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남여현 님의 부친 남기대 님의 사연 / 필명 김자현

유족 남여현 님의  부친 고 남기대님의 젊은 모습
유족 남여현 님의  부친 고 남기대 님의 젊은 모습

 

나는 민족주의자이었노라



9월 28일 여현이 생일날 아침!

경찰 3명이 찾아왔다

조사할것있다 소리에 튀었다옆집당장을넘었다

나는쌍암국교육상선수

조계산위로 시퍼런하늘흔들렸다

출렁거리는황금논으로 총알이튈 때

나는 지그재그로 뛰었다여현이 얼굴 떠올랐다

연지곤지 초례청 새신부장경림이 순간 지나갔다

아버지 어머니, 어찌합니까, 할아버지 저 좀 살려주세요

마을사람들

같이뛰는발자국소리 승주를뒤흔들었다

산빛을 머금은 장어가 튀어 오르던 5월의 아침

찬란하게 눈앞을스쳤다어지러웠다

봄이면 살구꽃복사꽃 뒤덮힌내상마을

부락과부락들 다가왔다가는 휙-사라졌다

첫아이를 낳던 아내가뇌리를스치고지나갔다

평생의필름이 살같이머리에서영사되었다

그리고 나는 붙들렸다



쌍암 지서에서 한 달 못 되게 고문에 시달렸다

11월 20일

황금물결이던 논이 그루터기만 남았구나

포승줄에 묶여

쌍암 지서에서 500미터, 도살장으로 향하는 황소처럼

처절하게 울며 질질 끌려갈 때

여기는 의령 남씨 집성촌

종손 하나를 못 살린단 말요

어머니 아버지 조부 삼촌들 연도에 나와 있는 그 숱한 마을 사람들

당신들이 눈 똑바로 뜨고 구경만 하고 있던 것을

총살 당하러 가는 종손을

색색거리고 숨을 쉬며 보고만 있던 것을, 서동재 지나 승주군

대표 당산나무 똑똑히 봤으리라

 


승주군 대표 민족주의자를 이들이 어떻게 했는지

무자비한 공권력의 하수인들

명민한 사람, 정의로운 끓는 피, 마을의 능력자들 모조리

씨를 말리고 있는 것 낱낱이 기록하라



승주의 과부촌을 아시는가

아름다운 섬

제주 인민을 도륙하고 여수와 순천에 상륙한 살육자들

당산나무 너의 나이테에 낱낱이 기록하라

온갖 새소리로 시작되는 승주의 푸른 새벽과

침도 말라 목을 태우던 보릿고개

소작농들 피 마르는 노동요를 기록하던 나무야!

우리는 철벅거리며

모래무지와 체게사리 잡던 날의 동심이었네

오늘 생목숨의 비명이 하늘의 시계와 청계를 어떻게 난타했는지

1948년, 너의 연대기에 낱낱이 기록하라

내 나이 겨우 24살, 번성할 민족의 영광을 압살하는구나!

나는 남기대, 민족주의자이었노라

빵! 빵! 빵 나의 비명이 하늘의 눈을 찔렀다.

고 남기대 님의 부인이신 고 장경림 여사
고 남기대 님의 부인이신 고 장경림 여사

 

*. 희생자- 여순항쟁 서울 유족회 상임 고문으로 계신 남여현 님의 부친으로 고 남기대 님이시다. 당시 나이 24세로 부인은 고 장경림 여사이시다. 고향은 승주군 쌍암면 구강리 341-1,이고 의령 남씨 집성촌에 살던 5남매의 장남으로 농사가 많은 부농이었다. 쌍암 국교 졸업 후 상급학교는 못 가고 조부에게 배운 한학이 상당한 경지에 이른 매우 명민하고 뛰어난 인재셨다고 한다.
어려운 사람들과 마을 대소사에 솔선수범하며 문맹 퇴치를 위해 애쓰는 의로운 청년이었다고 한다. 유족이신 아들 남여현 님 생일날 아침, 경찰 3명이 와서 조사할 것이 있다는 소리에 옆집 담을 넘으며 일단 달아나십니다만 얼마 가지 못하여 잡혀서 쌍암 지서로 일단 끌려가셨다.

한 달여 조사를 끝내고 11월 20일경 자신이 살던 마을에 포승에 묶여 나가자 남씨들 피붙이는 물론 승주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질질 울며 끌려가는 것이었다.
"종손 좀 살려달라."고 연도에 늘어선 마을 사람들을 향해 처절하게 울면서 끌려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당시 5살이던 아들 남여현 님이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다. 그리고 서동 재서 희생당하셨다. 

고 남기대 님의 꽃상여
고 남기대 님의 꽃상여

 

*. 얼마나 생생한 증언이신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옥죄어 온다. 어떻게 그를 눈을 뜨고 보고 있었을까. 어머니요 아버지요 할아버지, 형제자매가! 삼촌은 육촌은 그렇다 치고~~그 꽃다운 나이를, 그 시퍼런 청춘을, 하늘도 죽고 신도 죽은 날! 우리 남은 자는 모두 죄인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이 시는 도주하면서 희생자의 심리를 표현하느라 기존 맞춤법을 따르지 않았다.  

편집  : 김미경 편집장

 

 

김승원 주주  heajoe@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관련기사 전체보기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