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위주의 교육행정은 21세기 국가 행정폭력

‘민주시민교육’과 직접 관련 있는 사회과와 도덕(윤리)과, 그리고 국어과와 역사과를 중심으로 각 교과에서 ‘민주시민교육’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교육 성과는 현실적으로 매우 미약하다. 무엇보다 각 교과 내용 속에 ‘민주시민교육’ 내용 요소가 어느 정도 녹아 있어도 학생들은 여전히 수동적이고 비주체적이다.

교육부 정책연구보고서(정문성 외, 2018)에 따르면 실제로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현장에선 80% 가까이 ‘’학생 자치 영역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86.48%가 ‘민주시민교육’을 ‘준법 교육’ 내지 ‘질서 교육’ 정도로 이해한다.주1) 권위주의 교육행정과 경쟁주의 학교문화가 여전한 현실에서 ‘민주시민교육’ 전담 부서가 학교 현장에 없는 게 우리 교육이 처한 현실이다.

김원태(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 천희완(민주시민교육연구소장)이 중심이 되어 경기도 교육청에서 2019년 개정판으로 펴낸 고등학교 인정도서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책 표지(사진 출처 : 하성환) 2019년 9월 현재  <민주시민> 교과서를 채택한 중등학교는 경기도가 5%, 서울시가 0.85%로 두 곳뿐이었다. 이후 혁신교육과 함께 민주시민교육이 가장 앞서 갔던 경기도 교육청은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조례를 최초로 제정했고 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를 먼저 설치했으며 교과서 개발과 민주시민교육 관련 교육행정 인원 배정을 가장 많이 늘렸다. 그 결과 경기도 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은 서울시 교육청, 충남교육청, 전북교육청, 광주교육청에서 <더불어 민주시민> 교과서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김원태(학교시민교육연구소장), 천희완(민주시민교육연구소장)이 중심이 되어 경기도 교육청에서 2019년 개정판으로 펴낸 고등학교 인정도서 민주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책 표지(사진 출처 : 하성환) 2019년 9월 현재  <민주시민> 교과서를 채택한 중등학교는 경기도가 5%, 서울시가 0.85%로 두 곳뿐이었다. 이후 혁신교육과 함께 민주시민교육이 가장 앞서 갔던 경기도 교육청은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조례를 최초로 제정했고 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를 먼저 설치했으며 교과서 개발과 민주시민교육 관련 교육행정 인원 배정을 가장 많이 늘렸다. 그 결과 경기도 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은 서울시 교육청, 충남교육청, 전북교육청, 광주교육청에서 <더불어 민주시민> 교과서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담 부서뿐만 아니라 ‘민주시민교육’의 물적 기반인 ①교육과정 ②교과서, 그리고 ③교과 ④수업시수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교육이 처한 부끄러운 민낯이다. 그렇다 보니 학교 교육에서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논의와 고민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 일부 교사들은 ‘민주시민교육’을 인성교육이나 안전교육, 폭력 예방 교육, 통일교육, 독도 교육처럼 ‘범교과 학습 주제’의 하나로 생각하거나 형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종종 목격한다.

다시 말해 또 하나의 행정 잡무로 받아들이며 불편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한 마디로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다.주2) ‘민주시민교육’을 입법 활동을 통해 제도화하는 것에도 회의적인 시각마저 존재한다. 교육 운동의 핵심 동력 전교조도 이와 별반 차이가 없다. ‘민주시민교육’을 필수 의무 교과로 편성하고 한국형 바칼로레아(KB) 논술시험으로 평가하는 의제에 운동단체로서 별다른 관심과 열정을 보여주질 않는다.

교사 정치기본권 촉구 교사 선언 전교조 기자회견(2022년 5월 25일)(출처 :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홍보국 제공)
교사 정치기본권 촉구 교사 선언 전교조 기자회견(2022년 5월 25일)(출처 :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홍보국 제공)

‘민주시민교육’을 의미 있게 전개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와 학생의 정치기본권 획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부문에선 전교조가 어느 정도 노력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에게 정치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고선 ‘민주시민교육’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이 ‘정치적 천민’ 수준에서 하루빨리 해방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아무리 좋은 ‘민주시민교육’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학교 교과목으로 개설해도 여전히 핵심 문제는 남기 때문이다.

