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문학사의 밀봉된 페이지, 『청년 임화』

시인 임화(본명 임인식)를 언급할 때 보통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의 시인, 남과 북에서 모두 버림받고 미제 스파이로 처형된 비운의 혁명가를 떠올린다. 해방공간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문예비평가 김동석은 잡지 『상아탑』을 통해 임화를 ‘병든 지식인’으로 혹평하기도 했다.

현대 문학비평가들 또한 혹평하기는 마찬가지다. 카프를 “거대한 사이비 조직체”로 폄훼한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카프에 대해 “단 한 편의 우수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심지어 어느 저명한 문학비평가는 임화를 ‘일본 군국주의 찬양자’로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이는 분단 질서가 낳은 왜곡되고 은폐된 결과다. 분단 시대 문학이나 문학비평은 반쪽짜리 문학, 반쪽짜리 문학비평일 수밖에 없다. 국문학자 김용직은 『임화문학연구』(1991)에서 “친일의 분명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어느 모로 보나 미제 간첩일 수는 없다”고 비평했다.

늘샘 김상천의 역작, <청년 임화> 책 표지(출처 : 김상천, 사실과 가치, 글쓴이가 다시 찍은 사진임)이 책에서 저자는 임화를 <이식문학론>을 주창한 문학사가로, <현실음>을 강조한 언어사상가로, 그리고 <문학의 논리>를 쓴 문예비평가로, 나아가 단편서사시 전통을 살린 <쟁의서사시>를 쓴 시인으로 조망하고 있다.
늘샘 김상천의 역작, <청년 임화> 책 표지(출처 : 김상천, 사실과 가치, 글쓴이가 다시 찍은 사진임)이 책에서 저자는 임화를 <이식문학론>을 주창한 문학사가로, <현실음>을 강조한 언어사상가로, 그리고 <문학의 논리>를 쓴 문예비평가로, 나아가 단편서사시 전통을 살린 <쟁의서사시>를 쓴 시인으로 조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작 임화는 어떤 인물일까? 늘샘 김상천이 쓴 『청년 임화』는 한국 문학사의 밀봉된 페이지를 하나씩 벗겨내며 임화의 실체를 역사 사실적으로 논구했다. 임화는 제국주의 수탈에 맞서 조선 민중이 처한 가혹한 현실과 저항을 「네거리의 순이」(1929), 「우리 오빠와 화로」(1929),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1929), 「양말 속의 편지」(1930) 등 단편 서사시 형태로 형상화한 탁월한 혁명 시인이다. 문예 비평가 늘샘 김상천은 이를 ‘쟁의(爭議) 서사’라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용어를 구사하며 맛깔스럽게 분석한다.

‘쟁의 서사’의 탄생이라! 이는 모름지기 1930년을 전후한 ‘혁명적 노조 운동’과 관련이 깊다. 20대 청년 임화가 마르크스의 『임노동과 자본』을 비롯해 『자본론』을 섭렵한 독서의 결과였다. 이후 단편 서사시의 전통은 임화를 흠모하고 존경했던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1964)로, 그리고 다시 김지하의 「황톳길」, 「오적」(1970), 김남주의 「이 가을에 나는」, 「진혼가」(1984)로 맥을 계승해 나가며 한국 근현대 시사의 우뚝 선 봉우리로 자리매김했다.

국문학자 김용직은 그런 임화를 우리 문학사의 한 ‘줄기’로 표현했다. 김윤식은 『한국근대문예비평사 연구』(1977)에서 임화를 한용운, 이상, 홍명희, 염상섭과 함께 “정신적 지주” 내지 문학사의 “거봉”으로 거론했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가장 무서운” 문인으로 임화를 꼽았다. 임화의 카프 동지이자 절친 김남천은 임화를 “예술 운동의 우수한 운전수”로 극찬했다. 그만큼 한국 문단에서 임화의 위상은 매우 높았다.

임화 스스로 고백했듯이 자신을 키운 건 팔할이 독서였다. 임화는 불우한 가정사로 보성고보 졸업을 앞두고 1925년 17살에 학교를 중퇴한다. 이후 임화는 가출하여 카프 1세대 박영희 집을 비롯해 짧은 일본 유학 기간, 동가식서가숙하면서 닥치는 대로 독서를 했다. 소설가 조명희를 만나 18살에 카프에 가입하고 이듬해 카프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박영희, 김기진 등 카프 1세대를 청산하고 1932년 청년 임화는 24살의 나이로 카프 서기장이 되어 명실상부한 카프의 지도자가 된다.

임화는 원효-일연-이규보-세종 이도-김시습-서경덕-허균-홍대용-박지원으로 이어지는 조선 문학의 유명론적 리얼리즘 전통을 이은 문인이다. 19살에 쓴 「혁토」(1927)는 제국주의 일제하 가혹한 조선 민중의 현실을 ‘혁토’(황무지)에 비유하며 조선적 리얼리즘 문학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현해탄」(1938)은 조선적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로, 임화 자신이 독창적으로 창조한 용어인 ‘이식문학론’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임화는 1935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카프가 해체되자 당시 거세게 일었던 조선학 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임화는 『조선 소설사』를 쓴 김태준과 함께 「학예사」를 설립해 『춘향전』을 비롯해 수많은 ‘조선학’ 작품들을 출판했다. 당시 최남선의 국수주의 민족 문학이나 이병도의 실증 사관의 외피를 쓴 식민사학을 비판하며 『개설신문학사』(1939)를 통해 변증법적 창조물인 ‘조선적인’ 문학을 역설했다. 이는 30대 임화가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역사철학강의』를 탐독한 결과로 조선 문학사의 특징을 ‘이식문학론’으로 그 성격을 규정한 학문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식문학론’을 강조한 문학사가로서, 그리고 『문학의 논리』(1940)를 저술한 문예비평가로서 임화가 우리 문단사에 남긴 업적은 깊고 넓다. 특히 30년대 국어학 운동에서 자연음(박승빈, 최남선)과 이상음(주시경, 최현배), 그리고 현실음(임화, 홍기문)으로 논쟁이 전개되었을 때 임화는 현실주의 언어관을 강조한 언어사상가로서 러시아의 바흐친에 비견되는 언어철학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 임화』는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역작으로 문예비평의 기념비가 될 연구물이다.

한국 문학사를 새로운 차원에서 인물 중심으로  해석하고 논구한 문예비평서 <네거리의 예술가들>(출처 : 김상천, 사실과 가치 제공) 이 책에서 저자는 한용운, 김동인, 서정주, 임화, 김수영을 문학적으로 접근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하면서 역사 사실적으로 논증했다. 한국문학사의 기념비가 될 작품이다.
한국 문학사를 새로운 차원에서 인물 중심으로 해석하고 논구한 문예비평서 <네거리의 예술가들>(출처 : 김상천, 사실과 가치 제공) 이 책에서 저자는 한용운, 김동인, 서정주, 임화, 김수영을 문학적으로 접근하고 철학적으로 해석하면서 역사 사실적으로 논증했다. 한국문학사의 기념비가 될 작품이다.

늘샘 김상천이 영혼을 다해 온몸으로 쓴 숙작(熟作) 『청년 임화』(2023)는 『네거리의 예술가들』(2021), 『철학자 김수영』(2022)과 함께 기존 반쪽짜리 한국 문학사를 올곧게 세우는 우리 문학사의 튼실한 보고(寶庫)가 될 것을 확신한다.

편집 :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객원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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