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든 교육’을 ‘민주시민교육’으로 개혁해야 나라가 산다

1993년 교육부에서 펴낸 『민주시민교육 장학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기술돼 있다.

“만일 교육은 잘 되었는데 ‘민주시민교육’은 잘못되었다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교육의 개념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민주 시민자질의 함양에 있다. 모든 것에 성공하고 이 점에 실패했다면 그것은 교육 전체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엔 교육의 목적을 인격을 갖춘 자주적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음을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교육의 목적에 실패하고 있다. 대부분 시험형 인간을 붕어빵 찍어내듯이 양산하는 현실에 갇혀버렸다.

성적이 우수하든 아니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커녕 공동체를 파괴하는 괴물 엘리트를 잠재적으로 양산해 왔다. 수백 채 집을 소유한 전세 사기범들이 존재하는 희한한 나라! 50억 퇴직금이 무죄로 풀려나도록 어설프게 기소하고 그를 근거로 무죄를 선고하는 웃기는 나라! 주가조작 혐의가 다분하지만 권력 핵심이라는 이유로 수사와 처벌을 피해 가는 수상한 나라!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우리나라다. 법을 만드는 자나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그리고 법을 악용하여 사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괴물처럼 느껴질 뿐이다.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오히려 좌절과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나라! 성폭력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나라! 그런 사회는 정상 국가가 아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을 위해  국회 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협 부모님 1인 시위(출처 : 하성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을 위해 국회 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유가협 부모님 1인 시위(출처 : 하성환)

수십 년 국가폭력이 자행될 때 불의한 권력이 시키는 대로 고문과 폭력에 가담한 자들은 공무원 연금으로 안정된 노후를 즐기는 나라! 반면에,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국회 앞 시위를 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한 마디로 폭력을 가한 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폭력 피해자들은 평생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회가 돼버렸다.

서울광장에 세운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 옆 천막엔 추모 공간 설치를 촉구하는 구호가 적혀 있다(출처 : 하성환)
서울광장에 세운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 옆 천막엔 추모 공간 설치를 촉구하는 구호가 적혀 있다(출처 : 하성환)

모두 학교 교육을 통해 ‘권력에 순치된 신민’(臣民)만 양산했을 뿐,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못한 결과다. 사람을 존중할 줄 모르고 약자에 연민을 느끼고 연대할 줄도 모른다. 부당한 지시나 불의에 저항할 줄 모르고 권력이 시키는 대로 공직(?)을 수행한다.

서울광장에 세운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출처 : 하성환)
서울광장에 세운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출처 : 하성환)

최근 이태원 참사 가족들에게 시민분향소 설치 관련 2,900만 원 변상금 운운한 서울시 고위직 관료의 행태가 대표 사례다.  

<장애인 이동권>을 촉구하는 전교조 홍보물(출처 : 전교조 홍보국 제공)
<장애인 이동권>을 촉구하는 전교조 홍보물(출처 : 전교조 홍보국 제공)

장애인 이동권을 요구하며 지하철 탑승 시위로 투쟁하는 장애인 단체에 대해 남의 일처럼 외면하거나 거침없이 비난하는 시민들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존중과 공감, 그리고 협력과 연대하는 마음은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길러지는데 우리네 교육이 ‘시험 능력주의’에 매몰된 결과다. 우리 사회는 ‘능력=공정’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짓눌려 각자도생하는 극한 경쟁사회로 변해버렸다.

2022년 6월 13일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이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인상을 촉구하며 학내 집회를 벌였을 때 투쟁을 지지하며 연대하는 연세대 학생이 발언하는 모습(2022년 7월 1일자 장나래 한겨레 신문 기자,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2022년 6월 13일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이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인상을 촉구하며 학내 집회를 벌였을 때 투쟁을 지지하며 연대하는 연세대 학생이 발언하는 모습(2022년 7월 1일자 장나래 한겨레 신문 기자,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제공)

지난 해 6월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이 샤워실 설치 등 노동환경 개선과 임금 인상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을 때 연세대 일부 학생들은 청소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했다. 반면에, 극히 일부 학생들은 소음을 이유로 수업권 침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던 것이 서글픈 우리네 현실이다.

