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月潭(일월담)은 대만 내륙에 있는 가장 넓은 담수호입니다. 수면의 높이는 해발 736m이고, 만수일 경우 면적이 서울 여의도와 똑같은 8.4 ㎢에 이릅니다.

日月潭
日月潭

호수의 형태가 해와 달을 닮았다고 르웨탄(일월담)이라고 하지요. 호수 위에 400m 정도의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는데 미국 CNN에서 세계 10대 아름다운 자전거 도로라고 불렀다고 자랑합니다. 주변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는데, 저는 산책로를 택한 일행이 많아 걸었습니다.

제가 90년대 대만에 가면 친구가 추석에 르웨탄 수영대회가 열린다며 함께 참가하자고 권유했습니다. 여권으로 미리 참가 신청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추석이나 설날 한국을 떠날 수가 없었지요. 참가는 못 했고 친구 차로 日月潭을 다녀온 적은 있습니다. 이번 여행 중에 아리산을 내려와 日月潭에 가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 당시 그 친구가 운전하느라 얼마나 고생했었을까? 새삼 고맙게 여겨집니다.

日月潭 호수가 수원지로 사용되면서 추석 수영대회는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산책을 마치고 주변에 있는 원우먀오(文武廟, 문무묘)라고 부르는 사당에 들렀습니다. 사실 우리 산행 팀이 그리 원하는 코스는 아니었습니다. 대만 가이드도 사전 정보가 없는 듯, 우리가 물어보면 인터넷을 뒤져 대답하는데 오락가락하더군요.

이 사당은 그야말로 돈을 발랐더군요. 일본 통치하에 수력발전을 위해 댐을 쌓자 수위가 올라갔고, 매몰된 두 개의 사당이 비용을 받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장개석 총통의 후원으로 중건이 되었다고 합니다.

좌 상 : 거대하고 위압적인 정문. 중앙에 文武廟. 우측과 좌측에 崇文, 重武.좌 하 : 文成殿 뒤로 거대한 석조물이 위용을 자랑한다. 우측 큰 기둥 하나가 원화 10억 정도. 기부한 사람이나 회사 이름을 돌에 빼곡하게 새겼다. 사당은 배산 임수로 앞은 넓은 일월담이 펼쳐져 있다.
좌 상 : 거대하고 위압적인 정문. 중앙에 文武廟. 우측과 좌측에 崇文, 重武.좌 하 : 文成殿 뒤로 거대한 석조물이 위용을 자랑한다. 우측 큰 기둥 하나가 원화 10억 정도. 기부한 사람이나 회사 이름을 돌에 빼곡하게 새겼다. 사당은 배산 임수로 앞은 넓은 일월담이 펼쳐져 있다.

유교, 불교, 도교에서 모시는 주요 대상이 모두 안치되어 있으니, 누구나 들어와서 빌기만 하면 됩니다. 어느 절에서는 한쪽에 마리아상이 있던데 이곳에선 아직 보이지 않더군요. 대만에선 비교적 종교 갈등이 없는 것이 이런 이유와도 관련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경사가 심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文武廟는 입구부터 엄청난 위용을 자랑합니다. 우리나라 산사 일주문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위로 올라가면 첫 번째 전각이 배전(拜殿)으로 문창제군(文昌帝君, 혹은 文昌君)을 참배하는 곳입니다.

북쪽에 공자가 있다면 남쪽에는 문창군이 있다고 할 만큼 지금의 사천 부근에서는 원나라 이후에 참배를 많이 하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주로 붓을 든 선비 차림의 상으로 표현되는데 시험을 앞두거나 관직에 나가고자 혹은 승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습니다. 문창군이 나중에 우화등선하였다고 하는 걸 보면 도교사상에 뿌리를 둔 듯합니다.

어쨌든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가면 권력과 재물을 얻을 수 있으니, 누구나 돈을 바치면서까지 빌지 않겠습니까? 특히 시험을 앞둔 자식의 부모라면.

무성전에 안치된 악비(좌)와 관우
무성전에 안치된 악비(좌)와 관우

그 위로 올라가면 중전(中殿)인 전각이 나오는데, 무성전(武聖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중국에서 무의 성인, 즉 싸움의 신은 관우를 뜻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오자서나 항우가 싸움은 더 잘한 듯한데, 중국인들은 비록 성공은 못했지만 삼국지의 관우를 제일 못 잊나 봅니다. 그래서 관우를 관성제군(關聖帝君) 혹은 관공(關公) 관제(關帝) 등으로 부릅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또 다른 장군 악비(岳飛)도 관우와 함께 무성전(武聖殿)에 모셔져 있습니다. 악비는 송나라 때 금나라 군대와 싸워 연전연승하였으나 간신 진회의 모함으로 옥사했다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만큼이나 사랑받는 장군이지요. 후에 악성제군(岳聖帝君)으로 불립니다.

참고로 중국인들의 배금사상은 유명합니다. 황금을 가장 좋아하지요. 역사에서는 관우가 장군으로 나오지만, 민간에서는 재물의 신으로 추앙을 받습니다. 그래서 어느 도시에나 관제묘는 있고, 심지어 집안에 조상 위패 대신 관우의 위패를 모시고 매일 절을 하는 풍습도 있습니다. 긴 수염에 커다란 창인 청룡언월도를 들고 있거나, 붉은 얼굴에 적토마를 탄 형상은 관우를 나타냅니다.

공자의 동상을 안치한 모습은 처음 보는 듯.  돈이 많아서 그런지 바로 앞에 또 옥으로 조각한 공자상을 안치했다.
공자의 동상을 안치한 모습은 처음 보는 듯.  돈이 많아서 그런지 바로 앞에 또 옥으로 조각한 공자상을 안치했다.

그 위에는 후전(後殿)인 전각이 나오는데, 대성전(大成殿)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어쨌든 가장 높은 곳에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의 동상을 안치하고 공자를 기립니다.

나름대로 文武廟는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중시하는 중국의 유교문화와 더불어 병자들이 찾아 무병을 기원할 수 있는 불교의 약사여래전이나 유명한 승려 한산 습득도 모시고 있고, 연인을 짝지어주는 월하노인 등도 나타납니다. 종파나 호불호를 따지지 않고 한데 어울려 실리를 구합니다.

약사전
약사전

한국에선 절과 교회가 한 울안에서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겠지요! 대만이 한국과 다른 또 한 가지는 권력기관이 눈에 띄지 않고, 법의 제약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한국은 송사로 시작해서 송사로 망하지요.

장개석과 장경국이 중국에서 공산당에 쫓겨 대만으로 오고 나서 권력을 놓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민심을 잃었다고 판단하고, 가족의 부패부터 처벌합니다. 그리고 민생(民生)을 가장 우선했다고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민중의 행위는 가능한 한 허용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 정치인들이 명함을 돌리며 하는 유세가 살면서 불편하거나 문제가 생기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합니다. 권위를 내세우거나 오만한 인간은 대만에서 정치를 못합니다.

편집 : 김동호 편집위원

김동호 편집위원  donghokim7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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