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샘 김상천의 『거대한 변명』을 읽고

김윤식, 김현, 염무웅은 한국 문단 내 문학 비평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분단 현실을 배경으로 그들은 문인 ‘임화’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악마화’했다. 특히 진보 문인을 대표하는 염무웅의 비판은 허구에 가깝다.

한국문학사를 몇 단계 끌어 올린 수준 높은 역작 <청년 임화> 책 표지(출처 : 사실과 가치 제공) <청년 임화>(2023)는 늘샘 김상천 문예비평가가 기진맥진하며 혼신을 다해 저술한 연구저작물이다.
한국문학사를 몇 단계 끌어 올린 수준 높은 역작 <청년 임화> 책 표지(출처 : 사실과 가치 제공) <청년 임화>(2023)는 늘샘 김상천 문예비평가가 기진맥진하며 혼신을 다해 저술한 연구저작물이다.

문단 내 주류 평론가들은 ‘월북 문인’ 딱지도 모자라 ‘미 제국주의 스파이’라는 김일성 추종자들이 쓰는 용어로 낙인까지 자행했다.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월북 인사’로 분류된 문인들이나 코뮤니스트들에 대한 연구가 햇빛을 보기 시작했다. 김윤식의 『임화 연구』(1989), 김용직의 『임화 문학 연구』(1991)는 당대 해금된 시기, 문인 ‘임화’에 대한 대표적인 연구 저작물이다.

이 연구 저작물에서 김윤식은 “카프는 거대한 사이비 조직체”라며 거칠게 비평했다. 불문학자 김현 또한 “카프는 단 하나도 우수한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염무웅은 한발 더 나아가 “카프는 외형만 남은 허수아비 조직에 불과했다”고 카프 서기장 임화를 폄훼했다.

강단을 대변하는 고려대 이남호 교수는 최근 『카프 시인집』(2022)에서 임화의 「네거리의 순이」(1929)를 비롯해 일련의 단편 서사시들을 비평하면서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체로 힘없고 무기력하며...(중략) 서정적이고 애상적인 분위기가 농후하다”고 평가절하했다.

특히 평단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김수영에서 김수영으로』(2022)에서 임화를 비롯해 카프의 주요 문인들 작품에 대해 “카프를 대표하는 문인들은 계급해방이 이념적 목표였으며...(중략)...관념 과잉의 미숙한 조제품에 그치는 수가 많았고, 그나마 일본 좌파 문학을 어설프게 답습한 것”이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팔봉 비평문학상」을 수상한 서울대 국문학과 김윤식은 최재봉과의 『한겨레 TV』 「그 작가 그 공간」 대담에서 “임화, 임화... 보성중학교 중퇴생인 지가 뭐 알겠어”라며 임화의 학력을 얕잡아보며 모멸감을 주는 표현을 했다. 한 마디로 임화의 작품과 문학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모양새다.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를 지낸 평론가 유종호 또한 ‘임화의 시가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민요 등 구비문학과 서사문학의 대가이자 문학평론가 조동일은 문인 ‘임화의 시를 평가할 수 없다’고 비평을 포기했다. 요컨대 문단 내 평자들 모두 일관되게 카프의 실체를 부정하고 외면하거나 폄훼하려는 태도다. 문제는 임화에 대한 이들의 문학 비평이 한국 평단의 주류이자 지배적인 시각이라는 데 있다.

더구나 해방공간 마르크시즘에 기초한 문학평론가 김동석조차 임화를 ‘병든 임화’, ‘병든 지식인’으로 혹평한 적이 있다. 아직 남북 분단이 첨예하게 대치된 상황이 아님에도 해방공간에서 그런 부류의 비평이, 그것도 마르크시즘에 기초한 평론가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예비평가 늘샘 김상천은 지난 3년 동안 한국 문학사를 ‘분단 시대에 갇힌 병든 문학사’가 아니라 온전한 시각에서 논구하고자 열정을 바쳤다. 특히 문인 ‘임화’에 대한 그의 연구 저작은 기존 한국 문학사를 밑으로부터 전복할 만한 참신한 시각이다. 이념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 역사 사실에 기초해 서술함으로써 한국 문단 내 패거리 비평을 일삼던 괴물 엘리트들의 천박함을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며 통렬하게 비판했다.