젠더 교육, 성평등 교육을 반대하는 극우세력이 교육부가 주최한 <2022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 공청회장에 난입한 모습(출처 : 김원태 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 제공)
젠더 교육, 성평등 교육을 반대하는 극우세력이 교육부가 주최한 <2022 개정 사회과 교육과정> 공청회장에 난입한 모습(출처 : 김원태 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 제공)

그 결과 비판적 지성이 실종되고 극단적 개인주의가 팽배해 차별과 배제, 혐오 사회로 변해 갔다. 이제 우리 교육은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 위기를 교육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대로 교육의 목적인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충실해야 한다. 다시 말해 교육개혁은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독일은 일찌감치 1970년대 초 사민당 빌리브란트 총리가 내건 ‘민주주의를 감행하자’는 슬로건 아래 ‘민주시민교육’을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으로 규정했다.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사회현상 이면에 작동하는 권력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비판적 사고를 갖도록 가르쳐왔다.

독일 <정치교육>의 준거가 된 「보이텔스바흐 합의」(1976)에 따라 논쟁성 강한 현안 주제를 날 것 그대로 학교 교실로 끌어 들여와 토론 수업으로 학생들 스스로 자기 생각을 정립해 나가도록 지도한다. 교사는 「독일 연방 정치교육원」이 제시한 객관적 자료를 제시할 뿐, 아이들에게 설명하거나 교화 또는 특정 가치를 주입하려 하지 않는다.

프랑스 또한 1985년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이 ‘학생을 시민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과정 개혁’을 주창해 ‘민주시민교육’ 교육과정을 1985년부터 초중학교 의무교육으로 도입했다. 1999년엔 고등학교까지 필수교육과정으로 지정해 콩도르세(Condorcet)가 강조한 ‘비판적 시민’과 ’깨어있는 시민’을 길러낸다.

2008년엔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시민교육과 도덕교육을 통합했다. 그리고 고교 입학시험과 대학 입학시험 과목으로 출제해 ‘민주시민교육’의 교과 정체성과 학업성취 수준을 측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노동조합이 노동자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가르친다. 프랑스 중학생들은 단체교섭을 학교 교실 수업에서 배운다. 사용자와 협상하는 방법과 협상 기술, 그리고 언론을 대하는 태도와 연설문 작성법을 학습한다.

북서유럽 프랑스, 독일, 스웨덴, 핀란드에선 국가가 나서서 학생들의 학교 밖 정치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지원한다. 독일은 2009년 16개 주 정부 교육문화부 장관회의에서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민주주의 교육의 강화 결의’(일명 ‘2009 결의’)를 선언했다. ‘2009 결의’의 핵심 내용이 학생들에게 「시 학생의회」나 「주 학생의회」 등 ‘학교 밖 정치활동 참여를 적극 권장’하는 내용이다.

스웨덴은 국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하는 「학습지도요령」에서 프랑스처럼 ‘차별과 불관용에 맞서 당당히 싸울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나아가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어린 초등학생들이 교과서에서 학습주제로 다루면서 직접 배우는 내용들이다.

민주주의 지수와 국가 투명성, 정부 신뢰도, 국민 행복도, 삶의 만족도, 제3세계 기부문화에서 세계 최상위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스웨덴, 핀란드는 15살에 정당에 가입할 수 있다. 기후 위기 시대인 만큼 녹색당은 13살이면 부모 동의하에 가입할 수 있다.

18살에 시의원이 돼 시 의정활동을 펼친다. 22살에 국회의원이 돼 국정을 논한다. 2018년 스웨덴 국회 앞에서 피켓시위를 주도한 15살 기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나오고 2019년 핀란드에서 34살 최연소 총리 산나 마린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2008 미국발 금융위기가 2010년 그리스를 강타했고 2011년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에스토니아를 비롯해 유럽 전역을 뒤흔들면서 유로존에 불만을 갖는 정치 세력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2013년 「독일 대안」 당의 등장이 특히 그러했다.

2022년은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이 총선에서 89석을 획득해 일약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스웨덴 또한 극우 정당 「스웨덴 민주당」이 2022년 총선에서 73석을 획득해 제2당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핀란드 극우 정당 「핀란드인」 당도 2023년 4월 총선에서 46석을 차지해 2019년 총선에 이어 제2당을 유지했다. 이탈리아조차 신나치주의 극우 정당 「이탈리아 형제들」 당이 2022년 총선에서 승리해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로 등극하는 기괴한 장면을 연출했다. 2010년대 이후 유럽 국가들조차 극우 정치 세력이 크게 준동한 결과다.

