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뭐가 좋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이 좋다고 대답합니다. 대만 생활을 경험한 외국인들이 '밤에도 돌아다닐 정도로 안전하고, 먹거리도 풍부하며, 교통망과 의료 서비스 등이 잘 갖춰진 나라'라고 대답하면서도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친절하다’는 반응이더군요.
우리 속담에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거나 ’뒷간과 처가는 멀수록 좋다‘고 하여도 마누라가 좋으면 처가집 나들이가 즐거울 수밖에 없고, 힘들고 멀다 해도 한달음에 달려가는 것이 남자들이지요.
저의 한국 지인들이 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대만을 선택하였습니다. 주로 해외 산행을 하던 멤버들이지요. 저는 한국에서 출발한 일행 아홉 명과 타오위안(桃園) 공항에서 만나 여행사가 마련한 차편으로 자이(嘉義)시를 거쳐 아리산(阿里山)으로 올라갔습니다.
아리산은 유명 관광지로서 산행을 즐겨하지 않는 대만인들이지만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 중의 한 곳입니다. 1985년인가 1986년 당시 대학원생이던 저는 대학 등산 동아리를 따라 시터우(溪頭)에서 출발 아리산까지 열 몇 시간을 걸어 올라갔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 우리나라 백두대간처럼 일부에서 溪-阿縱走가 유행하였지요. 그 기억을 밑천 삼아 타이베이에서 공부하던 한국인 친구 3명을 인솔(?)하여 거꾸로 嘉義市에서 협궤 열차(지금은 사라짐)를 타고 아리산에 올라갔다가, 새벽 일출을 보고(구름 때문에 해는 못 보고) 하산했습니다. 중간에 길을 잘 못 들어 저녁 8시 경에야 겨우 유스호스텔에 도착하는 고생을 했던 곳입니다.
한국에 ’소양강 처녀‘가 있다면, 대만에는 ’아리산 처녀(阿里山的姑娘)‘가 있지요.
아리산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콰이무(檜木, 편백) 때문입니다. 일본어로는 히노키라고 부르는데, 일본이 통치하던 시절 이 나무를 벌목하여 이동하기 위해 철도를 놓았지요. 1980년대까지도 매일 왕복하던 철도가 10여 년이 지난 후에 갔을 때는 산사태와 지진 등으로 운행과 중단이 반복되었고, 지금은 아예 해발 2,400여 미터 지점에서 관광객을 위해 일부 구간만 운행 중입니다.
한국에선 더디게 자라는 편백과 속성으로 자라는 삼나무를 모두 히노끼라고 하는데 이파리가 부드럽고 편편한 나무는 편백, 솔잎 비슷하게 뾰족하고 날카로운 나무를 삼나무라고 합니다. 편백은 건축재로 훌륭하지만 삼나무는 속성이라 부적합하다고 합니다. 아리산 콰이무는 수령이 2~3천 년 나무가 즐비하였고, 지금은 국가에서 철저히 관리합니다. 향이 백 년을 가고, 벌레가 먹지 못하며, 비바람에도 썩지 않아 기둥으로 더할 나위 없습니다. 일본 신사에 가서 전봇대처럼 곧고 갈라짐이 없는 기둥을 보았을 것입니다. 대만에서도 절이나 사당의 기둥을 보면 저절로 감탄하지요.
1980년 대에 아리산에서 제일 유명한 곳은 선무(神木)라는 수령 3,000년이 넘는 나무였습니다. 당시 거의 고사목처럼 보였는데, 꼭대기에 이파리가 있었는지, 벼락을 맞아 죽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립니다. 지금은 神木역에 쓰러져 있고, 푯말에 사진으로만 옛 자취를 기억하게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오래된 나무에 정령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당시 3,000년이 넘는 나무를 벌목하고 두려웠는지, 아니면 미안했는지 위령탑을 세우고 무사안일을 빌었겠지만 2차대전 참패로 막을 내렸지요.
아리산은 5가지 절경을 자랑합니다. 일출, 석양, 협궤철도, 삼림, 운해를 일컬어 ’아리산 5奇‘라고 합니다. 당일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우리는 석양을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일출 또한 매우 보기 어렵지요. 해발 2,500여 미터의 고산이라, 아래에서는 해가 나고 더워도 막상 산에 오르면 비와 구름이 걸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5번째 오른 아리산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완벽한 해돋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3,950여 미터 최고봉 옥산 언저리로 순식간에 떠오르는 일출의 장관은 마치 조상의 음덕으로 혹은 하늘의 가피로 상서로운 기운이 흠뻑 적셔주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마도 함께한 우리가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 햇님이 반겨주셨나 봅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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