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주기에 열어보는 역사의 봉분! -안단요 님 댁 사연 (필명 김자현)

  불의를 넘어 정의를 향해 뛸 때~~

 

 

지축을 흔들며 어지러운 발소리

꽃을 잔뜩 매달은 때죽나무 흰 종을 치는구나

혹시 떼로 죽는 건 아니겠지

일림산을 헤치고 올라 골치재

산 밑으로 토벌대 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물 냄새가 산을 타고 올라왔다

여름이면 깨복쟁이들 알탕알탕 멱을 감던 곳

오늘은 49년 유월 유두 아는지 모르는지

6월 뻐꾸기 구슬피 울 때 저 멀리 용추계곡 물 떨어지는 소리

매케한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그리고 펑-

조명탄을 쏜 것처럼

갑자기 잠깐 환하게 숲에 불이 퍼졌다

여기저기서 타닥타닥 잡목 숲이 비명 지르기 시작하자

흩어졌던 마을 친구들 하나둘

산에서 숯검뎅이 될 것인지 내려갈 것인지

불길에 이미

영혼을 삼키운 자들의 겁먹은 눈동자가 서로 표정을 핥았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쫓겨야 한단 말인가

누가 무슨 권리로 남의 목숨을 빼앗는단 말이냐

 

오늘은

산으로 가지 말라는 아버님 말씀을 들을걸, 하는 후회가 맴돌았다

연기에 숨이 막히자

맘속에서 귀신처럼 구걸과 비굴이 검은 얼굴을 들었다

목숨이 아깝지만 살인귀 앞으로 투항할 수는 없어

어딘가는 뻥 뚫린 비상구 입을 쩍 벌리고 있을 것

이렇게 아름다운 젊음의 초상을, 스물한 살 생떼 같은 목숨을

하늘이 그냥 놔 둘리 없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단요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겨울이면 땔나무, 상수리를 줍고 버섯 따러 수없이 오르내렸던 산

잣송이 가지고 청설모와 쫓고 쫓기던

오래전 친구가 되었던 숲

가차 없이 배신 때리고 불 혀바닥을 널름거리네

기필코 살아남아서 저들, 원수를 갚으리라

마구잡이로 휘감아 오는 不義를 타고 넘어 정의를 향해 뛸 때

비상구는 나타나리라

나는 보성 옹치면 사람, 죽산 안씨 안동순이다

학살 명령 단행한 자 반드시 역사의 심판 받으리라

타당 타당 탕 타당 타당 탕 탕 탕 ............

 

*. 희생자 : 안단요 님의 부친으로 1929년 생 고 안동순 님 이십니다. 전남 보성군 옹치면 봉산리 2구(안삼수 2구)는 당시 죽산 안 씨 집성촌이었습니다. 고인 안동순 님은 5남매의 둘째로 부친의 외가에서 농토 2~3마지기를 얻어 짓는 일 외에 다른 농토는 없었답니다. 토벌대가 등살을 대던 때, 1949년 6월 유두날 산에 올라가 피신하고 있던 중 토벌대가 와서 산에다 불을 질러 하산, 지키고 있던 토벌대에 의해 함께 산으로 올라갔던 다른 분들과 함께 총살당하십니다. 

고인이 직접 겪으신 현장과 심정으로 형상화해 보았습니다.  늘 죄스러운 마음 다할길 없습니다.  (어떤 사진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유족 역시 넘 연로하셔서 모든 것이 원만치 않습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  heajoe@hanmail.net

한겨레신문 주주 되기
한겨레:온 필진 되기
한겨레:온에 기사 올리는 요령

저작권자 © 한겨레:온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