이를 감지한 북서유럽 국가들은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정책을 단행했다. 독일은 2005년부터 「독일 연방 정치교육원」이 주관해 오던 ‘정치교육의 날’(Aktionstage Politische Bildung) 행사를 2015년부터 「독일정치교육협회」까지 참여해 총 18개 기관이 ‘정치교육의 날’ 행사를 주도하며 시민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초중고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교과 명칭을 2015년도부터 「도덕 시민교육」으로 모두 통일시켰다. 그리고 2018년 ‘민주시민교육’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의 목표를 <타인 존중하기>와 <공화국 가치 습득하고 공유하기>, 그리고 <시민문화 구성하기>로 개정해 시민의 도덕성과 정체성을 특히 강화했다. 스웨덴은 기존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던 「사회」과 교과 명칭을 2018년 「시민성」(Civics) 교과로 명칭을 변경해 ‘민주시민교육’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는 촛불의 힘으로 2018년 1월 교육부 직제에 「인성체육예술과」를 폐지하고 처음으로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했다. 우리도 극우세력의 준동이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0년을 전후해 일베의 등장과 혐오와 차별 문화 확산, 그리고 태극기 부대의 등장이 그러했다.

특히 2014년 공개적으로 「서북청년단」을 재건한 사건은 큰 충격을 주었다. 올해 4·3 추모 기념식 행사에서 「서북청년단」이 행사를 방해한 사건은 더욱 노골화한 느낌이다. 4·3 학살 당시 잔혹하기로 악명을 떨쳤던 「서북청년단」이 제주도에 직접 가서 국가 기념행사를 방해한 사건은 국가 권위와 공권력에 도전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학살 피해 가족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윤석열 정권은 2022년 9월 「민주시민교육과」를 전격 폐지하고 박근혜 정권 시절 「인성체육예술교육과」로 다시 되돌려 버렸다. 4년 9개월만인 벌어진 일이다.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학교 현장에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갑자기 실종된 느낌이다. 그에 맞장구치며 경기도 교육청 역시 지난해 9월 「민주시민교육과」를 폐지하고 「미래인성교육과」로 명칭을 변경했다. 진보교육감을 가장 먼저 탄생시킨 공간이 경기도이고 ‘민주시민교육’을 담아내는 그릇인 <혁신학교>를 가장 먼저 실천하며 앞서간 경기도 교육이 13년 만에 180도 역주행한 꼴이다.

더욱 기막힌 일은 올해 울산시 의회가 <민주시민교육 조례> 폐지안을 지난 5월 1일 20(찬성):1(반대)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민주시민교육 조례>를 전격 폐지했다는 사실이다. <민주시민교육 조례>는 2016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2018년 서울시 의회를 비롯해 대구, 경북, 대전을 제외한 진보교육감이 존재했던 14개 시도 광역자치단체로 확산하였다.

그런데 울산시가 14개 시도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민주시민교육 조례>를 시의회에서 전격 폐지했다. 울산시 의회가 <민주시민교육 조례>를 제정한 지 2년 4개월만에 발생한 황당한 사건이다. <국민의 힘> 출신 시의원 20명이 찬성하고 <더불어민주당> 출신 시의원 1명이 반대하는 참으로 기괴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2022년 11월 <민주시민교육>을 반대하는 한국교총과 국민의 힘이 개최한 학술세미나 포스터(출처 : 김원태 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 제공)
2022년 11월 <민주시민교육>을 반대하는 한국교총과 국민의 힘이 개최한 학술세미나 포스터(출처 : 김원태 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 제공)

진보교육감 노옥희 선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딛고 남편 천창수 선생이 다시 울산 교육감으로 당선되었음에도 울산시 의회를 장악한 <국민의 힘>이 저지른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이는 한국 사회 최대 교원 단체인 <한국 교총>이 <국민의 힘>과 합작해 만들어 낸 사건으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매우 잘못된 처사다.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의 표현대로 “민주주의자 없이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극우 정치 세력의 급부상은 민주주의 위기의 또 다른 징후다. 오늘날 북서유럽 국가들에서 ‘민주시민교육’으로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추세는 그런 위기 현상에 맞서는 것으로 전 세계 교육개혁의 거대한 흐름이다. 'OECD 교육 2030 보고서'에서도 강조한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 변혁적 역량을 길러 세계 시민 의식을 드높이려는 요구와도 전면 배치되는 어처구니없는 처사다. 대한민국 ‘민주시민교육’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우리만 거꾸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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