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는 하루 최저 온도가 15도를 내려가면 겨울 분위기입니다. 올겨울 다행히 비가 자주 오지 않아 덜 춥게 느꼈고, 오리털 파카를 꺼내지 않고 지납니다. 최근 북쪽에서 찬바람이 내려오며 30도 넘기는 날이 많지 않습니다.

대만에서도 날씨가 갑자기 추워질 때면 따뜻한 온천이 그리워집니다. 약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유명한 꽌즈링(關子嶺)온천이 있습니다. 일본 통치기(대만 사람들은 강점기라 부르지 않음)에 개발된 온천으로 전쟁 중에 군 장교들이 상처를 치료하며 요양하던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關子嶺에 있는 警光山莊(경광산장)
關子嶺에 있는 警光山莊(경광산장)

꽌즈링(關子嶺)온천은 세계에서 3곳만 있는 진흙 온천이라고 직원이 알려줍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와 일본의 가고시마, 그리고 이곳에 있다고 자랑하는데 진위는 모르겠습니다. 이곳 진흙 온천은 피부질환에 효험이 크다고 하네요.

일본통치가 끝나고 대만 경찰국에서 인수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곳 온천지대 온천수가 시작되는 요지에 호텔을 지었고, 경찰국에서 관리해서 그런지 징꽝산장(警光山莊, 경광산장)이란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사가 심한 계곡 지형상 온천탕이 있는 아래층도 내려가서 보면 지하가 아닙니다.

오랜 역사 때문인지 온천설비는 그야말로 우리나라 예전 동네 목욕탕 수준입니다. 내부는 진흙 온천수를 받아 저장하는 온천탕과 보통의 물을 저장하는 탕 두 개와 소변용 변기, 그리고 샤워 꼭지 두 개가 있습니다. 절대 사진을 못 찍게 강조하여 사진은 없습니다. 복도 좌우로 남녀 탕이 나누어져 있는데, 여탕도 비슷하게 좁은 공간이라고 합니다. 일반인들은 경찰 전용으로 알고 있는데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요금은 경찰가족에 비해 조금 비쌉니다. 저는 간부 출신 친구의 도움으로 자주 찾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그곳에 들렸다가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최고령자 한 분을 보았습니다. 온천장 구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옷을 벗어서 보관하는 책장 같은 철제 선반이 있고, 온천탕과 마주합니다. 탕 안에 있는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선 노인의 굼뜬 동작이나 외모로 90세가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우선 키가 엄청나게 커 보였습니다. 함께 간 일행이 1미터 90센티가 넘어 보인다고 하고요. 나이를 감안하면 쳐진 살가죽을 제외하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정말 귀공자였을 것 같은 외모였습니다.

우리들의 관심 어린 눈빛에 눈인사하며 “내가 아흔 다섯인데 어디 아픈 곳은 아무 곳도 없어” 그리고는 청력이 안 좋다며 누가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하더군요. 그 대신에 눈치로 다들 대단하다고 찬양하는 걸 알아차리고 몇 번이나 “다 소용없더라고!”라며 ‘모두 부질없다!’라는 말을 몇 번 반복하였습니다.

근처 20여 분 거리에 국가유공자들이 거주하는 요양시설에 살고 있으며, 시설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자주 이곳에 온다고 직원이 알려줍니다.

함께 같던 일행의 추측에 의하면 1920년대 후반에 태어났으니 대부분 채식 위주의 옛날 밥상으로 젊은 날을 보냈을 거고, 장개석을 따라 내려와 고위 관료나 경찰 간부로 살아왔을 거라 나름의 권력이나 부귀를 누렸을 것이라고 합니다.

온천을 마치고 산책로를 따라 올라갔다가 만난 작은 공원.(출처 : 김동호)
온천을 마치고 산책로를 따라 올라갔다가 만난 작은 공원.(출처 : 김동호)
(출처 : 김동호)
(출처 : 김동호)

지금은 영욕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겠지요. 친구나 지인들이 하나둘 떠났을 지난 십여 년은 어쩌면 매일 죽음을 가까이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가 매일 화두처럼 붙잡고 있던 생각이 ‘다 소용없더라!’가 아니었을까?

식탐이나 주색에 빠진 삶이었다면 풍길 수 없는 그 분의 기품과 신체를 보며 아름답게 여생을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나이에 비해 턱없이 맑고 깨끗한 외모와 호리호리한 몸매를 보아하니, 그분은 절제가 몸에 배어있는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며칠만 과식을 해도 탈이 나는 것이 우리 몸인데, 백년 가까이 기아와 전쟁이 점철된 역사를 헤쳐 나오며 스스로를 얼마나 다스렸을까?

요즘 총선을 앞둔 대한민국의 군상을 보면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어리석고 우매한지 알게 됩니다. 그들이 붙잡고 올라갔던 탐욕의 끝은 더 큰 불행의 시작임을 다들 모르는지 욕망의 바다에서 허우적이고 있습니다.

절제(節制)라는 말은 ‘정도를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거나 제어함’이라고 합니다. 지나침을 경계하고 욕망을 누를 수 있다면 천수를 다하고도 부끄럽지 않겠지요.

편집 :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하성환 편집위원,  심창식 편집장

김동호 객원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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