시인이자 번역가 김수영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를 깊이 사숙한 철학하는 문인이자 사상가였음을 밝힌 책, <철학자 김수영> 책 표지(출처 : 사실과 가치 제공)
시인이자 번역가 김수영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를 깊이 사숙한 철학하는 문인이자 사상가였음을 밝힌 책, <철학자 김수영> 책 표지(출처 : 사실과 가치 제공)

3부작 『네거리의 예술가들』(2021), 『철학자 김수영』(2022), 『청년 임화』(2023)가 바로 문단 주류 평론가들을 비판한 빼어난 작품들이다. 특히 『청년 임화』(2023)에서 늘샘 김상천은 마르크시스트 문학평론가 김동석의 임화 비평이 영국 부르주아 계급을 대변했던 매슈 아놀드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의미 있게 밝혀냈다.

영문학자 김동석이 대학원 졸업논문으로 매슈 아놀드를 다뤘고 실제로 매슈 아놀드에 깊이 심취했다는 사실을 문예비평가 김상천은 촘촘하게 분석해 냈다. 그런 연유로 노동자를 ‘불한당’, 노동자 계급을 ‘우리 시대 병든 정신을 대변하는 계급’으로 생각한 매슈 아놀드의 관점으로 김동석은 조선 노동자를 대변한 임화를 ‘병든 지식인’으로 규정한 탓이다.

다음으로 문예비평가 김상천은 임화로 대표되는 카프 문학이 ‘계급해방운동’을 지향했다는 사실을 긍정했다. 시든 소설이든 작가의 작품이 당대 작가가 발 딛고 살아가는 사회현실과 분리될 수 없음을 역설했다. 나아가 작품은 당대 사회현실이 작가의 삶에 투영된 삶의 편린이라고 생각했다. 김동리 아류의 순수문학에 일침을 가한 명쾌한 논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청년 임화가 19살에 조선일보에 발표한 「혁토」(1927)에서 ‘혁토’는 ‘붉은 땅’, 바로 ‘황무지’를 가리키는 시어로 식민지 통치에 신음하는 조선 민중을 상징한다. 이후 『조선지광』에 차례로 발표한 단편서사시 「네거리의 순이」(1929), 「우리 오빠와 화로」(1929),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1929), 「양말 속의 편지」(1930)는 문단 내 주류 비평처럼 ‘병든 지식인’의 “낭만적인 연애시나 애상적인 서정시”가 아니다. 오히려 식민지 현실에서 탄압받던 노동자에게 저항의 힘을 불어넣는 격정적인 저항시요, ‘쟁의 서사시’라고 역설했다.

실제로 카프 동지 김남천은 임화의 단편 서사시들이 노동자들에게 천둥 번개 같은 울림을 안겨줘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고 회고했다. 특히 「양말 속의 편지」(1930)는 1931년 평양 군중집회 당시 군중이 몇 번씩 앙코르를 요청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술회했다. 임화의 단편 서사시가 노동운동가들의 노동조합 회의나 노동자 집회에서 감격스러울 정도로 환영을 받았다는 역사 사실에서 임화의 단편 서사시는 늘샘이 처음 명명한 대로 예술성 높은 ‘쟁의 서사시’임이 분명하다.

1929년 대공황 이후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제의 수탈이 노골화하는 현실에서 30년대 전반기 혁명적 농민조합 운동과 혁명적 노동 운동이 거세게 일었던 역사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카프 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서정성 짙게 형상화한 빼어난 작품이다. 카프 초기 맹원 팔봉 김기진을 눈물 흘리게 만든 임화의 단편 서사시 「우리 오빠와 화로」(1929)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30년대 방직공장 쟁의를 모티프로 하는 이기영의 『고향』(1936)은 당대 최고의 농민소설로서 사회성 짙은 작품이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예술성 높은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한 뛰어난 작품이다.

1920년대 일본 내 자유주의 물결이 일었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 시절, 식민지 조선에도 카프(KAPF)(1925)가 결성되었다. 카프 결성은 당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조선 문단이 처한 현주소이기도 했다. 이육사의 국내 절친 신석초, 『상록수』의 작가 심훈, 『낙동강』의 작가 조명희, 『탈출기』의 최서해를 비롯해 박영희, 김기진, 김동환, 최정희, 김정한, 홍기문, 권환, 김남천, 이기영, 김화산, 임화, 송영, 이상화, 최학송, 한설야, 안막, 이활 등 수많은 문인들이 카프 맹원이었다. 그러나 30년대 일제가 파시즘으로 치달으면서 조선에서도 혁명적 노동운동과 농민 운동이 심각하게 탄압을 받았다. 카프 역시 1, 2차 일제의 탄압에 따른 검거 사건으로 1935년 공식 해산당했다.

