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주기에 열어보는 역사의 봉분 -유족 곽용남 님 댁 사연(필명 김자현)

                               유족 곽용남 님 부부와 형님
                               유족 곽용남 님 부부와 형님

애기섬 숲새여, 안녕!

 

나는 갈라네 떠날라네

바작바작

타오르던 가슴 졸아붙은 혈관 공포로

뼛속까지 진액이 말라붙어 바닷속은 차라리 시원했다

나는 머리에 총알을 박고

나를 쏘는

총성에 놀라 스물여섯 살 두 눈을 부릅떴네

 

보도연맹 들라한 건 너희들이지

감자 준다고 밀가루 준다고, 몇 백 번 되뇌어 봤지만

입은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고 주머니 속

꽉 들어찬 돌덩이와 함께 수백 길 바닷속으로 꺼져 들어갔네

 

마지막 가는 길에

조곡도 없이

오로지 엄마 섬 등대가 조등을 밝혔을 뿐

애기섬 숲새만 총성에 놀라 검은 하늘 어지럽게 돌고

내 몸을 어루만지는 바닷풀들

심해어들 스치는 지느러미를 타고

나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가라앉았네

 

나는 갈라네 떠날라네

연락선 타고 떠날 때면 손사래 치던

내 사랑 순심이와 작별도 없이

4살짜리 내 아기 용남이 두고 차마 저 머나먼

스스로의 解冤을 향해 나는 떠날라네

 

저 살겠다고 이웃과 일가를 향해 손가락 총 겨누던

무지몽매한 나라여 안녕!

차라리 불쌍한 내 동포여 안녕!

역사의 해안을 겁탈하며 자고새면 이놈 저놈

외세 수탈이 진저리나고 목숨 빼앗은 조국이지만

그래도 잊지 못해  무슨 수로 잊으랴

 

머나먼 타국 땅, 낯선 나라 해안에 내 원한 부려놓고

육탈한 영혼이라도 바닷길 따라 다시 한 바퀴 돌아오면

애기 섬 앞바다에 수장 된 내 이름 부르며

빨간 딱지 파란 딱지 죄 떨구고

봉광동 청년

곰치미 띠밭몰에 장가든

충성라사 양복쟁이 곽병오 곽병오 이름 세마디라도 부르며

바다 갈매기조차 한가로이 날고 있을까

*.희생자-77세 곽용남 님의 부친 고 곽병오님께서 희생당하셨습니다. 여수 쌍북면 곰치미 띠밭몰 고 김순심 님과 결혼하셨으며 당시 26세로 보도연맹 회원이셨답니다. 양복 짓는 기술자로 충성라사를 운영하시던 중 6.25 발발 직전, 6월 초에 불려나가 총살되어 애기섬에 수장되셨답니다. 시신조차 없어 가족들이 의견을 모아 나무로 깎은 시신을 모셨다 합니다. 한재 터널 위, 가족묘지에 가묘를 쓰고 제를 지내고 있는 세월 칠십여 년!

너무 늦어버린 형용할 수 없는 그 세월을 어디 가서 보상받아야 하나요. 속절없이 지나쳐버린 무자비한 정권, 그간 잘먹고 잘 사느라 정신없이 보낸 1세기 가깝게 흘러버린 시간, 남은 자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감히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빌며......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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