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유족 배선희 배선자 자매의 부친 고 배일동 님 / 필명 김자현

유족 10살 배선희, 13살 배선자 자매의 어린 나이 모습
유족 10살 배선희, 13살 배선자 자매의 어린 나이 모습

파도에 둥둥-

얘기 섬 앞바다에 수장시켰다더니
우리 집 앞바다에 아빠가 떠내려왔네! 파도에 둥둥-
정말 죽은 건지
눈으로 보지 않고 믿을 수 없더니
눈으로 보라고 이렇게 왔소 파도에 둥둥-

여수시 남면 유송리 대유, 선희와 선자네 바닷가
1950년 4월 20일
2주 전쯤 끌려갔던 아버지 배일동
앞바다에 집 찾아왔네 파도에 둥둥-
에고에고-내 새끼 에고 에고- 내 신랑
그 높은 파도를 타고 타고 어찌 예까지 왔누
포승 풀어달라고 이렇게 왔소
큰 바다로 가지 않고
집 찾아오시니 고맙기도 하셔라
얼굴 함몰되어 알아볼 수 없고 나갈 때 입었던 네 아비 옷이다
두 손 묶인 채 내 집이라고
눈 감고도 잘 찾아왔네 파도에 둥둥-

어서 오소 어서 오소
내 새끼가 여순 항쟁 훈장 달고 이렇게 왔네!
내 새끼 배꼽에 세 개의 총구멍

아내를 두고 못 떠난다고 돌아왔네
어미 보러 왔다고 시신을 들이미네 파도에 둥둥-
일동아 일동아 배일동아-
논밭으로 닭장으로 어장으로 일 속에 파묻혀 돌아치던 내 아들

눈먼 구신이 잡아간 아들 내 품에 돌아왔어
파도에 둥둥- 떠 집 앞에 왔네

간다 간다 복구도 간다 
아빠를 따라 복구도 떠나가는구나
쥐약 먹고 죽은 복구, 엄마 지게에 업혀 산으로 간다
가져온 괭이로 둥둥- 세월 퍼낸 자리에 복구를 묻고
다리 뻗고 앉아 온종일 아빠가 간 듯이 온종일
처음으로 대성통곡하던 엄마도
세월이라는 파도에 떠나가시고 말았네 둥둥~~

유족의 직계 가족들
유족의 직계 가족들

*. 희생자 - 유족 배선희 배선자 자매의 부친 고 배일동 님. 10남매의 장남으로 고 배일동 님은 당시 26세이었답니다. 외가는 돌산으로 어머니는 25세의 고 김재임 님이었습니다.

고 배일동 님은 당시 여수시 남면 유송리 대유에서 어장을 갖고있는 큰 부자이셨다고 합니다. 선박도 있는 집으로 농사도 제법 많은 부농이었죠.

총살 후 애기섬 앞바다에 수장시켰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대략 2주일 후, 집 앞 바닷가에 포승줄에 묶인 시신이 떠내려왔던 겁니다. 발견한 마을 사람으로부터 제보를 받아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애기섬은 여수 앞바다에 있는 섬으로 물살이 세고 파도가 높은 곳으로 유명합니다. 파도의 방향이 내륙으로 오기는 어려운 지점인 것이죠. 그래서 학살자들은 애기섬으로 유인한 양민들을 총으로 사살한 후 시신의 입은 옷 주머니에 큰 돌을 집어넣어 애기섬 앞바다에서 흔히 수장시켰다 합니다. 그렇게 증거를 인멸했던 것이죠. 그런데 배선희 배선자님의 아버지, 고 배일동님은 애기섬 앞바다의 거친 물살을 역류하여 살던 집 앞바다에 돌아왔던 겁니다.

논으로 밭으로 닭장으로 어장으로 돌아치며 일하기에 끼니를 찾아 먹기도 바빴던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총살이라니! 극형을 받아야 할 죄명은 무엇입니까. 참으로 부지런한 청년, 배일동! 일이 하도 많아 곁눈을 줄 새도 없었던 고 배일동님!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하는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제 명을 못살고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가야하는지

나는 그냥 못가네, 나는 못가네

억울해서 못가네 슬퍼서 그냥 못가네

닭들 쫓아 마당을 뛰는

선희 선자가 보고 싶어 나는 못가네~~

시신은 얼굴이 함몰되어 알아볼 수 없고 끌려갈 당시 입었던 옷으로 부친인 것을 어머니가 알아보셨다 합니다. 배꼽 주변에 3방의 총알 자국을 발견했을 그 아침의 고 배일동 님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내는 과연 어땠을까요.

처참한 그 딸들의 아침을, 도저히 상상이 어려운 그 아침을 붙들고 74 개 성상을 보냈던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 배일동 님의 묘소
고 배일동 님의 묘소

 

 

 

 

 

 

 

 

 

 

 

 

 

 

 

 

 

*. 사진은 유족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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