카프가 주도한 ‘계급해방운동’은 식민지 현실에서 명백히 민족해방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런 점에서 카프의 문예활동(1925~1935)은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계급해방운동’이자 민족해방운동으로 문학의 작품성과 예술성, 그리고 역사상 의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카프 초기 맹원이었지만 30년대 들어서 팔봉 김기진과 함께 일제에 전향한 박영희의 표현대로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이고 잃은 것은 예술’이라는 전향 성명은 변절자의 황당한 자기변명일 뿐, 결코 역사의 진실일 수 없다.

카프 작품 가운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 『낙동강』(1927), 「우리 오빠와 화로」(1929), 『상록수』(1935), 『고향』(1936) 등 수많은 작품들이 빼어난 수준을 넘어서서 당대 조선 최고의 문학작품들로 존재해 왔고 오늘날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기영의 『고향』(1936)은 이광수의 『흙』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당대 식민지 최고의 농민소설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카프 문학작품이 일본 좌파 문학을 모방하고 흉내 낸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는 염무웅의 비평 또한 가당찮기는 매한가지다. 일제로부터 추방당하는 조선 노동자들의 애처로운 처지를 위로하고 투쟁을 격려하는 나가노 시게하루의 시,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1929.2)에 대해 문인 임화가 답시 형식으로 쓴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1929.9)가 일본 좌파 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은 맞다.

그렇지만 임화가 쓴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1929.9)는 식민지 조선의 특수한 현실을 담아낸 ‘조선적인’ 성격의 작품이다. 나아가, 노동자 연대 의식을 지향하는 작품으로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성이란 측면에서 오히려 나가노 시게하루의 작품을 훨씬 뛰어넘는 수작이다.

그 단적인 표현으로 임화는 추방당한 조선 청년이 사랑했던 일본인 여성을 “오오 사랑하는‘요코하마’의 계집애”로 부르며 “눈물 흘리지 말고...(중략) 섭섭해 하지도 말며...(중략) 사랑하는 사나이를 이별하는 작은 생각에 주저앉지 말고...(중략) 또다시 젊은 노동자들의 물결로 네 마음을 굳세게 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면서 “피곤한 네 귀여운 머리를 내 가슴에 파묻고 울어도 보아라 웃어도 보아라”며 국경을 넘어 굳건한 노동자 연대 의식을 노래하고 있다.

반쪽짜리 한국문학사를 최초로 복구시킨 문예비평가 늘샘 김상천의 2021년 역작, <네거리의 예술가들> 책 표지(출처 : 사실과 가치 제공) 이 책에서 처음으로 문인 <임화>를 재조명하며 한국 문단사의 주류비평, 패거리비평을 저격하고 있다.
반쪽짜리 한국문학사를 최초로 복구시킨 문예비평가 늘샘 김상천의 2021년 역작, <네거리의 예술가들> 책 표지(출처 : 사실과 가치 제공) 이 책에서 처음으로 문인 <임화>를 재조명하며 한국 문단사의 주류비평, 패거리비평을 저격하고 있다.

문인 ‘임화’는 가정 사정으로 비록 보성고보를 중퇴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무서운 독서광이었다. 그가 20대 시절 『임금 노동과 자본』을 비롯해 마르크스 저작을 탐독했고 30대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심취했던 인물이다. 일찍이 열여덟 살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탐독해 조선일보에 ‘정신분석학을 기초로 한 계급문학 비판’을 기고했던 보기 드문 문학 천재였다. 마르크시즘에 심취한 채, 일본 유학을 다녀온 카프 창립 멤버 팔봉 김기진과 스물한 살에 ‘예술 대중화 논쟁’(1928~1929)을 벌였던 인물이 바로 청년 ‘임화’였다.

무엇보다 청년 ‘임화’는 일제 강점기 조선어 표준어 사용에서 ‘조선어학회류의 관념론’을 통렬히 비판하며 조선 민중의 언어를 강조했던 인물이다. 그가 일제에 맞서 조선어학회가 주도한 표준어 제정에 서명을 보탬으로써 힘을 실어주었지만 그는 서울지역 중류 계층이 쓰는 ‘이상음’보다 조선 민중이 일상에서 쓰는 ‘현실음’을 중시했던 인물이다. 민중의 언어야말로 생명력을 담보하기 때문이고 살아있는 언어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평소 문인 ‘임화’를 존경했던 김수영 또한 매우 높게 평가했던 내용이다.

