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3대 아리랑은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이다. 그중에서 밀양아리랑은 ‘독립군 군가’로 애창되었다. 특히 1930년대 중국 만주 지역과 연해주 지역 항일독립투사들은 밀양아리랑을 ‘독립군 아리랑’으로 애창하였다. 어깨를 들썩이며 밀양아리랑을 흥겹게 부르면서 동지들 흥을 돋우었던 인물이 석정 윤세주다.

경상남도 밀양시 의열거리에 조성된 석정 윤세주 벽화(출처 : 하성환) 윤세주는 1919년 의열단 창단 멤버 가운데 19살로 가장 나이가 어렸다. 석정은 이육사의 절친으로 의열단 군관학교인 <조선혁명정치군사학교> 1기 동기생이다. 윤세주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정치위원으로 태항산 반소탕전(1942)에서 일본군과 교전 끝에 총상을 입고 전사한다. <조선의용대의 영혼>이자 정신적 지도자였다.
경상남도 밀양시 의열거리에 조성된 석정 윤세주 벽화(출처 : 하성환) 윤세주는 1919년 의열단 창단 멤버 가운데 19살로 가장 나이가 어렸다. 석정은 이육사의 절친으로 의열단 군관학교인 <조선혁명정치군사학교> 1기 동기생이다. 윤세주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정치위원으로 태항산 반소탕전(1942)에서 일본군과 교전 끝에 총상을 입고 전사한다. <조선의용대의 영혼>이자 정신적 지도자였다.

선전 선동에 능했고 말솜씨가 뛰어났던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밀양아리랑이 일자일음으로 구성돼 따라부르기 쉬웠다. 1940년대에 이르면 한국광복군 군가로 공식 인정돼 ‘광복군 아리랑’으로 애창되었다. 안동과 함께 독립운동의 메카인 밀양 출신 독립지사들이 중국 관내와 만주 지역에 많았던 탓도 있으리라!

마찬가지로 노동가요 ‘불나비’는 80-90년대 노동자들 집회 현장에서 애창되었다. 80년대 청계피복노조 투쟁 당시에도 ‘불나비’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애창되었다. 특히 87년 6월 항쟁을 지나 88년 이후 ‘불나비’는 가장 애창되는 민중의 노래였다. ‘불나비’를 전국화시킨 민중가수 최도은 님에 따르면 ‘불나비’가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집회 현장에서 애창되던 시절을 88년 이후와 노동법 개악 저지 투쟁 총파업 시기인 96년~97년, 그리고 2000년 정도까지였다고 했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집회 현장에서도 글쓴이는 민중가요 ‘불나비’를 자주 들었다. 그만큼 ‘불나비’가 노동자들 삶과 의식 저변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불나비>
노동가요 <불나비>를 전국화시킨 민중가수 최도은 님과 함께(출처 : 하성환)

특히 80년대 말 ~ 90년대 이후 ‘불나비’는 빠른 템포에다 힘차고 웅혼한 곡으로 변모했다. 집회 현장에서 내빈소개-투쟁사-연대사-결의문 채택으로 이어지는 밋밋한 현장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꿔준 곡이 바로 ‘불나비’였다. 특히 민중가수 최도은 님이 부르는 ‘불나비’는 집회에 참석한 뭇사람들의 가슴을 마구 흔들며 젊은 영혼을 사로잡았다. 집회 분위기가 한순간 동적으로 변했다. 참석한 모든 이들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고 투쟁 의지를 한껏 고무시켜 주었다. 그만큼 ‘불나비’는 90년대를 지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 버금가는 ‘민중의 노래’로 자리 잡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비장감 속에 처연하면서도 투쟁 의지를 마음속에 다지는 음악 효과를 자아냈다면 노동가요 ‘불나비’는 노동자들 가슴을 마구 뛰게 만들었고 투쟁에 대한 열정으로 가슴을 충만하게 해주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다음 대목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세상을 변혁시키는 주체로 우뚝 서게 만드는 알 수 없는 묘한 힘을 느끼게 했다.

“오! 자유여~ 오! 기쁨이여~ 오! 평등이여~ 오! 평화여~ 내 마음은 곧 터져버릴 것 같은 활화산이여! 뛰는 맥박도 뜨거운 피도 모두 터져버릴 것 같애!“

음악과 율동이 갖는 힘이자 다른 가수에게서 볼 수 없는 최도은 님 특유의 힘차면서도 풍부한 성량 때문이리라! 아니, 민중가수 최도은 님이 꿈꾸는 사회변혁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리라!

윤석열 정권 들어선 지 10개월째 접어드는 오늘날 모든 게 역주행하는 느낌이다. 정치권은 소통과 대화가 실종돼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노총을 대하는 윤석열 정권은 대화와 타협은커녕 정권 출범 이후 시종일관 적대적이다. 지난해 6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 파업 당시, 권력자 행안부 장관(이상민)의 입에서 ‘경찰특공대 투입’을 스스럼없이 들먹였다. 그리고 11월~12월 화물연대 2차 파업 당시 윤석열 정권은 “북핵과 같은 위협”으로 몰아치며 때려잡았다.

지속된 경기 침체 속에서 에너지 파동과 함께 치솟는 물가고에 서민들 삶이 갈수록 힘겨운 모습이다. 남북관계는 단절된 걸 넘어서서 언제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대통령의 언어는 불안하다. 외교는 저자세 굴욕을 자처하고 이명박처럼 원전 수출을 자랑거리로 삼는 형국이다. 사민주의 복지국가인 북유럽 에너지 정책을 본받기보단 원전 수출로 국익을 홍보하는 퇴행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북유럽 학교 일상인 ‘학교=행복발전소’는커녕 우리 교육은 ‘지성’을 마비시키며 입시경쟁으로 여전히 내몰린 상태다.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불의에 저항하며 공동체에 참여할 줄 아는 ‘시민성’을 기르는 교육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이다. 윤석열 정권이 지난해 등장하고 두 달 뒤 교육부는 ‘민주시민교육과’를 전격 폐지했다. 그러자 보수(?)교육감을 자처하며 당선된 광역시도 교육감들은 ‘민주시민교육과’ 행정부서를 하나둘 없애고 있다. 심지어 단위 학교인 혁신학교조차 혁신교육 주무 부서인 ‘교육혁신부’마저 사라지는 추세다.

저녁이 있는 삶을 정부가 나서서 적극 보장해 주어야 함에도 21세기 노동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기업의 요구대로 주당 60시간도 넘는 노동시간 연장을 당연시하고 산업재해가 빈발함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약화시키려 한다. 기후 위기 시대! 정부가 나서서 기후 정의를 호소하며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강화하고 실천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그런데 오히려 윤석열 정권은 앞장서서 신재생에너지 의무 비율을 보란 듯이 축소시키고 있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 원전 가동률과 원전 에너지 비율은 상승일로에 있는 추세다.

이런 퇴행의 시대! 변혁을 향한 의지와 열정을 담은 노래 ‘불나비’는 일제강점기 독립군들이 애창했던 ‘밀양아리랑’만큼 시민 대중의 가슴마다 열정으로 살아남아 사회변혁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돋우리라 확신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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