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주기에 열어보는 역사의 봉분- 희생자 고 조 정환 님 (필명 김자현)

청년 고 조정환님! 
청년 고 조정환님! 

 

 고 조정환님의 부인 고 임칠순 여사의 젊은 날!
 고 조정환님의 부인 고 임칠순 여사의 젊은 날!

아버지-

지금도 어느 구천을 떠돌고 계시오 뱃속에 나를 갖어 더 애달픈

내 어머니 임칠순, 전라도 땅에서 둘째가라면 서럽게 뜨르르하던

고운 님 홀로 두고 그 푸른 청춘에 총알이 박힐 때 아버지

아버지 대체 어떠시었소, 연행된 지 세 시간 안되어 총살이라니

 

시시비비는 가려야 헐 것 아니오 목숨을 빼앗으려면 까치도

재판을 한다든디 하물며 사람을! 내 아버지가 개새끼요 닭 새끼요

14연대 소속이던 조진환이 반곡 뒷산에 숨어 있다 기별이 오니

가 볼 수밖에, 평소 자별하던 사촌 동생이 부대에서 이탈하여 숨어있다니

찾아가 볼 수밖에 그것이 목숨을 빼앗을 죄요?

 

이보소- 세상 사람들아 말 좀 해보소 나랏돈을 몽창 빼먹었소

나라를 팔아먹었소 남의 자식 멱을 땄소? 앞길이 구만리

스물두 살 애련한 청춘에 영원한 흑 두건을 덮어씌운 자는 나오시오

앙-것두 모른 채 49년에 태어나 지금 팔십 바라보는 나이를 앞두고도

털끝만치도 누명을 벗겨드리지 못하는 그 억울한 땅에 아직도

살고 있으니 에고에고 아부지,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내 아부지

억울하여 어쩔거나! 기억은 녹이 슬지도 않고 풍화되지도 않으니 어쩔꺼나

    고 임칠순 여사와  따님 조규복 님의 어린 시절
    고 임칠순 여사와  따님 조규복 님의 어린 시절

그러나, 아부지 없는 또 하나의 모진 세월이 우리 모녀 가슴뼈를

아드득 아드득 밟고 지나간 것을 아시나요

천날을 한 날 같이 자식처럼 여기며 아부지를 보디끼

내 어머니 임칠순 밤 새가며 베를 짜 학비 마련하여

대석방을 차릴 만큼 높은 학교까지 가르쳤더니 당신의

하나뿐인 남자 형제, 기환이 삼촌이 아부지 우리 모녀를 향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나요?

서럽게 죽은 제 친형의 호적을 파내버리고

아부지 한 점 혈육, 저 조규복을 아비 없는 자식으로 만든 것을 아시나요

우리 모녀 앞으로 큰 금액의 보상이 나왔다던데

그것을 가로채려는 속셈이었을까요

누가 내 아버지의 피 값을 우리도 모르게 홀딱 갈취해 갔을까요

비용이 책정된 근거도 수령자도 서류가 없으니

흘러가는 구름에 물어야 할까요 반곡부락을 떠도는 바람에 물어야 할까요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 모녀 먹고살라고 제 외할아버지께서 불쌍한 딸 임칠순, 어머니 앞으로

남겨준 논 3마지기(900평 가량)까지 삼촌이 제 이름 조기환 앞으로

명의를 바꾸고 완전 가로 채 갔다는 것을 아닙니까

개백정도 아니 할 짓을 한 사악한 작은아버지에게 속히

영원한 암흑을 내려달라고 기도를 하던 세월이 있었으나 기도가 먹혔던지

그분도 가시고 아부지, 저주를 퍼부으니 뭘하고 역사를 한 치도

돌릴 수 없으니 뭐하겠습니까?

 

시대를 잘 못 태어난 우리의 명운이 그뿐인 걸 어쩌겠습니까

친일청산이 되었더라면? 미제 앞잡이가 정권을 잡지 않았더라면?

민족의 역적 매국노 중의 가장 악질 매국노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더라면?

밤을 새워 끝없이 이어지는 이 통탄은 언제가 되어야 멈출 수 있을까요?

 

에고 원통하고 절통하여 천하의 미인이던 당신의 어여쁜 님은

예순여섯 해를 사시고 천애 고아 저를 두고 당신을 찾아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아부지 어머니는 만나셨나요?

밤이면 달빛을 밟으며 이승에서 못 다한 얘기 못 다한 사랑 나누시고

이젤랑 모든 원한 잊으시고 은하수 건너

은모래 금모래 밟으며 햇살 좋은 나라에서 천년 만년 사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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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조정환님의  딸,  조규복 님!
  고 조정환님의  딸,  조규복 님!

희생자 고 조정환 님댁 사연

조규복 님은 여성으로 희생자 고 조정환님의 유복자 이시다. 1949년 6월 15일생으로 80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었지만 아직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조정환님의 해원과 정명이 되지 않은 상태라 무거운 마음으로 살고 계시다. 고 조정환 님은 1926년생이시며 당시 가계를 도와 농사를 짓고 계셨으나 기술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취미로 도장을 판각할 수 있는 정도로 총명한 분이었다고 한다. 3살 연하의 고 임칠순 여사와 결혼하였으며 5남매의 장손이셨다.

사건의 경위- 1948년 12월 가까운 무렵, 여수국방경비사령부 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여기저기 부락에 출몰하던 때, 조규복님의 아버지 조정환님은 전남 보성군 조성면 은곡리 반곡부락에 살고 계셨다. 창녕조씨 집성촌으로 당시 사촌뻘 되는 조진환과 자별하게 지내오던 중 조진환이 군에 입대  당시 14연대 소속 군인이었다, 고 한다.

그런데 그 동생이 부대를 이탈하여 반곡 부락 뒷산에 숨어있는데 조정환 님을 만나기를 청한다는 전갈을 어느 날 마을 사람으로부터 받게 된다. 그래서 진환이를 만나러 반곡 뒷산에 오르자 잠복해 있던 경찰들에 의해 조진환은 부대로 귀속 조처되고 고 조정환님은 박천석이라는 형사에 의해 그 길로 조성 지서로 연행당했다. 연행된 지 3시간도 안 되어 경찰로부터 조정환님이 총살당했다는 기별을 받게 된다.

창녕조씨 가문의 종가는 부농이었으며 결국은 조규호의 아버지 조진환님 때문에 이유도 없이 천추에 한을 남기고 유명을 달리하게 되셨다. 어떤 연유인지 정확하진 않으나  부대를 이탈했었던 동생 뻘 되는 조진환씨는 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 조정환 님을 잡아들이기 위해 당시 14연대 소속이던 조진환님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볼 뿐이라고 한다.

어떤 말로, 무엇으로 이 사연의 억울을 덜 수 있을까.  그러나 시퍼런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다. 밀고 한 자, 억지  죄목을 만든 자, 방아쇠를 당긴 자, 그리고 제 친형과 그 후손의 기록을 말살한 자, 그들은 과연 어떤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가!

편집  :김동호 편집위원

김승원 주주  heajo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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