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결혼 전에 사귀었던 여자가 있었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도시에 취직하면서 연락이 여의치 않았다고. 당시는 전화사용도 쉽지 않을 때였고, 만나기로 했던 시간과 장소가 엇갈리면서 헤어지게 되었답니다.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여 적극적이지 못했던 아쉬움과 미안함이 남아있었답니다.

후에 현재의 부인과는 어머니가 찬성하자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어머니가 원한다면 결혼해주지 하는 반감이 깔린 결혼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정신이상 증세가 있었는데 현재 요양원에 있습니다.

▲ 대만은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날(母親節)입니다. 2014년 모친절 伍 先生 가족과 함께

그렇게 헤어졌던 여자 친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만약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면 자기도 한때의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간직했을 거랍니다. 하지만 무책임하고 무능한 남편을 만난 옛 여자 친구는 1남 1녀를 낳고 가정경제를 책임지며 불행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좀 떨어졌지만 같은 타이난에 살며 초등학교 부근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더랍니다.

伍 先生이 부인에게 말(제안? 선포?)했답니다. 자기는 가족을 속이지 않으며 광명정대하게,

“현재의 가정은 끝까지 책임진다. 다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옛 여자 친구와 만날 것이다.” 그것이 집안에서 부인의 언성이 높아졌던 이유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했던 첫 마디가 “당신이 한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모르느냐?” 그리고는,

남자들이야 돈이나 명예 성공 등을 추구하며 결혼이 삶의 일부일 수도 있지만, 여자들은 자신의 부모와 가정을 떠나 오로지 한 남자만 바라보고 100% 자신의 인생을 건다. 지금 아들이 둘 있는데, 나중에 병원에 누워있어 봐라. 누가 대소변 받아내겠냐? 마지막까지 당신 옆에 있을 사람은 아들들도 아니고 여자 친구도 아니고 부인뿐이다. (한국 연속극 수십 년 단골 스토리)

정 여자 친구가 마음에 걸리면 부인 모르게 도와줘라. 그리고 한국에 거의 매달 가니깐 여자 친구랑 동행해라. 내가 방 잡아주겠다. 그것이 부인에 대한 예의다. 등등...

뒷자리에 앉은 변호사 부부가 중국말을 알아들었으면 낯 뜨거워 못할 이야기였지요.

伍 先生은 주변 친척이나 친구 누구 말도 안 듣는 고집불통(한국 극우 세력에 절대 안 뒤지는 대만 극우)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예 거의 말을 안 섞는 편입니다. 집안 친척들도 유일하게 김동호 말만 듣는다고 저를 보면 말하곤 했지요.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伍 先生은 한국에 혼자 왔고 옛 여자 친구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대만에 갔더니 부인의 태도가 예전보다 더 호의적이고, 안면이 있는 부인의 친척들 모두 눈에 띄게 더 환영해줬습니다. 제가 대만에 다녀간 이후 伍 先生은 생각을 바꿨고 두 사람의 만남은 없었습니다.

▲ 2016년 山西省 五臺山 관광 중. 둘이서 찍으라면 언제나 저를 불러 이런 포즈가 되는 이유.

10여 년이 또 흐르고, 제가 중국 심천에서 사업할 때 伍 先生이 저를 찾아와 다시 옛날 여자 친구를 만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여자 친구와 함께 있으면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소중하다고 합니다.

저 스스로 남의 말 할 처지가 아닌데 제가 주제넘지는 않았는지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부인에게는 배신이지만 그 이후 심천에 올 때 여자 친구와 몇 번 제집에 왔습니다.

여자 친구의 딸이 결혼하면 각자 이혼하고 합치는 걸로 말하다가, 아들까지 결혼시킨 후로 연기를 하더군요.

각자 이혼하고 함께 살 집을 미리 샀는데, 입금한 영수증이 부인에게 발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인이 일부 부동산을 넘기면 이혼 도장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넘기기를 반복하였고, 아버지까지 며느리 편을 들면서 상속을 공동명의로 하였으며, 나중에 아들도 엄마 편이 되었습니다. 재산이 거의 다 넘어오자 부인은 태도를 바꿔 내가 어떤 년 좋은 일 시키냐며 죽어도 이혼은 안 하겠다고 버텼지요.

당시 제가 그 집에 가면 부인이 나를 붙들고, 옛날 여자를 또다시 만나는 거 아느냐고 이야기를 꺼내면 밥 먹다가도 화장실 가는 척 그 자리를 모면하고는 했지요.

요사이는 부인이 제게 그럽니다. “金 先生! 伍 先生 옛날 여자 친구에게 가라고 해. 안 말려!” 그럼 전 그럽니다. 이 집안에서 제일 불쌍한 게 伍 先生이라고. 주변 모두가 다 부인 편이지 伍 先生 편 누가 있느냐고. 그리고 결혼 전에 만났던 여자 어려워서 좀 도와준 걸 뭐 그러냐고 그러지요. 그럼 부인이 나도 결혼 전에 만났던 남자 만나도 되냐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이젠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으로 두 아들 부부와 손주 손녀 대가족이 한 집에서 잘살고 있습니다.

▲ 올해 모친절에도 저를 불러 산지족 마을인 나마샤에서 지인들과 1박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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