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청꽁대(成功大) 어학원은 1년 4학기-봄, 여름, 가을, 겨울학기로 나누어서 가르칩니다. 봄학기에 입학하여 막 여름학기를 마쳤습니다. 벌써 6개월여가 지났습니다.

좌측부터 태국 라롱, 루마니아 다니, 미국 위링, 린즈통 선생님, 호주 꾸건, 미국 샤오메이,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리롱, 미국 웨이윈 아마도 어학원 최 고령자인 학생 김동호
좌측부터 태국 라롱, 루마니아 다니, 미국 위링, 린즈통 선생님, 호주 꾸건, 미국 샤오메이,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리롱, 미국 웨이윈 아마도 어학원 최 고령자인 학생 김동호

비자를 얻기 위한 방편으로 억지 춘향 노릇을 하고 있지만, 애써 강조하지 않아도 꽤 즐거운 일들이 많습니다. 그동안 난체했던 중국어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알게 되었고, 젊은 대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심지어 태극권을 가르치는 선생은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는 난생처음 듣는 평가를 하더군요.

한국에 대한 관심은 다들 상상 이상입니다. 일요일 회식에 무슨 음식을 먹을 지 물었더니 모두가 한국음식. 금발의 미래 미국 대통령도 물들어서 넷플릭스를 통해 케이 드라마 광 팬이 됨.
한국에 대한 관심은 다들 상상 이상입니다. 일요일 회식에 무슨 음식을 먹을 지 물었더니 모두가 한국음식. 금발의 미래 미국 대통령도 물들어서 넷플릭스를 통해 케이 드라마 광 팬이 됨.

수업 중에는 매주 주제를 주고 그 주에 새로 배운 단어와 문법을 이용해서 작문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저는 대만의 현대무용가 黃誌群에 대한 글을 써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황즈췬(黃誌群)이 인도 여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그걸 작품화해서 무대에 올렸는데, 그 구도의 과정에서 얻은 것 중 하나가 活在當下입니다.

活在當下는 불교 용어로 ‘나란 존재는 현재에 있다. 지금의 내가 나의 본 모습이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강남으로 갔던 제비도 때가 되면 다시 오고, 이파리를 떨군 버드나무도 때가 되면 다시 푸르게 되돌아오지만, 어린 시절 영원할 것만 같던 세월은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어제의 ‘나’가 돌아오지 않기에, 오늘의 ‘나’가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1초 전의 나는 내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1초 후의 나는 상상이지 영원히 존재하지도 않고요.

따라서 지금의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근심과 걱정을 선택할 것인가? 거리낌 없는 자유자재의 평안을 선택할 것인가?

인간의 번뇌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불안에서 온다고 합니다. 영원히 사라져버린 과거와 오지도 않을 미래가 현재의 내 발목을 붙들고 있습니다. 고해의 바다에서 허우적이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지요. 고개를 돌리면 바로 피안인데.

8월 26일 마지막 수업 시간에 사회 경험이 있는 호주 친구가 몇 주 전에 발표하고 잊고 있었던 活在當下를 언급하며 한 번 더 설명을 부탁하더군요. 이야기를 또 해주고, 행과 불행, 사랑과 미움, 귀천과 미추는 절대적이 아니라 나의 판단이고, 그 판단은 내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금의 나에게 집중하고 어디에서 살던 모두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지난 봄 학기에는 사실 많이 헤맸습니다. 운전은 잘하는데 면허시험장 코스에서 불합격당하는 경우와 같았습니다. 성조 표시하는 규칙을 몰라 시험 때마다 틀리고 왜 틀리는지도 몰랐고, 문장을 부르면 받아 써야 하는데, 앞에 몇 글자 쓰고 나면 문장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앞에 나가서 두서없이 말은 잘하는데, 내가 작성한 보고서를 발표하려면 한 문장도 외워지지 않았지요.

