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 43년생, 유족 오원웅 님의 부친 고 오연근 님의 사연 (필명 김자현)

 

유족 오원웅 님의 조모와 어머니 , 그리고 둘째와 막내  숙부 (가족들에게도 고인의 사진은 전혀 없다 한다) 
유족 오원웅 님의 조모와 어머니 , 그리고 둘째와 막내  숙부 (가족들에게도 고인의 사진은 전혀 없다 한다) 

 

좌가 무엇이여 앉을 좌 아녀??

앞산에 산불만 나지 않았던들
앞산이 민둥산이 되지만 않았던들
묘목을 만들 일만 없었던들
솔방울 채취하러 가지만 않았던들
빳빳한 솔잎 가시에 안구가 다치지만 않았던들
병원을 찾아 읍내로 가지만 않았던들
서남물 쪽 대로를 놔두고
후미진 땅고개재로 왜 들어섰을까?
죄기 있다문 자갈밭을 갈아엎어 비단 거치 만든 죄

내 고향은 상사면 오곡리
병원도 약국도 문을 연 곳은 없어 헛다방 치고 돌아오는 길
용수동 길로 가지만 않았던들
육시랄 놈덜에게 다짜고짜 붙들려
땅고개재로 끌려갔더니
숨 돌릴 새도 없이 내게 총알을 박더구나
내 죄가 무엇인지 아들아, 넌 아느냐?
죄기 있다문 자갈밭을 갈아엎어 비단거치 만든 죄

내 새끼 내 형제 입에 밥 들어가는 거
그것만치 좋은 거 세상에  읎써
발바닥 타들어 가는 가뭄에도 자갈밭을 일구었지
한 평 두 평 늘어나는 내 터, 내 이름의 전답
그것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습디여!
그란디 뭔 사유로 내 머리에 총알을 박어
죄가 있다문 자갈밭을 갈아엎어 비단 거치 만든 죄

 

땅고개 재는 으스스 춥고 무섭더구나
널브러진 시신 위에 갈가마귀 퍼득이고 밤이면
원혼들의 우는 소리 귀청 찢어져
영혼이 생육신 육탈할 때까지 날 찾지 못 한다문 어쩌나
갈가마귀 산짐승에 뜯어 먹히문 어쩌나
사흘 지나 몸에서 냄새나고 진물 흐르기 시작할 때
일가 형님이 지게를 지고 왔더구나 애비야!
우리 집 보이는 순천 상사면 서당 골 야트막에 묻어다오


그란디 내가 무식하다마는 좌가 뭐시여 앉을 좌 아녀?
보도연맹이 길바닥에 즐비하니 까는 자갈인겨?
죄가 있다문 자갈밭을 갈아엎어 비단 거치 만든 죄!

 

      고 오연근 님의 후손들
      고 오연근 님의 후손들

 

희생자- 유족으로 1943년생 장남,? 오원웅 님의 부친 고 오연근 님.

여순 때 돌아가신 고 오연근 님은 읍에서는 20리쯤 떨어진 지금은 순천이라 불리는 전남 승주 군 상사면 오곡리 664번지가 고향이시다. 4형제 중 장남으로 1908년 5월 8일생이시다. 사시던 곳 앞산이 산불로 인해 민둥산이 된 바람에 마을은 녹화사업이 한창일 때 여순사건이 터졌다. 세상이 뒤숭숭하지만 마을 분들은 묘목을 만들기 위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열심히 솔방울을 채취했다. 고 오연근 님도 가족들과 함께 선영(문중산 도투반)에 올라 솔방울을 채취하던 중 빳빳한 솔잎에 찔려 눈을 다치셨다.

10월 23일 이후였지만 읍내로 병원을 찾아갔으나 난리 통이라 문을 연 병원은 없었다. 그날 약을 사러 갔던 같은 일가 오계환 님과 동행했으나 약국도 문을 연 곳이 없어 두 분이 헛걸음하고 오시는 중 불심검문을 당하신다. 순천 읍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오곡리를 가려면 길이 두 갈래였다. 서남물 쪽 길은 대로였으나 진압군의 눈을 피하려고 좁고 후미진 용수동, 땅 고개재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를 짐작한 토벌대가 그곳에 이미 초소를 짓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시각에 잡힌 사람이 5명이었으나 바보 흉내를 내던 2명은 풀려나고, 고 오연근 님과 고 오계환 님, 같은 일가분 두 분을 포함한 3분이 즉결로 용수동 땅고개 재에서 총살당하신다. 그 시간 운 좋게 풀려났던 두 사람과 마침 현장을 목격한 장꾼들에 의해 가족들은 사흘이 지나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일가 형님이 지게에 져다 주어서 서당 골 야산에 묻어 드렸다. 음력 9월 스무날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고 한다.  

*. 무고하게 공권력에 희생 당하신 고 오연근 님과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쓰라린 세월을 살아내셨을 오원웅 님을 비롯한 유족들께 마음 깊이 안타까움을 전하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승원 주주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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