시인 정지용은 해방 전 ‘제일 무섭게 생각한 인물’로 문인 ‘임화’를 거론할 정도로 임화는 당대 대단한 실력자였다. 해방 직후 좌우를 아우른 「조선 문학가동맹」 초대 의장이 서른여덟 살 청년 ‘임화’였다는 사실은 해방공간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김남천은 문인 ‘임화’를 “예술운동의 우수한 운전수”로 인정했을 정도로 문단 내에서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아버지! 어머니!

나도 가겠어요 특별 지원병으로-

......

대대로 받아내려온 제 몸의 이 더운 피

이 피는 조선의 피이며 일본의 피요

다 같은 ooo의 피가 아니오니까

oo년 동양의 역사가 가르칩니다”

- 팔봉 김기진이 쓴 친일시, 「나도 가겠습니다」 중에서

민족을 배반한 기회주의 문인들을 기리는 친일문학상들이 오늘날 여전히 존재한다.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 중앙일보의 「미당문학상」, 한국일보의 「팔봉 비평문학상」처럼 8년 전 한국문인협회에서 이광수와 최남선을 기리는 「춘원문학상」, 「육당문학상」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1938년 7월 6일자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난 김활란의 제국주의 전쟁을 옹호하는 친일 연설 장면. 고등학교 <한국사> 미래 앤 출판사 253쪽에 나온 것을 글쓴이가 찍었음(출처 : 하성환)
1938년 7월 6일자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난 김활란의 제국주의 전쟁을 옹호하는 친일 연설 장면. 고등학교 <한국사> 미래 앤 출판사 253쪽에 나온 것을 글쓴이가 찍었음(출처 : 하성환)

특히 한국일보의 「팔봉 비평문학상」은 태평양 전쟁에 총알받이로 참전할 것을 종용한 팔봉 김기진을 기리는 친일 문학상이다. 이러한 상을 1990년 한국일보가 주관해 제1회 수상자로 김현, 제2회 수상자로 김윤식, 그리고 제7회 수상자로 염무웅을 선정했다.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1998년 「팔봉 비평문학상」 제9회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유일하게 거부했다. 2024년 현재 「미당문학상」처럼 팔봉 김기진을 기린 「팔봉 비평문학상」이 3년째 중지된 상태이지만 조선일보가 매년 수천만 원의 상금으로 유혹하는 「동인문학상」처럼 언제 되살아날지 모른다.

일제에 맞서 문학을 무기로 투쟁했던 청년 ‘임화’를 생각한다면 문인 ‘임화’를 폄훼하고 왜곡, 악마화한 김윤식, 김현, 염무웅 그들이야말로 ‘민족 문학’을 운위하기 이전에 평론가로서 자신을 성찰해야 할 일이다.

한국 문단의 주류 비평을 장악한 채, 문학 권력을 행사하는 평론가들은 자중하고 성찰해야 마땅하다. 최소한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 문학’을 왜곡하거나 팔지 말아야 한다. 아니 적어도 ‘민족 문학’을 입에 담을 거라면 친일 문인의 거두 「팔봉 비평문학상」을 거부해야 마땅하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3번 출구 지상에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이 벽에 전시돼 있다. 운보 김기창은 1세대 친일화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제자로 그 자신 역시 살기 등등한 <적진 육박>(1944)을 그리며 일제를 찬양하고 옹호한 인물로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문학과 예술 모두 역사정의가 실종된 모습이다.(출처 : 하성환)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3번 출구 지상에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이 벽에 전시돼 있다. 운보 김기창은 1세대 친일화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제자로 그 자신 역시 살기 등등한 <적진 육박>(1944)을 그리며 일제를 찬양하고 옹호한 인물로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문학과 예술 모두 역사정의가 실종된 모습이다.(출처 : 하성환)

친일문학상의 부활을 노리거나 돌아가면서 수상하는 추태를 연출하기 이전에 그 친일문학상들을 온전히 폐지해야 옳다. 문단의 역사정의를 실천하고 나서 그 다음에 임화의 민족운동과 임화의 30년대 조선학 운동, 그리고 ‘민족 문학’을 말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편집 : 하성환 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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