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페르귄트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필명 김 자현)
마을 언덕 위에는 주일이면 아이들에게
단팥빵 건네던 최후 보루 같은 교회가 있었다
새벽종 울리고 나면 똥지게를
물지게처럼 지고 다니던
가난한 시절의 아비가 죽은 똥밭에서 겨울을 난 시금치
새파랗게 웃는 길 따라
바다레체프스카야 소녀가 기도를 읊으며
골목을 돌아다니곤 했지
한 집 걸러 두 집 자고 새면
사금파리처럼 꽂히는 삶의 애환들로 귀가 헐어
빈촌은 늘 아우성이지만
마마자국처럼 매듭투성이 뜨개옷을 입고도
활기찬 철부지들의 마을
딸랑거리던 방울소리 대신
언제부턴가
박도변의 엘리제를 위하여 피아노 소리가
귓속으로 꿀물처럼 흘러들어
이고 지고 나오는 쓰레기 차 앞에서 용케도 클라식에 입문했다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똥장군의 아들과 친구이던 소녀에게도
공평하게 내리는 건 달빛이었다
그 겨울이 지나도록 빌려간 콘사이스도 돌려받지 못하고
봄은 오고 또오고 그 여름은 가고
기다리던 오빠들은 소식이 없었다
물고문과 바리케이트 건너 뛰며
사과탄에 콜록이던 시대의 뒷골목에서
삼청대학 교육과에 들어간 숱한 어미의 자식들
농부의 잔등을 일으키던
햇살을 받으며 신작로에는 아가씨가 된 소녀의 또옥똑-
포도를 울리던 뾰족한 구둣발 소리
그 어미가 죽고,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또 겨울이 와도
솔베이지를 부르던 소녀가 백발이 되어도
그녀의 사랑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 바다레체프스카야 - 클라식 소품 '소녀의 기도 작곡자'
박도변 -베토벤의 우리말 표기
솔베이지 송- 노르웨이의 대표 작곡가 그리그의 <페르귄트 조곡> 중에서
평생을 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대명사!
헨릭 입셉의 희곡 <페르귄트 Peer Gynt >를 위해 작곡된 조곡!
*. 사랑하는 연인 솔베이지를 두고 고향을 떠나 유랑과 방황을 거듭하는 페르귄트
청춘을 완전히 소진하고 백발이 되어 돌아와 솔베이지의 무릎에서 눈을 감는다.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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