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주기에 열어보는 역사의 봉분- 유족 송완석 님 댁 사연 (필명 김자현)
거적에 둘둘 말린 내 아들!
달도 차마 얼굴 가리고
한적골 넘어오는데 유난히도 부엉이 크게 우는 밤
굴비처럼 엮인
여덟 명 청년들에 섞여 가마니 들치니 내 아들 송재효도 거기 누웠네
솜털도 벗겨지지 않은 스물세 살 내 아들
거적에 둘둘 말아 들것에 들고 오는 밤
가마니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핏소리
아비의 가슴에 꽂히는 쇠편
칠흑 같은 밤길에 겨울 재촉하는 바람만 무심해라
지옥 같은 일제 수탈 건너왔더니 네가 왜 가마니 밑에 누웠냐
대강리 뒷산 불야성일 때 먼저 타버린
아비의 목울대 꺽꺽- 억새 꺾어지는 소리 사이로
남자 15세 이상은 다 죽인다?
어쨌다고 남자 15세 이상은 다 죽인다고라?
사람사냥 토벌대가 산에 불을 놓을 때
역사의 골짜기는 숨죽이고
갈가리 찢긴 동학의 깃발만 귀신처럼 펄럭이네
산으로 가지 말라 오늘은 말렸더니
주먹밥 들고 피신한 고흥군 대서면 상남리
8명의 아들들, 너희들 냄새 핑핑 풍기며 왜 거기 누웠냐
겨울바람 소리 안 들리느냐
군불을 때야 허는디 나무 한 짐씩 지고 와야 할 아들들아
냉큼 일어나거라!
벌겋게 타오르는 동강면 대강리 뒷산에서
콩 볶듯 총소리
게다짝 끌고 대한해협 건너갔나 했더니 왜놈이
양키 총 들고 나타나
내 아들 내 동포에게 대놓고 총질이네
해방 동네에 쳐들어와 광복이를 총살하네
달도 차마 얼굴 가리고
비끼재 건너 한적골에 유난히 부엉이 크게 우는 밤
재를 넘던 구름아, 너는 보았느냐
단꿈 깨져버린 신혼살림
송재효에게 손구락 총 겨눈 자는 나오라
밀정짓 하던 놈이냐 개독 앞잡이냐 미군정이냐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시대야- 이승만 이놈은 어딜 갔더냐
무녀독남 완석이 하나 남기고
스물 두살
꽃 같은 내 며느리 청상과부 되었으니 어쩌나
명부를 떠도는 제 남편 제사 떠받드느라
갈 데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제 남편 따라서
오지도 가지도 못할 거니 어쩔거나
*. 희생자- 송완석님의 부친 고 송재효 님이십니다. 고흥군 대서면 상남리에 살던 분으로 소학교 졸업 후 농사짓는 분 이었습니다. 당시15세 이상 남자는 다 죽인다는 소문이 돌아 남은 남자들은 새벽이면 매일 주먹밥을 마련하여 이산 저산으로 피신하던 중이었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쯤, 그 날은 산으로 갈 것을 말렸으나 대강리 마을 뒷산, 한적골로 피했던 8명의 마을 청년 모두 토벌대에 의해 변을 당하셨다 합니다. 토벌대는 산에다 불을 지르고는 반대편 산자락에 대기하고 있다가 콩 볶듯 총을 쏘았다지요. 여순 사태가 일어난 날은 1948년 10월 19일이고 고 송재효님이 변을 당하신 날은 음력으로 같은 해 10월 19일로 그날에 제사를 지내신답니다.
이유없이 양민 향해 총을 겨누라고 한 자는 나오라! 제 나라 정부가 제 동포에게 마구잡이 총질하여 양민을 죽이니 무슨 뜻인가. 무슨 일인가. 하늘은 뭐하고 신은 한가하게 마실 다녔나. 아깝고 아까운 시퍼런 청춘들! 그들이 나라를 위해 내 동포를 위해 평생 지을 농사가 얼마나 실할 건데~~ 그들이 피울 평생의 영화가 얼마나 화려할건데~~ 또한 75년이나 지났으니 그간 우리는 무엇을 했나. 봉분 속에 억울한 역사를 가두고 우리는 무엇을 했나.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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