‘민주시민’ 교과를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한 하드웨어 정비 차원에서 법정 수업일수를 줄이고 교사를 행정업무로부터 온전히 해방해야 한다. 우리나라 법정 수업일수는 190일을 넘어 미국(180일), 일본(175일), 프랑스(175-180일)보다 많다.주3)

게다가 과도한 행정업무와 잡무에 파묻혀 일상을 보내는 현장 교사들은 상당히 지쳐 있고 피로감 또한 매우 높은 게 현실이다. 법정 수업일수는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제45조(수업일수)에 명기돼 있다. 의지만 있다면 어느 정부든 스스로 법정 수업일수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경기도 혁신학교 소명여중처럼 교육 행정사를 4명으로 증원하거나 행정업무 전담 부서를 별도 인력으로 채용한다면 교사들은 교육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다. 교육의 본질은 자주성에 있다. 교사와 학생이 자주성을 발휘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를 체험할 수 있는 교육 공간으로 학교가 변화할 수 있다. 그러할 때 교육의 목적인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 있고 교사도 가르치는 기쁨과 보람을 간직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부는 ‘민주시민교육’을 학교 현장에 조속히 안착시킬 수 있는 법 제도와 학교 환경, 그리고 행·재정적 조건을 마련하려는 열정을 보여야 한다. 하루 4시간 교실 수업으로 숨 돌릴 틈이 없는 분주한 현실에서 ‘민주시민교육’을 하라고 지시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짐이 되어 현장 교사들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추구하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홍보 포스터(사진 출처 : 하성환)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는 40년 넘은 낡은 일자형 학생 통제형 학교 건물을 학생활동 중심으로 리모델링하여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학생주도형 활동 교육공간으로 개축한 학교를 가리킨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추구하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홍보 포스터(사진 출처 : 하성환)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는 40년 넘은 낡은 일자형 학생 통제형 학교 건물을 학생활동 중심으로 리모델링하여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학생주도형 활동 교육공간으로 개축한 학교를 가리킨다.

고등학교의 경우, 7교시 마치는 시간이 오후 4시, 바로 퇴근 시간이다. 학생들과 오후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정 수업일수를 감축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민주시민교육’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교육환경을 정비했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교육부의 확고한 정책 의지, 그리고 수평적인 학교 생태계로 변혁하려는 열정과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목마른 시절이다.

‘민주시민’ 교과목을 공통 필수과목으로 편성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현행 한국 사회처럼 교사의 정치기본권이 천민 수준에 머문 암울한 현실에선 좋은 결실을 맺기 어렵다. OECD 가입 38개 국가 가운데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①‘민주시민교육’ 교육과정을 만들어 내고 ②의무 필수 교과목으로 배정하되 한국형 바칼로레아(KB) 평가 체제를 수립해 프랑스처럼 입시 과목화해야 한다. 그리고 앎과 삶이 일치하도록 ③학교 생태계를 수평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활동 이외에 교사와 학생이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거나 학교 밖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 ④교사와 학생의 최소한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 네 가지 기둥을 확고히 세워야 대한민국 학교 사회에서 ‘민주시민교육’을 구현할 수 있다.

생각건대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민주 학교’는 교사가 교육의 본질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 잡무로부터 온전히 해방된 학교다. 그리고 ‘민주시민’ 교과를 필수 의무 교육과정으로 규정해 교과 정체성을 제대로 학습했는지 KB 논술형 시험으로 검증하는 학교다.

나아가 학생들의 앎과 삶이 일치하도록 학교 생태계를 동등한 인격적 관계로 변환해 학교 공동체를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교육 공간으로 재구성한 학교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걸 뒷받침하기 위해 교사와 학생에게 정당 가입을 비롯해 최소한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는 학교다.

교사와 학생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전교조 국회앞 집중행동(2018년 4월 24일)기자회견 장면(출처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홍보국 제공)
교사와 학생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전교조 국회앞 집중행동(2018년 4월 24일)기자회견 장면(출처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홍보국 제공)

교육의 ‘정치 중립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억압하는 것은 국가가 자행하는 21세기 행정폭력이다. 100년 넘게 지속된 권위주의 교육행정에서 이젠 벗어나 교사와 학생의 시민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민주주의 교육행정으로 거듭나야 한다.

주1) 정문성 외(2018). 『학교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교육과정 개선 방안 연구』. 교육부 정책연구보고서. 56쪽

2) 이상철 외(2019). 『초중등학교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방향과 과제』. 한국교육개발원. 115-140쪽.

3) 백경선 외(2013). 『교육과정 편제 및 수업시수에 대한 국제 비교 연구』. 교육과정개발원. 191쪽.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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