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유족 황영목 님의 부친 고 황동기 님, 그리고 삼촌 고 황기수 님, 고 황은수 님!

어머니 아버지  영정 앞에 선 유족 황영목 님!
어머니 아버지  영정 앞에 선 유족 황영목 님!

 

저는 42년생 황영목이라 하고 부친과 삼촌 두 분을 잃었습니다.

부친은 고 황동기 님이시고 삼촌 한 분은 고 황기수 님, 또 한 분은 황은수 님이십니다

봉산 초교 2학년 때 여순 항쟁이 났지요

종적 묘연한 아버지 찾아 어른들 모두 들과 산을 뒤지고 다녔는데

어느 곳에도 아버지는 아니 계셨소

사흘이 지났던 날, 저 혼자 집에 남아 있는 걸 보고 옆집 영희 엄마가

함께 시장 가자고 하여 따라나섰소

가는 길에 길가에 무엇인지 가마니에 덮여 있었죠 그래서

혹시 하고 우연히 들췄던 가마니 밑에

아뿔싸, 팬티만 입은 내 아버지 주검이 거기 있었소

 

48년 10월 20일 새벽녘, 14연대 쪽에서 총소리가 들려왔소

날이 밝자 난리가 난 모양이라고 화정리 주민들 모두 산으로 피신했으나

울 아버지는 산에도 집으로 내려와도 보이지 않았소

찾을 수 없던 아버지가 시체가 되어 온몸으로 눈물을 질질 흘리며 길가에

거적으로 덮여 있던 겁니다

사흘을 기다려도 소식 없던 울 아버지

삼복더위에 죽은 개나 닭처럼 내 아버지가 그렇게

가마니에 덮인 채

진물 흘리며 누워 있었소

 

놈들은 다시 들이닥쳐 아버지와 한패를 대라고

개머리판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보도 연맹원 하던 두 분의 삼촌 있는 곳을 대라고

개머리판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다가는 어머니 가슴에 총을 들이밀었소

공갈 협박 견디던 어머니, 사시나무 떨듯 떨던 어머니

선 채로 오줌똥 벌벌 쌉디다

아버지 죽은 시신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 처참했어라

 

어장도 있고 농사도 꽤 있었지요

똑똑한 황 씨네 씨를 말리고

친인척이었던 순사들은 세간살이도 모조리 실어 가고 재산도 자취가 없어졌소

더 환장할 일은 어려서는 빨갱이 자식이라 놀림을 받고

십 대로 자라자 빨갱이가 되었소

15살에 덧정도 없는 여천 군 봉산동 고향을 버렸지요

鷄 狗처럼 돌아가신 아버지는 황동기

어떤 혐의도 묻지 않는다더니 그 캄캄한 밤에 으떤 밤 귀신이 물어갔을까?

삼촌 황기수는 행불자 명단에

솜털도 벗겨지지 않은 막내 삼촌 황은수

20대 초반의 푸르디푸른 청춘

뭔 극형에 처할 잘못을 저질러 얘기 섬 앞바다에 수장 되었을까?



아버지 당신은

저 하늘 저녁별 어느 나라에 두 분의 삼촌과 계시니 외롭지 않습니까

아직도 판명되지 않은 오욕의 역사는 계속되고

그 많은 전답과 어장, 어느 이무기가 물어갔는지 자취도 없고

어머니 손때 묻은 오동나무 장까지 육시럴 놈들이 육시럴-

빨갱이의 자식이라 견디다 못해

열다섯 나이에 동생 셋을 끌고 부산으로 와

외롭고 징글징글한 세월?

그래도 양재 기술이라도 배워 동생들 가르치고 결혼도 시키고 나니

아버지의 원수 갚지도 못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

백발이 앞을 막아섭니다

시달리고 갈가리 찢긴 제 처참한 영혼은

어디 가서 누구에게 하소연하리까

유족 황영목 님의 가족들
유족 황영목 님의 가족들

*.희생자- 42년생 유족 황영목 님의 부친과 두 분의 삼촌이 희생당하심. 여수 화정면 상화리 169번지가 고향이었으며 어머니는 관양에서 시집오신 고 박명례 님입니다.

여순항쟁 발발한 48년 10월 20일경, 14연대 쪽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놀라 날이 새자 주민들은 모두 산으로 피신했는데 그때부터 부친 황동기 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황동기 님은 당시 27세로 1922년생이셨습니다. 밤이면 산으로 피신하면서 아버지를 찾아 어른들이 들과 산을 뒤지고 다니는지 사흘이 지난날, 유족 황영목 님이 옆집 영희 엄마를 따라서 시장에 가는데 길가에 무엇인지 거적에 덮여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심히 가마니를 들췄는데 그렇게 찾아 헤매던 아버지, 고 황동기 님이 팬티만 입은 채 진물을 흘리며 누워계셨죠.

삼촌으로는 황은수, 황기수 님 두 분이 계셨는데 보도 연맹원이셨죠. ‘절대로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조사만 끝내면 된다.’ 하여 삼촌 두 분이 지서로 연행되어 갔는데 한 분은 지금까지 종적이 묘연하고 막내 삼촌 황은수 님은 총살되어 얘기 섬 앞바다에 수장시켰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 어느 역사가 이렇듯 처참할까요. 이렇게 무자비한 공권력을 일찍이 본 일, 들어본 일 있습니까. 연유나 알고 죽읍시다. 죄명이 무엇인지나 알고 죽읍시다.  그 시퍼런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한 꽃봉오리의 목을 싹둑- 가위로 자른 자는 나오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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