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뉴욕타임스 기사에 한국의 수능에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기자는 수능에 대해 설명하며 한국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많은 사교육을 받으며 이 날을 위해 준비한다고 했다. 이러한 교육열은 한국전쟁 이후 교육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티켓'으로 보면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이로 인한 과도한 교육 비용이 현재 한국의 저조한 출산율의 원인이라고도 설명했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한국의 10살에서 29살 사이의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그 원인의 큰 부분이 시험에 의한 스트레스라고 밝혔다.

2020년12월4일 뉴욕타임스 기사 The College-Entrance Exam Is 9 Hours Long. Covid-19 Made It Harder.
2020년12월4일 뉴욕타임스 기사 The College-Entrance Exam Is 9 Hours Long. Covid-19 Made It Harder.

아이와의 전쟁이 시작되다

미국에 온 지 아직 2년이 안되었지만, 나는 미국의 교육에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한국에서 사교육을 많이 시키며 선행교육을 하던 엄마도 아니었다. 반대로 나는 인지교육을 위한 과도한 사교육과 선행교육을 오히려 반대하던 엄마다.

숲 유치원을 다니던 아이는 초등학교에 가서 한글을 배웠고, 3학년이 되어 공교육에서 영어 알파벳을 접했다. 그렇다고 내가 선행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그동안 선행을 하고 싶은 욕망을 참아야 했고, 아이 또한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었을뿐더러 다행히(?) 재능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아이는 미국에 왔을 때 수학을 너무 잘해서 수업이 지루해져 생길 문제도 없었고, 영어를 너무 잘해 미국인들이 놀랄 일도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나에게도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의 교육이 성이 안 차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게 했는데, 여기 선생님들은 4학년 학생이 구구단을 몰라도 강제로 외우게 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학교를 안 가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한 학기는 종이를 나눠주고 엄마가 공부를 봐주게 한 후 숙제 검사만 했고, 9월부터 시작된 4학년 새 학기는 일주일에 네 번 2시간씩 줌수업을 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각각의 주마다 룰은 다르다. 위스콘신주에서도 온라인 수업만 하는 카운티, 대면 수업도 하는 카운티, 둘 다 하는 카운티로 나뉜다.  그렇지만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다 보니, 수업 시간에 음악을 듣든 춤을 추든 강력히 규제하지 않는다. (어디까지 존중해야 그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지켜나갈 수 있는 건지,  과연 이러한 자율성 존중이 창의성을 낳기는 하는지 궁금하다.)

한국어 맞춤법은 엉망이고 영어 스펠링 맞추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선행은 아니더라도 자기 학년 진도는 따라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EBS 문제집 몇 권을 주문했다. 그렇게 아이와 일주일에 두 번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는 자기는 왜 여기 아이들과 다르게 공부를 해야 하냐고 화를 내기 시작했고, 아무리 설명해도 통하지 않는 아이와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이와 전쟁을 시작하며 내 속의  또다른 나와도 싸우기 시작했다.

나1: 적어도 모국어 기본적인 맞춤법은 제대로 쓰고 자기 학년 진도는 따라가야 하지 않겠어?

나2: '네이버 맞춤법'에 가면 한국어 맞춤법 다 고쳐주고, 'Grammaly'에 가면 영어도 고쳐주는데 굳이 그걸로 싸워야겠어? 미래에는 더 좋은 AI가 나와서 어떤 언어 가리지 않고 다 고쳐줄걸.

나1: 그래도 맞춤법은 기본이야. 그리고 수학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학문이라고.

나2: 미적분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써본 적이 없어. 그걸 왜 알아야 하는데? 그냥 더하기 빼기 정도만 알면 돼. 기껏해야 평균과 확률이 무엇인지 배워두면 도움이 조금 될까 말까 할 정도지. 사칙연산만 알면 돼.

나1: 지금 사칙연산 시키는데 하기 싫다고 하는 거거든? 선행교육은 바라지도 않는다니까?

나2: 한국아이들 수학 능력은 세계 1,2위를 달리는데 수학 싫어하는 애들도 세계에서 제일 많을걸? 스트레스로 인한 청소년 자살률이 저렇게 높은데, 왜 스트레스 받으면서 공부를 시켜? 공부는 재미있게 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효율도 높아지고.

나1: 그러다 평생 안하면 어떡해.

나2: 자기 인생이야. 공부를 평생 했다 쳐. 교수 되라고? 대기업 들어가서 죽어라 일하면? 의사 되면 아픈 사람만 보면서 살아야 하고, 판검사 되면 나쁜 놈들 보며 살아야 하는데. 뭐를 시키고 싶든 그건 네 욕심이야. 자기가 능력 되는 거 그냥 하면 돼. 행복하고 바른 아이로 잘 자라는 게 중요해.

나1: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 기본을 만들어 준다는 거 아니야?

나2: 나중에 봐봐. 그래봤자 국가의 아들 만들어 주는 거야. 공부 안 하고 행복하게 큰 애는 엄마 옆에서 효도하고,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다 이민 가서 손자손녀 보기도 힘들다잖아.
 
내 마음속에서 이렇게 토론이 벌어지고 있을 때, 나는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스포츠 교육을 엿볼 수 있었다.

