앞에 펼쳐진 길이 자갈밭이든, 가시밭길이든 앞으로 나아가게 했어.

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최근 집 근처 꽃밭에서 찍은 사진
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최근 집 근처 꽃밭에서 찍은 사진

아침마다 너희들과 함께 걷는 이 꽃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무럭무럭 자라나는 너희들을 계속 붙들 수는 없겠지. 그래서 이 소중한 순간을 함께 누리고, 허락되는 모든 순간에 너희와 함께 노래하려고 해. 너희가 좋아하는 노래처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몰래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라는 노래가 엄마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고 있다는 걸 아마 너희들은 모를 거야.

다시 한 번 효림이와 혜연이 입학을 축하하고, 앞으로도 너희 둘 인생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처음에 엄마는 환호와 응원을 보낼 거야. 그리고 너희가 인생에서 마주하게 될 힘든 시기에 너희가 불렀던 노래를, 엄마는 너희를 위해 불러주고 싶어. 인생과 사람에 대한 노래를.

 

모두 다 꽃이야

김봉곤 훈장과 청학동 국악 자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 원고를 기다립니다

<한겨레>는 1988년 5월15일 창간 때 돌반지를 팔아 아이 이름으로 주식을 모아준 주주와 독자들을 기억합니다. 어언 34년째를 맞아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저출생시대 새로운 생명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축하합니다’는 새 세상을 열어갈 주인공들에게 주는 선물이자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나 축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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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미경 부에디터 , 양성숙 편집위원

박형옥 주주통신원  hyungoa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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