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으로 옮긴 지 10여 년이 가까워지면서 그동안 지진과 태풍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드물게 2~3년 가뭄으로 고생하더니 올해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동안 여러 차례 태풍이 지나갔습니다.

통상의 태풍은 대만 동쪽에서 발생하여 대만 부근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튼 뒤 올라가면서 일본, 한국, 산둥반도 쪽으로 진행합니다. 6, 7, 8월경 자주 발생하는 패턴이지요. 가을에 접어드는 9월부터는 빈도가 줄어들고 10월에는 아주 드물게 발생합니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가을 태풍이 무섭고 피해도 크다는 것! 제 기억에도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갔던 태풍은 9월 하순에 발생하였고, 이번 대만 남부를 강타한 小犬이란 颱風은 10월 4일 밤에 들이닥쳤습니다.

10년 전 란위따오(蘭嶼島)에서 함께 간 일행과 처음 본 사람들이 빗속에서 저의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해줌.
10년 전 란위따오(蘭嶼島)에서 함께 간 일행과 처음 본 사람들이 빗속에서 저의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해줌.

대만 동남쪽에 란위따오(蘭嶼島)라는 작고 아름다운 섬이 있습니다. 핵폐기물 저장 시설이 있지만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섬이지요. 이번에 그 섬에서 대만에서 기상관측을 한 126년 이래 순간 최고 풍속을 기록했습니다. 초당 95.2m.

사진 : NEXT TV 캡처
사진 : NEXT TV 캡처
사진 : NEXT TV 캡처
사진 : NEXT TV 캡처

초속 95.2미터 126년 만의 기록이라는 위 자막과, 샤오췐(小犬, 작은 개)가 미친개로 변했다. 문짝이 모두 날아가고 난민은 밤을 지새웠다는 아래 자막.

화면에서 보이는 저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건물 유리창을 모조리 부수고 옥탑에 설치된 수조를 나뒹굴게 했습니다.

제가 사는 타이난 시가 중심지 그리고 외곽에서도 가로수가 뿌리째 뽑혀 길을 막았고요.

사진 : PTS TV 캡처
사진 : PTS TV 캡처

대만은 한국 지형과 유사합니다. 한국의 백두대간처럼 동쪽으로 치우쳐 중앙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이어집니다. 중간에 해발 3,950m가 넘는 가장 높은 玉山이 있고, 그 외에도 3천 미터가 넘는 산이 줄을 잇습니다. 태풍이 오면 호우와 강풍이 주로 중앙산맥 동쪽에 큰 피해를 줍니다. 이번 태풍은 남쪽에 치우치며 인구가 가장 많이 사는 타이베이 쪽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4일 태풍이 근접하자 중남부 지역의 학생들은 12시에 귀가를 시켰고, 상업 시설도 12시 이후에 영업을 중지하였습니다. 그리고 태풍이 통과하는 5일에는 휴교 휴무령이 내려 상가나 음식점까지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태풍을 일상처럼 생각하는 이들에겐 하나의 통과 의례처럼 여기나 봅니다.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 표정은 해맑고, 일찍 귀가하는 즐거움이 묻어납니다. 더욱이 다음날 휴교령에 들뜬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5일 하루 저는 문밖엘 나가지 않고 베란다에 가끔 나가 오토바이 한 대 지나지 않는 적막하고 괴괴한 도시를 내려다보곤 했습니다. 초속 90미터가 넘는 초강풍이 지나갔는데 인명피해가 없어 궁금했는데, 오늘 어느 방송에서 태풍이 부는데 운전하다 사고를 내 한 명 죽고 두 명 부상이라는 소식을 전하네요. 겉보기엔 언제 날아갈지 모를 허름한 건물들이 문짝, 유리창이 다 날아가고 깨져도 그 또한 자연의 일부인 듯 오늘도 버티고 있습니다.

비옥한 토지와 많은 강수량으로 농작물이 풍부하여 천혜의 섬으로 부르지만, 자연은 가끔 이런 시련을 주어 물갈이 하나 봅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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