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진짜 새해맞이
성휘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닦은 수건을 수건걸이에 다시 걸어놓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나와 방 아무데나 던져 놓는다. 아직 어른 높이에 맞는 수건걸이를 사용할 만큼 키가 자라지 않았기에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 그런 성휘를 위해 일부러 작은 수건을 성휘 키에 잘 닿는 곳에 걸어 두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김없이 큰 수건에 손을 닦고 가지고 나와 아무데나 던져 놓기 일쑤였다.
“성휘야. 수건을 아무데나 놓지 말아라. 작은 수건을 걸어놨으니 그걸 써봐.”
아무리 말을 해도 그것은 매번 허공에 가 닿는지 성휘는 늘 새롭다. 오늘도 참다못해 또 잔소리를 죽 늘어놓았다.
“성휘야. 엄마가 수건을 아무데나 놓지 말라는 말을 천 번은 넘게 한 것 같아. 이제 성휘가 7살이 됐으니 6살 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니? 키가 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야 진짜 멋진 사람이 되는 거야.”
그 말은 성휘에게 부딪혀 또 내게 되돌아왔다. 훈육의 메아리가 울려온 것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더 나아졌을까? 새 달력이 벽에 걸렸지만 달라진 건 그뿐. 뒤늦게야 아무런 준비 없이 한 살을 거저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를 맞았지만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그것을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묵인한다면, 나는 여전히 새해가 아닌 묵은 해를 살고 있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몸에서 냄새가 나지만 깨끗이 씻지 않고 그럴싸한 새 옷을 입은 것은 아닌가? 그런 허울뿐인 새해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달력의 네 번째 숫자가 바뀌고 또 몇 주가 흐른 지금에서야 옷 안의 맨살을 들추어 본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가 많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뀌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나 현재에 안주하며 살아가는가. 같은 일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며, 그것이 주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데도, 그때의 상황만 탓할 뿐 나로부터 근본적인 문제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 살다가, 또다시 그 상황을 반복하는 미련한 삶을 산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돌아보고 스스로 고칠 줄 아는 능력을 갖는 것과 같다. 내가 성휘에게 잔소리를 하듯 누군가가 내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착한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멋진 어른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끊임없이 성찰하고 겸손하게 잘못을 인정하며 부지런히 바른길로 앞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니 그냥 살아지지가 않는다. 감사한 일이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스의 시구가 떠오른다. 어쩌면 나는 아이 덕분에 진짜 새해를 맞게 된 셈이다. 이제 더 이루어야 할 것을 계획하기에 앞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바꾸어야 할 것을 찾는 새해맞이를 시작하려 한다.
그렇다. 아직 늦지 않았다.
편집 : 박효삼 편집위원, 양성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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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못되는 늙은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마도 조은진 통신원처럼 자기 성찰의 기회를 놓쳐서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오누이가 빛과 소금이 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