거기다 자주 인터넷 수업을 하였고, 선택과목 수업도 없이 한 선생만 담임으로 수업하였는데, 여름학기에는 다섯 명의 다른 선생님과 4과목 수업을 하였습니다. 들어오는 선생님마다 우리 반 수업이 가장 활기차다고 말합니다.

이번 학기 들어 선생님들과 교무처 직원들 사이에서 제가 많이 알려진 느낌이 듭니다. 여러 명이 신청한 선택과목에서도 가장 자주 불리는 이름이 똥하오(東浩)이다보니 마스크를 해서 실제 얼굴을 몰라도 제 이름을 부르는 친구도 있지요.

한 번은 나를 지명하기에 가르친 문법에 따라 답을 했더니, 선생님이 갑자기 연기자처럼 특유의 콧소리를 내며, “그래서 내가 東浩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언젠가는 바뀐 강의실을 찾아 계단을 내려가는데 낯선 분이 길을 알려주며 ‘金東浩지!’라며 아는 체합니다. 교무처에 들어가면 소속을 말 안 해도 다 알아봐 줍니다.

지난 학기에 시험점수는 신경을 안 써도 창피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은 했었지요. 이번 학기에는 그동안 배운 실력도 쌓이고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면서 모든 시험에서 90점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다수의 대학교 2, 3학년과 졸업반 학생들이 해당 대학교 장학금으로 수업을 듣기에 그들에겐 시험 성적이 매우 중요하더군요. 다들 열심히 공부합니다. 이번 여름 학기에는 무려 18개 반이 운영되었습니다. 그 중에 전체 반이 참가하여 사자성어의 성조를 맞추는 경연이 열렸습니다.

우승 상장과 부상으로 받은 점심
우승 상장과 부상으로 받은 점심

우리 반이 압도적인 점수로 우승을 했답니다. 저는 나서는 게 주제넘기도 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생각에 참여를 거절했는데, 대회를 앞두고 우승과 상관없이 함께 추억을 만들자는 동료들 말에 신청을 했습니다.

경연에 참가한 우리 반과 경연전 연습 장면
경연에 참가한 우리 반과 경연전 연습 장면

막상 연습해보니 제가 1성(平聲)과 2성(上聲) 구분을 못하겠어요. 내가 구분을 못하니 내 차례가 되어 발음하면 우리 동료들이 못 알아듣고, 그래서 무대에 올라가지는 않고 뒤에서 돕는 역할만 했습니다. 동료들은 그런 저를 코치라고 불렀지요. 나중에 우승하고 코치 덕분이라는 덕담까지 들었습니다.

3일에 걸친 경연 중, 둘쨋날! 경연을 마치고 우승 예감.  매년 우승 팀이 20점 대 후반. 우리 반은 40점 대를 넘겼다고 함. 응원 차 방문한 앞 줄 3분 선생님과 함께 기념 사진
3일에 걸친 경연 중, 둘쨋날! 경연을 마치고 우승 예감.  매년 우승 팀이 20점 대 후반. 우리 반은 40점 대를 넘겼다고 함. 응원 차 방문한 앞 줄 3분 선생님과 함께 기념 사진

이번 여름학기를 마치고 함께 했던 8명이 모두 각기 자기 길로 갑니다. 호주 친구는 부리스번에 있는 누나 집으로 갔다가 남미로 갈 거라고 말하고, 태국에서 온 친구는 박사과정 수업을 들어야 하고, 루마니아 친구와 10년 후 35살이 되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여성 정치 지망생은 타이베이 政治大學 석사과정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학생들은 각자 대학으로 돌아가 남은 대학 생활을 할 것입니다.

여름학기 마지막 수업 전 점심을 학교에서 제공.
여름학기 마지막 수업 전 점심을 학교에서 제공.

원래 기억력이 부실한 저는 일주일만 지나면 그들 이름도 다 잊어버리겠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부전공을 고민하는 어린 동료에게 ‘어떤 결정도 생각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훨씬 잘 될 테니깐 두려워하지 말라’는 덕담으로 이번 학기 마지막을 마쳤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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