미국의 다양한 스포츠 교육의 기회

지금은 코로나 상황이라 스포츠 수업이 많이 없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은 시즌별로 농구, 축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야구 수업 등이 나이별로 개설된다. 한국의 경우 초등학교 저학년 외에 체육수업을 따로 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볼 수 있다 하더라도 동네에 나이별로 들어갈 수 있는 반이 나눠져 있는 종목별 체육 학원이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수요가 많아야 가능한 일인데 한국의 운동별 체육 학원에 대한 수요는 굳이 자료를 찾아보지 않아도 그렇게 세분화될 정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대치동 영어학원과 수학학원은 수준별 혹은 나이에 따라 학원이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미국의 동네 체육교육은 한국 대치동 영수학원에 비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체육을 배우려는 아이들도 많을뿐더러 체육 코치 대부분이 아이 아빠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즐기는 모든 아빠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의 코치진으로 합류한다. 그 아빠 또한 어렸을 때 같은 방식으로 운동했고, 이러한 체육교육의 선순환은 계속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미국의 체육 교육은 한국의 수학 선행 교육에 비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해 보이기까지 하다. 아이스하키팀의 경우 동네팀과 여행팀으로 나뉘는데 여행팀은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주에 가서 게임을 한다. 고등학교 때 청주 살던 친구가 주말마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대치동 수학학원에 다닌다고 했을 때 매우 놀란 적이 있는데, 여기는 비행기를 타고 다른 주를 가거나 캐나다에 가서 게임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열 못지않은 스포츠열인데, 한 가지 다른 점은 아이들이 이를 즐긴다는 점이다.

아이스하키를 하는 내 아이는 게임이 아침 일찍 잡혀 새벽 6시 집에서 출발해야 해도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준비를 한다. 연습이 없는 날은 실망하고, 친구들과 놀 때도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하키 게임을 하며 논다. 다들 운동을 좋아하다 보니 시즌별로 운동을 달리하며 논다. 똑같은 체육 교육을 받았던 아빠들도 아이와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며 재미있게 놀아준다.

자기는 고3 때 12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했다고 아이에게 자랑을 하는 우리 집 한국 아빠는 아무 스포츠도 할 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 있는 공부라도 봐주면 안 되냐고 부탁하니,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고 말한다.

한국 청소년들에게 부족한 것

이번 여름 코로나를 무릅쓰고 한국에 갔을 때, 나는 2주 격리 기간 동안 집 앞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 아무 데도 못 가고 집에 갇혀있다보니 집 밖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매우 익숙하게 볼 수 있던 것은 아이들이 모여 다 같이 핸드폰을 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물론 미국이라고 그런 문제가 없을까마는, 나는 한국 초등학생의 경우 문제가 훨씬 심각하리라 생각한다.

2020년  여름 한국 자가격리 중 집 앞 :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 핸드폰만 보는 모습
2020년  여름 한국 자가격리 중 집 앞 :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 핸드폰만 보는 모습

제대로 된 체육교육은 전무하고 아파트에 살다 보니 녹지가 부족한 한국의 어린이들이 밖에 나가 뛰어놀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많은 아이들이 공부에 대한 보상으로 '스크린 타임'을 원하고 있고, 공부를 하면 그만큼의 '스크린 타임'을 보상해 주니 ‘앉아있기 더하기 앉아있기’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2020년  여름 한국 자가격리 중 집 앞 :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핸드폰을 보며 걸어가는 모습
2020년  여름 한국 자가격리 중 집 앞 :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핸드폰을 보며 걸어가는 모습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 책을 보면 ‘우리가 아이들을 실내 공간에 가두다 보니 그들이 갈 수 있는 변화의 공간은 게임 같은 사이버공간밖에 없는 것’이라고 나온다. 이런 상황이니 세계 정상의 게이머가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또한, 이 책에서는 학교가 고층일 때 마당과의 접근성이 100m 정도라면 저층일 경우 마당과의 접근성이 10m 정도라며 외부 공간이 없는 아이들의 생활에 자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혁신의 아이콘 애플 뿐 아니라 많은 기업의 CEO가 탄생한 차고를 보여주며, 한국에도 이러한 천재를 키우는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사실 이러한 개인적 여유 공간을 늘리는 것은 도시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다양한 체육교육과 시설을 늘리는 것은 어느 정도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운동을 접해본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 때 같은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자란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스포츠를 가르쳐주고 공유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한 체육 교육의 선순환을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아이들의 심적 여유공간과 정신건강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내가 꿈꾸는 교육 : 체육 교육의 강화와 스크린타임의 규제

무엇이 옳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지만, 내가 바라는 교육은 과도하지 않고 경쟁적이지 않지만 약간은 강제적이고 선생님의 권위가 살아있는 한국의 공교육(나는 미국보다는 한국의 공교육을 신뢰한다.)과 미국의 다양한 체육교육이 합쳐진 형태다. 물론 체육교육이 과도한 입시 사교육으로 이어지면 안될 것이다. 지금도 소위 '루트'를 아는 엄마들은 입시를 위한 체육 사교육을 과하게 시키고 있고, 이런 소수의 과도한 체육 사교육이 선순환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 나라 엄마들의 열정으로 봤을 때, 입시를 위한 과도한 다수의 체육 사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몇년안에 올림픽 메달순위 1위로 올라서는 것은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순환은 선순환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

그리고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 및 핸드폰을 하는데 쓰는 스크린타임은 마약의 한 종류로 다뤄 강력하게 규제되길 바란다. 이 글을 보는 어느 누구도 자신이 스크린 타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본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늘어난 만큼 아이들은 전자기기에 접할 기회가 많아졌고, 더 영악하고 교묘하게 엄마의 눈을 피해 유튜브와 게임을 한다. 어른도 제어하기 힘든 전자기기 사용은 적어도 유아 청소년기 시절이라도 강력하게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이미 충분한 인지교육의 기회를 갖고 있는 한국의 경우 스포츠 교육의 강화와 더불어 청소년 대상 스크린 타임의 강력한 규제는 우리 아이들의 신체 건강과 더불어 정신 건강 또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와 별개로 '언제까지  아이를 기다려줘야하는지, 어디까지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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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허익배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위원

안지애 객원편집위원  phoenic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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